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상기 한국전문대학교육협의회 진학지원센터장

배상기 한국전문대학교육협의회 진학지원센터장
배상기 한국전문대학교육협의회 진학지원센터장

일 년 전에 만났던 A양의 어머니로부터 전화가 왔다. A양 진로에 대해 조언을 듣고 싶단다. 당시 A양은 지방대학 3학년으로 재학 중이었다. 적성에 맞고 취업도 잘될 것이라는 생각에 진학했다. 그 학과는 전국에 몇 안 되는 전공이고, 연구원이 되고 싶다고 해서 대학원 진학을 추천했었다. A양이 공부하는 전공을 바탕으로 진학할 수 있는 몇 개 대학의 대학원을 추천한 뒤에, 서울대 대학원에 가려면 텝스(TEPS)라는 영어 시험을 준비하라고 했다. 서울대 대학원은 지원 자격으로 일정 점수 이상의 TEPS 성적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상담 하루 후에 A양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TEPS 시험을 치러보니 너무 어려워 토익(TOEIC)을 먼저 공부해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필자는 그 말을 듣고 답답한 마음에 한숨만 쉬었던 기억이 있다.

그랬던 A양이 다시 조언을 구하는 것이다. 반가운 마음에 전화를 받아보니 A양의 간절한 호소가 들려왔다. 자기 적성에 맞을 것 같아서 현재의 전공을 선택했지만 지나고 보니 적성에 맞지 않는 것 같다고 했다. 그리고 대학원에 진학해도 자신은 지방대학 출신이라 차별대우 받을 것 같다며, 일 년 동안 공부해 서울에 있는 대학에 편입한 뒤 대학원에 진학하는 것이 어떠냐고 물었다. 자기가 가고자 하는 대학 전공은, 지금의 전공보다 적성에 맞을 것 같다는 말도 덧붙이면서 조언을 구했다.

지인의 아들 B군은 20대 후반이다. 고등학교 때 열심히 공부했지만, 원하는 대학에 진학하지 못했다. 국내 대기업에서 운영하는 지방의 한 사립대학의 컴퓨터, 전자 통신 관련 학과에 진학했다. B군은 적성에 맞았기 때문에 그 전공만을 고집했다. 그 대학은 모 기업에 특채로 채용되는 트랙도 있어 괜찮은 대학이다. 그러나 2학년을 마치고 휴학했다. 전공이 적성에 맞지 않는 것 같고, 서울에 있는 대학으로 편입해야 취업에 유리하다고 생각해서다. B군은 편입 학원에서 일 년간 공부했다. 그런데 어느 대학도 합격할 수 없었다. 편입의 기회를 놓친 B군은 의복회사의 판매원으로 근무하기 시작했다. 전공이 적성에 맞지 않기에, 적성에 맞는 일을 찾고 싶다는 이유였다. 하지만 판매일도 몇 달을 견디지 못하고 그만뒀다. 자기와 맞지 않는다는 이유였다.

현재 고등학교 진로 교과서에서는 자기 적성에 맞는 직업을 찾으라고 가르치고, 어떻게 하면 적성에 맞는 직업을 찾을 수 있는지를 설명한다. 일부만 맞는 말이다. 세상에는 적성에 꼭 맞는 일을 하는 사람은 절대적으로 적을 뿐 아니라 고등학생 때는 자기의 적성을 제대로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자기 적성을 안다고 해도, 기업에서 요구하는 능력을 갖춰야 한다. 그 기업에서 사람이 필요한 시기와 맞물려야 직장을 가질 수 있다. 설사 적성에 맞는 일을 찾았더라도, 그 일로 수입이 생겨야 직업이 될 수 있다. 적성에 맞더라도 수입이 없는 일은 직업으로서의 가치가 없다.

자기 적성에 맞는 일에 종사하는 사람은 만족하며, 그렇지 않은 사람은 불행할까? 필자가 사회에서 만나는 직장인 가운데 적성에 맞는 직업에 종사하고 있다고 하는 사람은 매우 적었다. 각자 원하는 직업이 있었지만 여러 가지 현실적인 어려움으로 인해 현재의 일을 하게 됐다. 그런데 직장에서 일이 익숙해지면서 적성에도 맞는다고 느끼는 사람도 꽤 있었다. 반면에 적성에는 그다지 맞지 않아도 자녀를 교육하고 가족부양에 필요한 수입을 주기에 즐겁게 다니려고 한다는 사람도 꽤 많다. 그들에게 적성에 맞는 일이 나타난다면 옮길 것인지 물었을 때, 수입이 더 많으면 이직하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지금의 직장을 계속 다니겠다고 했다.

청소년 시절에 자기 적성을 찾고 그에 맞는 직업을 찾는 일은 훌륭하다. 다만 직업을 선택하는 데 적성만이 중요한 요소는 아니다. 적성과 함께 수입, 인간관계, 명예, 보람, 여유시간 등 다양한 요소를 고려해야 한다. 그러므로 적성만을 찾고 적성에 맞는 직업만을 찾으려고 하지 말자. 그것은 감나무 밑에서 감이 떨어지기를 기다리는 것과 같다. 적성을 찾지 못하면 만들자. 한 가지 일에 오래 몰두하면서 능력이 향상되고 수입이 좋아지고 인정을 받으면, 그 일이 적성에 맞는 것처럼 즐겁고 좋아진다. 적성은 선천적일 수도 있지만 꿈을 향해 도전하면서 만들 수 있다는 게 필자의 생각이다.

<한국대학신문>

저작권자 © 한국대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