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세원 숭실대 교무처 학사팀장 겸 원격교육지원팀장

오세원 숭실대 교무처 학사팀장 겸 원격교육지원팀장
오세원 숭실대 교무처 학사팀장 겸 원격교육지원팀장

고등교육법 시행령 제9조(학교의 조직) 제2항(대학에는 학과 또는 학부를 두는 것을 원칙으로 하되, 필요한 경우에는 학칙에 달리 정할 수 있다) 개정이 지난해 8월부터 추진되고 있다. 이 개정(안)을 입법 예고하면서 교육부는 ‘대학의 담대한 혁신을 지원’하기 위해서라는 명분을 내세웠다.

그로부터 3개월 뒤인 지난해 10월, 교육부 장관은 “대학 정원 중 30%를 무전공 입학으로 추진하겠다”고 출입기자단 간담회에서 느닷없이 구체적인 숫자를 제시했다. 그는 “대학의 기득권이라고 볼 수 있는 게 전공 영역 간의 벽”이라며 “대학도 기득권을 내려놓고 혁신 허브로 전환해야 하는데, 그런 차원에서 정원의 30% 정도는 벽을 허물고 아이들에게 전공 선택권을 줘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대학가는 설왕설래하는 분위기였다. 몇몇 평가 경험이 많은 팀장급 직원들은 장관이 가이드를 제시한 것이라고 보고, 다른 대학과 함께 진의를 파악하고 대응책을 논의하기 위해 분주하게 움직였다.

지난해 12월 18일 정책 연구진은 수도권 대학을 대상으로 ‘2024학년도 대학혁신지원사업 개편(안)’에 대해 의견 수렴을 진행했다. 말이 의견 수렴이지 기본 골격은 거의 확정된 상태로 요식행위 행사로 보였다. 입학 시 전공을 정하지 않고 일정한 기간 후 대학 내 모든 전공을 자율적으로 선택하는 ‘유형1’과 계열 또는 단과대 단위 모집 후 해당 단위를 선택하는 ‘유형2’로 구분하고, 2026년까지 수도권 사립대학은 ‘유형1’을 10% 이상, ‘유형1+유형2’를 25% 이상으로 하는 것을 교육혁신전략 평가의 필수요건으로 내세웠다.

국립대학은 ‘유형1’을 10% 이상, ‘유형1+유형2’를 30% 이상으로 할 것을 제시했다. 위 조건을 충족해야 대학혁신지원사업 교육혁신전략 인센티브(전체 인센티브의 80%)를 받을 자격을 주는데, 그 규모가 총 1920억 원에 이른다. 한 푼이 아쉬운 대학으로서는 달콤한 유혹이며, 이것이 2024년 인센티브로 그치지 않고, 향후 다양한 재정지원사업에서 주요한 지표로 활용될 것이기에 진퇴양난 상황이다. 대학마다 선택한 비율을 보고할 시간이 앞으로 불과 4~5개월밖에 남지 않았다는 점은 겨울 방학을 맞이한 대학 사회를 당혹스럽게 만들고 있다.

사립대, 국립대, 수도권, 지역대학 할 것 없이 대학들은 지난 2018년부터 본격화된 신입학 미충원 위기의 충격에서 벗어나고자 부단히 노력했으며, 2031년부터 다가올 제2차 학령인구 감소 위기를 타개하기 위한 준비도 차곡차곡 진행하고 있었다. 대학 중장기 발전계획을 재정비하고, 특성화를 추진하며, 지역과 연계한 각종 사업도 소홀함 없이 추진하고 있었던 터라 이번의 갑작스러운 요구는 당혹스럽기 그지없다.

그 방향이 맞다고 하더라도 십 수년간 유지한 학과와 전공의 벽을 허물기가 그리 쉬운 일이 아닐뿐더러, 대학의 모든 자원과 인프라가 학과와 전공을 중심으로 편성돼 있는데 이것을 몇 달 사이에 재편성할 계획을 제출하라는 교육부의 요구는 ‘대학의 담대한 혁신을 지원’ 하기는커녕 한겨울 날씨만큼이나 대학 구성원을 얼어붙게 하고 있다. 짧은 시간에 입시모집단위 25~30%를 조정해야 하므로, 대학은 교내 이해 당사자들 간의 충돌을 최소화하는 방안을 찾을 수밖에 없다.

또 이 방법이 기존 학과별 입시 모집단위 정원의 균등 차출이라면 대학의 위기는 더욱 가속화될 우려가 있어 보인다. 많게는 대학별 입학정원의 30%, 적게는 10%가 특정 인기학과(전공)로 쏠릴 경우 교육여건의 악화는 불을 보듯 뻔하다. 쏠림을 당하는 인기학과 입장에서는 기존 입학정원 대비 몇 배에 해당하는 학생을 단기간에 수용해야 하는데, 이것이 현실적으로 가능할지 하는 걱정이 앞선다. 교육여건이라는 것이 단시간에 빠르게 개선될 성질의 것이 아니므로 교수 부족, 실험·실습 공간 부족, 전공 학습공간 부족 등은 오히려 학습 여건을 더욱 악화시킬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비인기 학과(전공)도 소수 재학생이 존재하는 만큼 그들의 교육환경도 유지해야 하는 대학의 고민은 더 커질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 대학의 인기 전공 쏠림 현상은 국가 인재 양성 쏠림현상으로 나타나 향후 국가 산업 균형발전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높다. 수도권 대학, 국립대학, 글로컬사업30 선정대학 등이 이 정책의 실질적인 추진 대학일 것이고, 이들 대학에서 배출되는 인재는 경영 계열, 컴퓨터 계열 등으로 쏠림이 나타날 확률이 매우 높다.

교육부는 이번 조치가 국가 산업 균형발전을 위한 인재 양성에 문제가 없는지, 대학은 재정지원사업 인센티브 확보를 위한 급격한 개편이 ‘독이 든 성배’가 되지 않는지에 대해 구성원 모두의 지혜를 모아 방향을 설정하는 깊은 고민이 필요해 보인다.

<한국대학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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