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정(醫政) 갈등이 극한대립으로 치닫고 있다. 정부는 의대 정원 증원이 “지역 의료 불균형 해소와 의료 수급 균형을 위한 필수적인 정책”이라고 주장하며 내년도 의대 입학 정원 2000명 증원 작업을 마쳤다. 의료계에서는 “의료 질 저하, 전공의 과잉, 의료 재정 악화” 등을 초래할 것이라고 우려하며 전면 백지화를 요구하고 있다. 

의정 갈등이 장기화되면서 피해는 오롯이 국민 몫이 되고 있다. 병원 진료가 지연되고 이미 정해진 수술도 기약 없이 연기되고 있다. 지역의료 체계가 붕괴되고 초고령화 사회로 접어들면서 의사 부족에 대해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졌다. 이런 국민적 인식이 있었기에 의대 정원 증원에 대한 여론은 우호적이었다. 정부의 전격적인 증원 발표가 사이다 같은 청량감을 준 것도 사실이다. 이번만큼은 ‘의사불패’ 신화가 깨지겠구나 하는 예상이 돌았다. 

정부는 여론의 지지에 힘입어 증원 반대 의사들에게 ‘절대 악’의 프레임을 씌우는 데 어느 정도 성공한 듯이 보였다. 의사들은 수세에 몰렸고, 여론은 증원에 반대하는 의사들의 집단행동에 ‘집단 이기주의’ ‘엘리트 특권주의’로 몰아붙였다. 

2020년 의료사태를 경험한 의사들은 격렬히 반대하고 나섰다. 전공의가 집단 사직하고, 의대생도 동맹 휴학에 들어갔다. 이제 의대 교수까지 사직서를 제출하고 있다. 그러나 정부의 의대 증원은 예정대로 추진됐다. 의정은 ‘강 대 강’ 구도 속에서 끝없는 평행선을 달려가고 있다. 이러는 사이 의정 갈등을 보는 국민 시각에도 미세한 변화가 감지된다. 초기의 우호적인 여론이 약화되면서 소극적 지지세로 돌아서기 시작한 것이다. 

초기의 열광이 냉정을 찾았다고나 할까. 피로감이 실생활에서 느껴진 게 원인이다. 당장 2000명 증원 숫자에 대한 의문부터 시작됐다. 무슨 근거로 2000명이란 숫자가 결정된 것일까. 여러 매체에서 숫자의 정당성을 따지기 시작했다. 증원 결정 시기와 전격적 추진방법도 도마 위에 올랐다.  

의대증원 발표 초기 윤석열 대통령과 국민의힘 지지도는 그야말로 수직상승했다. 대통령의 결단으로 포장된 파격적 의대증원은 그 어느 정부도 해내지 못한 쾌거로 받아들여졌다. ‘총선용 공작’이란 주장이 ‘정치 공세’로 여겨지기까지 했다. 

그러나 상황은 바뀌었다. 대통령과 여당 지지율이 추락하면서 ‘정치 공작’이 아니라 오히려 ‘자살골’이 될 수 있는 상황이다. 박빙 선거전을 치르고 있는 여당 후보들은 정부의 유연한 대처를 촉구하고 나섰다. 의정 갈등 초기의 공세 국면이 수세로 돌아선 것이다. 

정부가 급해졌다. 엊그제까지 의사 면허정지 등 엄격한 법 집행을 내세우며 의료계를 압박해왔던 강경책을 거두고 갑자기 유연한 대처로 방향을 틀었다. 일부에서는 ‘그럴 줄 알았다’란 조소가 터져 나왔다. 그러나 상황은 더 꼬이고 있다. 

강경 대응을 주문했던 대통령까지 나서 의료계와의 대화를 주문하고 있으나 전공의를 비롯한 의료계 입장은 요지부동이다. 그러나 이 또한 바람직하지 않다. ‘의사불패’ 신화를 냉소적으로 보는 일반 국민들의 시선을 가볍게 보아서는 안될 것이다.

지금 펼쳐지는 의정 갈등은 한 쪽이 양보하지 않으면 이길 수 없는 치킨게임이 되고 있다. 치킨게임은 어느 한 쪽이 양보하지 않을 경우 양쪽이 모두 파국으로 치닫게 되는 극단적 게임을 일컫는데, 이번 의정 갈등이 그런 양상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정부, 의료계가 둘 다 지금의 고집을 부리면 공멸할 수 있는 게임이다. 

이제 상황을 정관(正觀)할 때다. 이 게임에서 승자 운운은 불길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한 발자국씩 뒤로 물러나는 지혜가 필요하다. 이제 의정 갈등은 단순히 정부와 의료계만의 대립 문제가 아니다. 전 국민적 문제로 전화(轉化) 됐다. 

현재 의정 갈등은 정부와 의사에게만 맡겨서는 해결이 어려운 단계까지 악화됐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이제라도 정부, 의료계, 국민이 함께 머리를 맞대고 해결책을 모색해야 한다. 의·정·민이 참여하는 중재위원회라도 만들어 의정 갈등 해소를 위한 실질적인 조치를 해나가기 바란다.

<한국대학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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