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효석 건국대 혁신사업본부 혁신지원사업센터장·기획처 전략기획팀장

김효석 건국대 혁신사업본부 혁신지원사업센터장·기획처 전략기획팀장
김효석 건국대 혁신사업본부 혁신지원사업센터장·기획처 전략기획팀장

최근 대학가의 가장 뜨거운 키워드는 ‘학과 간 벽허물기’다. 교육부는 올해 초부터 ‘학과 간 벽허물기’에 본격적으로 나서면서 정책적으로 대학별 자율 혁신을 통한 체질 개선을 요구하고 있다. 대학에 몸담은 경험에 비춰보면, 기실 대학이라는 조직의 벽 허물기보다 어려운 것이 학과나 커리큘럼의 벽을 무너뜨리는 일이다.

학과 간 벽허물기에 대한 얘기를 하자니 예전의 ‘학부제’가 떠오른다. 국내 대학이 전통적인 학과제에서 학부제가 도입된 역사를 살펴보면, 서울대가 1992년도에 ‘전기전자제어공학과군’으로 신입생 215명을 모집했다. 당시에는 상상하기 힘든 혁신적 사건이었다. 서울대가 2002학년도 학부 신입생 선발에 모집단위 광역화와 제2 전공 의무화를 실시하는 것을 기점으로 전국 대학에 ‘학부제’ 도입이 대대적으로 이뤄졌다.

서울대발 학부제 결론은 어떻게 났을까? 인기학과와 비인기학과 간 양극화·불균형이 발생해 전공선택 시 인기학과로 가기 위한 과열경쟁이 빚어지는 폐단이 발생했다. 또 전공을 선택할 때 성적에 맞춰서 가는 현상이 발생해 학부제의 도입취지가 무색해지게 됐다. 순수학문의 경우 전공 학생 수의 감소로 인해 학문적 존속 자체를 위협받는 경우가 생겨 결국 학부제를 폐지하고 다시 개별 학과 단위로 신입생을 모집하게 되는 되돌림 현상도 발생했다.

다시 2024년으로 돌아오면 올해 1월 대학혁신지원사업 기본계획에서 학과 간 벽허물기는 두 가지 유형으로 제시됐다. 첫째, 전공을 정하지 않고 모든 대학 내 모든 전공을 선택하는 유형1이다. 단, 선택할 수 있는 전공에서 보건의료, 사범계열 등은 제외된다. 둘째, 계열 또는 단과대 내 모든 전공 자율선택 또는 학과별 정원의 150% 이상 범위 내 전공을 선택하는 유형2이다.

교육부가 제시한 무전공 입학 방식은 학생들에게 전공선택권 강화라는 취지에서 보면 매우 바람직하고 미래대학이 가야할 방향성에도 부합한다. 하지만 취업률이 높고 산업 수요가 많은 특정 학과 쏠림 현상은 피할 수 없다. 이렇게 진행될 경우 기존 학과로 입학한 재학생들의 수업권이 방해되는 문제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 또한 본인이 가고 싶은 전공을 선택하지 못할 경우 중도이탈 가능성도 높아진다. 이는 수도권 대학보다 비수도권 대학에서 더 심하게 발생할 가능성이 크다.

교육부에서는 글로컬대학사업을 통해 이미 학과뿐만 아니라 대학 간 벽허물기 가속화를 유도하고 있고, 첨단분야 혁신융합대학사업, 인문사회 융합인재양성사업 등을 통해 전방위적 대학의 혁신을 주문하고 있는 상황이다. 2025년 본격적으로 시행될 지역혁신 중심 대학지원 라이즈(RISE)사업에서도 같은 정책적 기조를 보여줄 것으로 예상된다.

문제는 대학이 준비가 돼 있느냐다. 체계적인 교육과정과 교육인프라 확충 없이 무전공 입학을 서둘러 도입했다가는 애꿎은 학생들만 피해가 생기지 않을까 염려스럽다. 교육부가 목표로 하는 융합형 인재 양성에도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문·이과 기초학문이 황폐화될 수 있는 우려가 크기 때문이다.

대학에서 ‘학과 간 벽 허물기’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철저한 사전준비가 이뤄져야 한다. 특히 재학생들과 충분한 사전 논의가 필요하다. 이렇게 진행돼야만 학생들이 피해를 입지 않고, 전공 선택권을 강화하면서 순수 기초학문도 발전할 수 있는 상생안을 모색할 수 있을 것이다. 이미 주사위는 던져졌다. 대학들은 이제 학생들을 위해 학과, 대학 간 벽을 허물고 양질의 융합 고등교육을 어떻게 제공할지 구성원들의 중지를 모아야 한다. 국가가 요구하는 미래 인재를 양성할 수 있도록 그 어느 때보다 교육혁신이 필요한 시점이다. 새삼스럽지만 위기가 기회일 수도 있다.

<한국대학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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