시대 흐름 맞춰 법 개정 美, 대통령 공약으로 ‘전문대 무상교육’ 포함되기도
‘아우스빌둥의 나라’ 獨, ‘직업교육훈련법’ 제·개정…직업교육 디지털화 추진
대만, ‘학문·연구’ ‘직업교육’ 중등단계부터 투 트랙…정부·민간 유기적 협력

사진=한국대학신문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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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대학신문 김의진 기자] 국내 고등교육이 과감한 체질 개선과 제도 혁신을 통해 새로운 형태의 대학으로 변화를 앞두고 있다. 변화의 문턱에서 고등교육이 어떻게 재설계될 것인지는 오롯이 대학 스스로에 달렸다. 시대에 흐름을 거부하거나 뒤처져 과거에 머물러 있는 대학은 역사 속으로 사라질 것이다. 강점으로 잘 살려왔던 것은 지켜내고, 부족한 부분은 공유와 협력으로 보완하는 지혜가 필요한 때다. 이에 본지는 한국전문대학교육협의회와 공동으로 변화의 중심에 전문대학이 설 수 있도록 고등직업교육의 과제와 대안을 살펴본다. <편집자주>

한국전문대학교육협의회(회장 남성희, 대구보건대 총장) 부설 고등직업교육연구소는 현재 해외 직업교육 선진국의 ‘직업교육’과 관련한 기본법 사례를 분석하는 연구에 착수했다. 해외 각국은 헌법에서 보장한 직업교육을 어떻게 정의하고, 국민이 직업교육을 받을 권리를 어떻게 보장하는지, 기본법 제정 사례를 살펴 우리의 제도를 보완하는 데 참고하기 위해서다.

고등직업교육연구소는 이번 연구가 완료되면 국내 전문대의 위기를 해소하고 경쟁력을 강화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기대한다. 또한 정부 정책에서 ‘고등교육·고등직업교육’ 간 균형을 맞추는 데에도 일조할 것이란 전망을 제시한다. 특히 내년 4월에는 제22대 총선이 있는 만큼 차기 국회에서 ‘직업교육법’ 제정 논의가 다시 이뤄진다면 입법 참고자료로도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고등직업교육연구소의 연구 결과가 담긴 보고서에는 해외 직업교육 선진국의 ‘직업교육법’과 관련한 최신 사례가 다양하게 포함될 것으로 기대된다. 해당 연구는 올해 연말에서 내년 상반기 사이에 마무리하는 것을 목표로 진행된다.

본지는 이에 앞서 현재까지 국내 교육계·학계 연구 결과로서 알려진 해외 선진국의 ‘직업교육’ 기본법 제정 사례를 알아봤다. 해외 각국의 사례를 살펴보며 중등·고등·직업·평생 단계별 직업교육이 어떻게 연계돼 운영되는지 확인하고 국내 직업교육 강화 방안을 모색해본다.

■ 조 바이든 美 대통령, ‘전문대학 무상교육’ 공약으로 포함 = 미국은 조 바이든 대통령이 후보 시절 ‘커뮤니티 컬리지(Community College)’ 무상교육을 공약으로 포함했을 만큼 직업교육을 공교육 시스템 내 중요한 축으로 인식한다. 커뮤니티 컬리지의 교육을 무상화해 미국 국민이 직업·평생교육을 자연스럽게 접하는 것이 국민 삶의 질 개선에 무엇보다 큰 도움이 된다고 판단한 까닭이다. 미국 정부는 이처럼 생애별 교육 시스템이 원활하게 이어지기 위해선 ‘커뮤니티 컬리지’가 중요한 연결고리를 담당해야 한다고 분석한다. ‘커뮤니티 컬리지’는 우리나라의 전문대학에 해당하는 교육기관이다.

