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시대 대학은 평가인증의 홍수 속에 있다. 의무적으로 받아야 하는 기관평가인증, 학문분야평가인증부터 각종 재정지원사업 평가에 이르기까지 종류도 다양하다. 반복되는 “평가 준비에 1년이 다 간다”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대학에서 평가는 일상이 됐다.

최근 들어 ‘학문분야평가’에 대한 논란이 대학가에서 거세게 일고 있다. 정부 평가는 축소되는데, 학문 분야별 평가는 증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원래 학문분야평가는 1980년대 ‘교육의 질 보장과 개선’을 위해 한국대학교육협의회가 시행하던 교육프로그램 평가를 1992년부터 학문분야평가인정제로 전환해 실시한 데서 비롯됐다.

1998년 7월 한국의과대학인정평가위원회가 설립된 이후 공학, 간호학, 경영학, 건축학, 무역학 등 다양한 분야별로 독자적인 민간평가기관이 설립돼 운영되고 있다. 2005년 UNESCO·OECD 고등교육 질 보장 가이드라인에서 요구하는 고등교육 질 보장 체제를 구축하기 위해 민간평가기관에 일부 예산 지원이 이뤄졌고, 2008년 12월에는 「고등교육기관의평가·인증등에관한규정」이 제정돼 학문분야별 평가기관에 대한 정부 인정 심사가 시작됐다.

2023년 3월 기준 교육부 인정기관심의위원회 심의를 통과한 민간 평가인증 인정기관은 총 12개로 한국대학평가원, 고등직업교육평가인증원 외에 프로그램별로 건축학·공학·경영학·간호학·의학·치의학·한의학·보건의료정보관리학·약학, 수의학교육인증원이 있다.

학문분야평가는 대학이 자율적으로 신청하지만 의료인 양성 대학의 경우에는 평가인증이 의무화됐다. 고등교육법 제11조의 2(평가 등)에 따라 의학·치의학·한의학 또는 간호학에 해당하는 교육과정을 운영하는 학교는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절차에 따라 인정기관의 평가·인증을 받아야 한다. 고등교육법 시행령에는 평가인증을 신청하지 않거나 평가인증을 받지 않은 대학에 대해 1차 위반 시 신입생 모집정지, 2차 위반 시 폐지 처분을 하도록 돼 있다.

정부가 학문분야평가 제도를 도입한 것은 해당 학문분야 교육의 질 향상을 유도하고, 고등교육 시장개방 및 전문 자격증과 면허증 상호인정을 통한 인력교류 활성화에 적극 대응하기 위해서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학문분야평가’는 국제적 통용성 확보에는 이르지 못했지만 교육의 질적 수준 제고에서는 일정한 성과를 거두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대학 의견은 썩 만족스럽지 못하다. 인정 제도 도입 당시 제기됐던 평가기준의 적실성을 둘러싼 논란과 비용 부담 문제가 여전히 남아 있기 때문이다. 먼저 평가기준이 지나치게 높아 대학이 따라가기에 벅차다는 의견이 많다. 평가기준이 학문분야별 최소 요구 기준(minimum requirement)에 맞춰 있지 않고 국제적 통용성 확보와 대학 경쟁력 강화 차원에 걸맞게 높게 책정돼 있어 힘들다는 것이다.

지금도 인정기관들이 인증 평가기준을 상향시키는 작업에 치중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로 인해 일부에서는 과정평가형 기술자격 시험제도처럼 평가인증을 받은 대학 졸업생에게 자격증이나 면허증을 별도 시험 없이 교부해줘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지나치게 경직된 운영도 문제다. 자율, 융합의 시대에 걸맞지 않게 평가편람에 정해진 자구에 연연해 대학과 학생에게 피해가 발생하고 있다. 특히 인증과 불인증을 결정하는 데 평가자 개인의 재량 범위가 너무 크다는 의견이다. 인증 결과가 자격증, 면허증 응시자격과 연동된 경우에는 그 불안의 정도는 상상 이상이다.

다음으로 대학이 부담해야 하는 과도한 비용도 문제다. 여러 분야 평가를 받게 되는 대학들은 평가 준비는 물론 비용 부담에 시달리고 있다. 가뜩이나 재정난에 시달리고 있는 대학 입장에서 여간 곤혹스럽지 않다. 특히 대학 안에서 평가인증 대상 학과나 전공에 예산 우선 배정 원칙이 적용되다 보니 평가인증을 받지 않는 학과에서 불이익을 받는 경우도 발생한다.

교육의 질적 보장과 개선을 위해 학문분야별 평가인증 제도는 유효하다. 그러나 실행 과정에서 나타나는 부작용은 줄여나가면서 추진돼야 할 것이다. 일부 인정기관은 평가인증 결과를 자격증이나 면허증 응시 자격과 연계함으로써 무소불위의 힘을 갖게 됐다. 대학은 을(乙), 인정기관은 갑(甲)이다.

여기에서 오는 대학의 피로도는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심각하다. 민간 평가인증 인정기관 심의를 맡고 있는 교육부 인정기관심의위원회에서 대학 현장의 목소리를 경청해 평가에 반영하기 바란다.

<한국대학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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