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재앙의 우려가 고조되는 일본 대지진의 경제적 영향을 이해하려면 ‘꼬리 리스크(tail risk)’ 개념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꼬리 리스크’란 거대한 일회성 사건이 자산 가치에 엄청난 손실을 줄 수 있는 리스크를 말한다.

평균치를 중심으로 대칭을 이루는 종 모양의 정규분포 곡선을 따를 때 바깥쪽으로 갈수록 높이가 낮아지는 꼬리 모양을 이루는데 ‘꼬리 리스크’란 리스크 발생 확률이 매우 적은 맨 꼬리 부분에 위치한 데서 비롯한다.

금융 조직 전체에 걸쳐 예기치 못한 사건이었던 글로벌 금융대위기처럼 일본의 대지진은 ‘꼬리 리스크’에 해당한다. 발생 확률이 아주 낮은 반면 상상을 초월하는 피해를 입히고 있기 때문이다.

일본 원전은 7.5~8.0 규모의 지진까지 견딜 수 있도록 설계되었는데 이번에 발생한 일본 대지진은 그 한계를 훨씬 뛰어넘는 9.0 규모였다. 7.5~8.0 규모에 맞춘 이유는 그 이상의 규모에서 지진이 일어날 확률이 거의 없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원전의 내진 설계가 6.5 규모의 지진에도 견딜 수 있게 돼 있다는 것도 같은 논리다. 실제로 20세기에 일본에서 발생했던 지진들은 대개 한계 규모 이내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대 지성에 기초해 설계한 리스크 관리 시스템이 ‘꼬리 리스크’를 외면하는 이유는 확률이 제로에 가까운 리스크에 투자를 하는 것은 경제적으로 합리적이지 않다고 보기 때문이다.

즉 ‘꼬리 리스크’가 발생할 경우 예상되는 손실이 예방 비용보다 훨씬 작다고 보는 것이다. 그런데 금융대위기나 일본 대지진은 예상했던 손실이 얼마나 과소평가되었는가를 잘 보여준다. ‘꼬리 리스크’가 야기할 예상 손실의 과소평가는 발생 가능성을 낮게 평가했거나 손실액을 과소평가했을 경우지만 현대 리스크 관리 시스템은 양자 모두 해당된다. 네트워크효과 및 전염효과를 간과하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꼬리 리스크’의 발생은 시스템의 위기이자 지성의 위기를 의미한다. 특히 미국발 금융대위기와 일본 대지진은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개인주의 문화와 집단주의 문화가 건설한 최고의 시스템이 실패했음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이는 문명의 한 사이클이 막을 내리고 있음을 의미한다. 그런데 새로운 시스템, 아니 새로운 문명 건설의 준비가 안 되어 있다는 점에서 위기다.

이처럼 일본 대지진을 단순히 경제적 피해의 규모로 이해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대지진이 발발했던 초기에 일부 전문가들이 1995년 고베 대지진의 경험에 비유하며 경제에 ‘단기 악재, 중장기 호재’로 작용할 수 있다는 전망이 힘없이 무너진 이유다.

저출산-고령화와 ‘수출에 죽고 사는 경제구조’ 그리고 대규모 국가부채와 저금리 구조의 장기 지속 등이 보여주듯이 대지진 이전에 일본경제는 이미 서서히 가라앉고 있었다. 산업기반이야 시간이 지나면 복구될 수 있지만 중요한 점은 새로운 시스템을 설계할 정치리더십이 존재하는가이다. 대지진 이전에 이미 무기력증에 빠진 일본경제와 자신감을 상실한 일본사회에 ‘제2의 메이지 유신’ 같은 강력한 개혁의 필요성이 제기되었지만 개혁을 끌어낼 정치리더십이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시스템 균열을 가져오는 ‘꼬리 리스크’ 발생은 성장 역량을 구조적으로 저하시킨다. 외환위기 이후 한국경제의 잠재성장률이 하락한 것이나 금융위기 이후 미국경제가 ‘뉴 노멀’의 시대로 진입하고 있듯이 일본경제의 성장 역량의 구조적 저하는 불가피하다. 이는 오래 전부터 쇠약해지고 있었던 일본경제에 치명타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즉 대지진을 계기로 정치리더십의 부재와 정부에 대한 신뢰 약화는 가속화될 것이고, 이는 ‘정부에 의해 관리된 시장’에 기반한 일본경제의 침식을 앞당길 것이다. 그리고 세계경제에서 일본 제조업의 비중이나 글로벌 금융시장에서 엔화의 역할에 비례하여 글로벌 경제에 그 파장은 확산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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