또한 미국은 직업교육과 관련한 제도·프로그램을 다양하게 운영하고자, 입법 활동도 활발하게 추진한다. 우리나라 국회입법조사처가 지난 2020년 발간한 ‘미국 직업기술교육법 개정의 주요 내용과 시사점’에 따르면 미국 정부는 교육기관·기업에서 행해지는 직업·기술교육을 중요하게 보고 지난 1963년 ‘직업교육법(Vocational Education of Act)’을 제정했다.

법 제정 이후 시대가 흐르면서 직업·기술교육에 필요한 지식·실무·이론 등이 변화하게 되고, 미국 정부는 이때마다 이에 대응해 법률을 꾸준히 개정해왔다. 지금까지 약 5차례(1984년·1990년·1998년·2006년·2018년)의 굵직한 법 개정이 이뤄졌다.

법 개정을 거쳐온 미국은 연방정부 교육부에서 직업·기술교육에 대한 개발·보급·평가·연구 등을 담당하고, 주(州)정부는 직업교육 성과를 측정하는 지표를 개발하도록 역할을 정립했다. 직업교육을 얼마나 이수했는지에 따라 집중자·참여자 등 2단계로 구분해 맞춤형 교육을 제공하는 등 교육효과를 높이고자 연방·주 정부의 책무를 구체적으로 규정했다.

특히 미국 정부는 연방정부 교육부에서 직업교육 예산으로 배정한 비율보다 더 많은 예산을 지원하고자 한다면 주정부 권한으로 최대 5%포인트 재정을 상향할 수 있도록 했다. 또한 직업교육 관련 예산을 지원할 때 특정한 커리큘럼이나 성과지표 등은 조건으로 요구하지 않는다.

우리나라 국회입법조사처가 지난 2020년 발표한 ‘외국 입법 동향과 분석’을 보면 미국은 시대변화에 맞춰 ‘직업교육법’을 개정하는 반면, 우리나라는 변화하는 교육 환경을 입법에 반영하는 논의가 부족해 직업교육 관련 법률이 시대 흐름을 따라가지 못한다고 지적한다.

조인식 국회입법조사처 입법조사관은 “우리나라의 직업교육 관련 법률을 시대 흐름에 맞게 적용하고 직업교육 기관에 대한 지원을 확대하는 방안으로 재개편할 필요가 있다”며 “직업교육을 충실히 수행하기 위해 예산지원 등 정부·지방자치단체 책무를 법률에 명확하게 규정하는 방안 역시 검토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 ‘아우스빌둥의 나라’ 독일, ‘직업교육법’ 디지털화 역점 = 독일은 기술 인력을 양성하는 이원화 시스템인 ‘아우스빌둥(Ausbildung)’을 운영한다. 아우스빌둥은 독일말로 ‘쌍둥이 교육’을 뜻한다. 독일은 아우스빌둥을 운영하면서 학생들이 이론은 직업교육기관에서 배우고, 실습 교육은 기업 현장에서 실시해 이론을 바로 현장에 적용할 수 있게 한다. 학생 스스로가 이론과 실무를 자연스럽게 연계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 의의를 찾을 수 있다.

독일은 지난 2004년 기업과 교육기관이 직업교육에 대한 협의서를 채택하면서 아우스빌둥을 본격 도입했다. 아우스빌둥 교육을 적용하는 직종으로는 △자동차 정비공 △치과기공사 △경찰 △은행원 △제빵사 △미용사 △언어치료사 △사회복지사 등 폭넓게 퍼져 있다. 연구에 따르면 전 세계에서 독일 아우스빌둥에 적극적으로 관심을 보이는 나라는 약 30개국이며, 우리나라도 부분적으로 아우스빌둥 프로그램을 연구·도입한 상황이다.

독일은 지난 1969년 ‘직업교육훈련법(Berufsbildungsgesetz)’을 제정했다. 이후 2005년과 2019년 법을 개정한 바 있다. 독일은 해당 법에서 직업교육 기관의 범위를 명확하게 규정했다. 총 4가지 교육기관으로 나뉘고, 기관마다 직업교육 분야에서 맡는 역할도 다르다. 특정 기관의 교육과정을 이수해야 다음 단계 교육기관에서 배울 수 있는 자격을 부여하는 것도 법으로 명시했다.

