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신열 고려대 부장

유신열 고려대 기획팀장
유신열 고려대 부장

“대지가 기운을 내뿜는 것을 바람이라고 말한다. 이것은 일어나지 않으면 그뿐이지만, 일어나기만 하면 모든 구멍이 성난 듯이 울부짖는다. 너는 무섭게 부는 바람 소리를 듣지 못하였는가? (중략) 산들바람에는 작은 소리로 대답하고, 거센 바람에는 큰 소리로 대답한다. 그러다가 사나운 바람이 가라앉으면 모든 구멍은 고요해진다. 너는 저 나무들이 휘청거리거나 살랑살랑거리는 것을 들어보지 못했는가?”

장자의 「재물론」 편에 등장하는 바람 이야기 중 일부 내용이다. 장자는 모든 구멍에서 나오는 이 ‘땅의 피리’를 통해 결국 ‘하늘의 피리’라는 자신의 철학으로 이끌어 간다. 사람이 불어서 나는 피리 소리처럼, 대지는 하나의 거대한 악기가 된다. 마주침이 없으면 소리도 없다. 악기와 바람이 마주침으로써 다양한 바람 소리가 발생한다. 그 소리는 음악이 되기도 하고, 소음이 되기도 한다.

사람이 만든 악기는 ‘음’이라는 표준이 있다. 악기에서 무한한 소리가 나지만 그 모든 소리는 결국 12음계 내에서 만들어지고, 소리를 내는 방법에 따라 피리, 기타, 피아노가 된다. 학문의 세계에서 대학은 악기와 같다. 학생, 산업체, 연구소, 지역사회, 정부, 병원 등과 같은 다양한 타자는 대학에 잠시 머물거나 스쳐 가는 바람이다. 이 타자들이 대학과 만나서 다양한 결과물을 만들어낸다. 좋은 결과물을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대학이라는 악기의 성능이 매우 중요하다.

지금의 대학의 모습은 1000년 동안 다듬어 온 결과물이다. 그 오랜 시간 다듬어 만들어 온 대학의 형성 과정은 인고의 시간을 거쳐 장인의 손끝에서 탄생하는 명품 악기 제작 과정과는 사뭇 다르다. 서로 다른 목적의 다양한 손길이 대학을 만드는 과정에 참여한다. 그래서 명품 악기에 견줄만한 대학을 만든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다.

최근 대학가에 불어오는 바람은 지역혁신중심 대학지원체계(RISE) 대응과 더불어 학사 유연화 정책이다. 학사 유연화는 학문 간 높은 담장을 터서 융합을 추구하는 과정이라고 하기도 하고, 다양한 직업에 적응하기 위한 목적이라고도 한다. 이러한 변화는 학과 또는 그 학과의 교육과정이 혁신의 대상이 되는 배경을 제공한다. 대학에 대한 다양한 역할과 정의만큼이나 학과라는 악기에 대한 소리의 기대치가 더 다양해져 가고 있다. 학과는 악기의 음과 같이 정확한 표준을 제공해야 하지만 동시에 사회의 변화하는 요구에 부응하는 다양한 역할을 요구받고 있다.

그렇다면 학과란 무엇이고 어떠한 악기가 돼야 하는가? 필자는 ‘학과’라는 용어가 전공, 교원의 소속, 학생의 소속, 모집단위라는 4가지 의미로 혼용돼 쓰이고 있다고 봤다(본지 2018.7.16.자 <대학의 학과란 무엇인가> 칼럼 참조). 그런데 이 4가지 의미 이외에도 누군가는 ‘학과’를 하나의 ‘학문’ 단위 용어로 쓰기도 하고, 또 누군가는 ‘직업’과 연결해 이해하기도 한다. 결국 대학이나 학과의 소리는 한 가지 악기로 표현할 수 없다. 타자의 다양한 기대와 상황에 따라 피리, 기타, 피아노가 돼야 한다. 물론 어떤 악기로 연주하든 모두 소리의 기본 음계는 같은 것처럼 대학이나 학과의 표준은 존재한다. 다만 악기의 음처럼 확연하게 그 표준을 인식하지 못할 뿐이다.

땅의 피리는 자연이 바람을 일으켜 나는 소리다. 장자는 바람 이야기를 통해 궁극적으로 마주침이 없는데도 사람의 마음에 나타나는 쓸데없는 소음이 어디에서 나오는지를 우리에게 반문하고 깨우치게 만든다. 대학이라는 악기에서 나오는 소리에는 스스로 만들거나 사회와 어우러져 만든 소음과 아름다운 음악 소리가 뒤섞여 있다. 대학이 다양한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다양한 요소와의 만남을 통해 아름다운 음악을 창조해내는 지혜를 발휘해야 할 시점이다.

<한국대학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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