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우 경인방송 대표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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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2월 9일, 현대아산병원 영안실을 찾아 이상주 전(前) 부총리를 조문했다. 그는 청와대 교육문화수석비서관, 교육부총리로 일하셨고 울산대, 한림대, 강원대, 성신여대에서 무려 21년이나 총장을 지내셨다. 자신이 설립한 학교가 아닌 곳에서 이렇게 오래 총장직을 수행한 분은 없는 걸로 안다.

이상주 전 부총리가 김대중 대통령 정부 마지막에 교육부총리로 오셨을 때, 나는 기획관리실장으로 그분을 모셨다. 부총리는 늘 나갔다 오시면 제일 먼저 나를 불러, 누구를 만났고 어떤 행사에 갔는지 무슨 일이 있었는지 이야기했다. 그러면 나는 듣고, 그게 어떤 내용이고 어떤 의미가 있는지 의견을 드리곤 했다. 이 과정에서 나를 신뢰하시게 된 듯하다. 그래서 끊임없이 어디를 가건, 누구를 만나건 항상 나에게 몽땅 털어놓으셨고, 나의 얘기에 귀를 기울이셨다.

내가 이상주 교육부총리에게 놀란 것은 그분이 가진 유머와 칭찬 때문이었다. 이 부총리에게 이런 말을 들은 일이 있다. 정주영 현대 회장이 살아 계실 때, 공식 일정이 아닌 저녁 식사 때면 늘 함께 하는 고정 멤버가 탤런트 강부자 씨와 이상주 부총리 자신이었다는 얘기였다. 바쁘고 힘든 일정에서도 잠시나마 함께 저녁을 먹으며 환담할 친구로 여긴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마음 편하고 즐겁게 행복을 나눌 수 있는 친구가 됐기 때문이다. 이상주 부총리는 그만큼 유머가 풍부하고, 다른 사람을 편안하게 해주는 분이었다.

그 날 빈소에서 김대중 대통령의 비서실장을 하게 된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었다. 이상주 교육부총리는 청소년 시절 웅변을 잘했다. 한번은 전국 웅변대회에 나가려고 코치해줄 선생님을 찾아 지도를 받고 웅변대회에서 1등을 했다. 코치는 ‘장래가 촉망 된다’며 다음에 꼭 연락하라고 했다고 한다. 바로 그 코치가 김대중 대통령이었다.

이상주 부총리의 유머는 언제나 좌중을 즐겁게 한다. 2002년 가을, 부총리를 모시고 부산으로 출장 갔을 때다. 그 유명한 ‘초원복집’에서 박재윤 부산대 총장, 강남주 부경대 총장과 넷이 저녁 식사를 했다. 옆방에서 저녁 식사를 마치고 나가던 유흥수 의원(현 국민의힘 상임고문)이 ‘이상주 장관이 계신다’는 주인장의 말을 듣고, 인사차 우리 방으로 잠깐 들르셨다. 그 후 한 시간 넘도록 혼을 쏙 빼앗긴 채 웃었던 기억이 선하다. ‘유머의 대가들’답게 쉼 없이 쏟아내던 즐거운 말 잔치를 어찌 잊으랴.

이상주 부총리는 유머도 대단하셨지만 더 큰 무기를 갖고 계셨다. “나는 이 실장을 만나서 많이 배운다. 너무 좋다!” 이상주 부총리는 이런 말씀을 자주 하셨다. 칭찬은 사람의 마음을 편하고 즐겁게 만든다. 내 도리를 다했을 뿐, 격려의 말씀이라고 생각했지만 그 칭찬은 늘 최선을 다해 일하고 싶게 하는 힘을 줬다. 이상주 부총리는 전두환 정부에서 교육문화수석으로 일하고도, 김대중 정부 교육부총리와 비서실장이 된 건 바로 이런 인품과 감각 때문이다.

나는 이상주 부총리에게 깜짝 놀랄 과분한 칭찬을 들은 적이 있다. 2002년 12월 말, 여의도 사학연금회관 19층 보헤미안을 빌려 망년회를 할 때였다. 당시 교육부 장·차관, 실·국장이 모두 부부 동반으로 참여했다. 분위기가 무르익자, 이 부총리가 한 사람 한 사람 소개를 하셨다. 그런데 나를 소개하는 말씀을 이렇게 하셨다. “이해찬 장관이 이기우 실장을 백 년에 한 번 날까 말까 한 공무원이라고 했는데 틀린 말이니 바꿔야 합니다. 백 년이 아니라 천 년에 한 번 날까 말까 한 공무원이라고 반드시 바꿔야 합니다.” 얼굴을 들 수 없을 정도의 칭찬이었다. 이 이야기는 정현석 성신여대 교수가 쓴 책에도 일화로 실려 있다.

그런데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2003년 2월 26일, 김대중 정부의 마지막 날이었다. 교육부총리도 역시 임기를 마치는 날이어서 교육부 실·국장들과 기념사진을 찍고 헤어지는 마당이었다. 그때 마지막으로 남긴 말씀은 나를 한 번 더 감동시켰다. “내가 서울대 교수도 하고, 대학 총장도 무수히 하고, 정신문화연구원원장과 청와대 교육문화수석과 대통령 비서실장도 했지만 교육부 장관으로 일하는 동안 이기우 실장에게 제일 많이 배웠습니다.” 아마도 그 자리에 있던 차관과 실·국장 모두가 놀랐을 것이다. 그동안 이 부총리가 어디서 누구를 만나고 오실 때마다 나를 불러 말씀하시고, 나의 의견을 들었다는 것은 아무도 몰랐기 때문이다. 그 자리만이 아니다. 교육계 인사를 만날 때마다 들려오는 이야기가, 나에 대한 칭찬을 입에 달고 계셨을 정도라는 말이었다. 열심히 일한다고 모두 이런 말을 들을 수 있는 건 아닌데, 나의 생애에 다시 이런 인정과 칭찬을 들을 수 있을까? 그 순간들을 떠올릴 때마다 지금도 울컥한다.

이상주 부총리와 관련된 ‘유머와 칭찬’에 대해 쓰고 싶은 이야기는 넘치지만, 지면상 아껴야 하는 점이 안타깝다. 수많은 모임과 자리에서 시간을 잊은 끝없는 유머 넘치는 대화, 열정을 불러일으킨 칭찬들을 오래오래 간직하고 싶다. 너무도 즐겁고 행복한 순간들이었다. 나는 이상주 전(前) 부총리를 보내며, 마음속으로 외쳤다. “칭찬과 유머의 달인, 이제 잠들다!”

<한국대학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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