독일은 ‘직업교육훈련법’ 제정·개정을 거치며 현재 직업교육 관련 기본법 체계가 어느 정도 확립됐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에 따라 독일은 향후 직업교육의 디지털화에 큰 관심을 가지며 이를 위한 밑그림에 들어갔다. 독일은 기술이 고도화하며 크게 △노동의 과제 △직업의 형태 △직업교육 전반 △전문가 수요·공급 등에서 특히 큰 변화가 있을 것으로 판단하고, 디지털 직업교육으로 전환 준비에 착수했다.

■ 대만, 중등 단계부터 일반·직업교육 ‘투 트랙’ = 대만은 일반·직업교육을 중등교육 단계부터 일반고·직업고로 구분하는 ‘투 트랙(Two track)’ 체제로 운영한다. 고등교육 단계도 이에 맞춰 이론 중심 교육을 하는 일반대와 실습 중심 직업교육을 제공하는 과학기술대로 이원화했다.

대만에는 이른바 ‘정부가 정책을 내놓으면, 민간은 대책을 마련한다(상유정책 하유대책, 上有政策 下有對策)’라는 말이 있다. 대만 정부에서 직업교육 정책을 펼 때 역시 이 기조로 민간도 함께 움직인다. 정부는 국가 전략 자산으로서 직업교육의 유·무형적 가치를 인정하고 발전을 위한 본분·협업·책임성 등을 명료화하고, 교육계를 비롯한 산업체에선 직업교육이 곧 지역발전이라고 인식하며 정부·대학·기업·지역사회 간 소통 플랫폼을 형성하는 방식이 유기적으로 이뤄지는 것이다.

대만은 직업교육을 개혁·발전하고자 지난 2017년 ‘기술·직업교육 정책 강령’을 발표했다. 실무능력과 혁신능력, 고용능력 등을 직업교육 목표로 정하고 전문인력을 양성하겠단 방침을 세웠다. 해당 강령에는 △직업교육을 평생교육까지 이어지도록 유도 △전문적 기술 가치관 교육 △실용적인 학습 방식 △교사들에게 직업교육 특화 교수 능력 배양 △학습 성과별 산업체 분류·등급 시스템 구현 △산학협력을 강화해 사회 수요에 걸맞은 인재 양성 등이 주요 내용으로 담겼다.

■ 해외 선진국, 법률 제·개정으로 직업교육 정착…국내 시사점 커 = 해외에서 직업교육 선진국으로 일컫는 독일을 비롯해 미국, 그리고 우리와 지리·문화적으로 유사한 대만까지도 이들은 일찍부터 직업교육에 대한 상세한 법을 만들고 시행하며 제도를 보완해왔다.

이들 나라는 오랜 시간 시대변화에 맞게 법을 개정하면서 직업교육을 보다 효율적이고 생산적인 방향으로 정착시켰으며 이제는 4차 산업혁명 시대, 디지털 대전환에 대응하는 형태로 개혁하는 과정까지 다다랐다.

미국과 독일, 대만 등 ‘직업교육법’에서는 공통적으로 직업교육에 대한 정의가 명확하다는 점, 직업교육을 제공하는 기관에 대한 역할이 뚜렷하다는 점, 직업교육에 대한 구체적인 진행 방향과 목표, 평가·관리 방법을 명시했다는 점 등을 확인할 수 있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점들이 현재 국내 전문대학을 중심으로 한 교육계가 추진하는 ‘직업교육법 제정’ 추진 취지·목표와 다를 바 없다는 점을 강조한다. 내년 총선 이후 구성될 제22대 국회에서 ‘직업교육법’ 제정이 다시금 추진된다면 정부·정치권·교육계가 더욱 안정적인 직업교육 환경을 조성하기 위한 실마리를 해외 사례에서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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