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배근 본지 논설위원/건국대 경제학과 교수

물가안정 책임을 맡고 있는 한국은행 총재가 사실상 물가관리 실패를 시인했다. 지난해 봄 취임하며 “한국은행도 정부이기에 대통령으로부터 독립한다는 것은 적절치 않고, 통화정책의 방향 선택도 모든 경제정책의 최종 결정자인 대통령의 몫”이라 했던 김중수 총재의 ‘중앙은행관’으로는 예견된 결과다. 물가안정의 책임을 맡고 있는 자가 ‘성장률 수치 끌어올리기’를 국정 최우선 목표로 삼는 정부의 하수인으로 전락한 결과이기 때문이다.

MB 정부의 정책목표는 시종일관 물가와 서민의 희생을 대가로 한 ‘성장률 수치 끌어올리기’였다. 출범 당시 MB 정부는 인위적으로 성장률 수치를 끌어올리기 위해 글로벌 약달러 추세를 거스르며 고환율 정책을 추진했다. 고환율은 석유 및 원자재 가격 상승과 더불어 2008년 물가 폭등의 주요 원인으로 작용한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러면서 정부는 물가안정을 핑계로 임금 인상 억제에 앞장을 섰다.

물가에 대한 환율의 영향은 임금이 물가에 미치는 영향에 근접하고 있는 상황이다. 흔히 우리 경제의 구조적 문제로 과도한 대외의존도를 지적하듯이 환율이 물가에 미치는 영향은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는 반면, 노동소득분배의 악화로 임금이 물가에 미치는 영향은 하락하고 있다. 고환율 정책은 소수의 수출대기업의 매출과 수익을 증가시키는 반면, 물가 상승을 통해 국민의 실질소득이 저하된다는 점에서 국민의 주머니를 털어 대기업에게 소득을 이전시키는 보조금의 성격을 가진다. 기업은 돈을 버는데 국민은 빈곤해지는 이유이고, 양극화와 내수 취약성이 심화되는 이유다.

내수가 취약해지니 다시 수출과 고환율 정책에 목을 매는 악순환 고리에 빠진다. 그렇다보니 한은 총재까지 환율을 걱정하며 물가 폭등 속에서도 금리 인상을 포기한다. 우리나라의 소비 비중이 미국은 물론이고 근면한 소비를 한다는 독일이나 일본, 심지어 대만보다 기형적으로 낮은 이유다. 소비는 일자리 창출 효과가 가장 크고 수출이 가장 작다는 점에서 고환율 정책은 ‘반(反) 일자리정책’이기도 하다. 일반 국민이 피부로 느끼듯이 MB 정부는 철저한 반서민·친재벌 정부다.

또 다른 정책실패가 인위적 건설경기 부양에 의한 ‘성장률 수치 끌어올리기’였다. 주택시장과 건설산업에 대한 글로벌 구조조정 흐름과 정반대의 길을 간 것이다. 빚을 줄이는 전 세계의 흐름 속에서 유독 우리나라 가계빚만 늘어난 이유이다. 우리나라의 건설산업이 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미국이나 일본에 비해 두 배나 될 정도로 구조조정이 시급한데 역으로 과잉의 거품을 키운 것이다.

게다가 건설산업의 일자리는 임시직이나 일시고용 등 괜찮은 일자리와는 거리가 먼 반면, 건설업이 재벌기업의 진출 1순위 업종이라는 점에서 인위적 건설경기 부양 역시 국가 자원으로 재벌기업을 지원하는 반서민·친재벌 정책이다.

정부의 인위적 건설경기 부양이 반서민 정책인 이유는 전세대란에서도 확인된다. 도심 재개발·재건축의 동시다발적 추진과 임대주택 공급의 대폭 축소 등으로 전세대란은 예고된 것이었다. 즉 전세대란도 정부에 의한 ‘미필적 고의’에 의한 것이다. 대부분의 부동산 규제를 풀었음에도 주택시장이 살아나지 않자 전세 폭격을 받은 서민에게 빚내서 집을 사라고 권하는 정부다.

전세 및 물가대란으로 서민주거권 및 생계가 위협에 내몰리니 가계부채 증가세가 멈출 리 만무하다. 우려할 수준이 아니라며 가계부채를 늘리다가 뒤늦게 내놓은 가계부채 대책은 서민금융의 위축과 대출금리의 인상 등으로 서민 가계의 고통을 증대시키고 있다. 가계부채 증가의 근본원인인 경제정책을 바꾸지 않으니 가계부채 대책 역시 실효성이 없다.

이처럼 글로벌 흐름을 거스른 MB 정부의 역주행으로 우리 경제는 총체적 난국에 빠졌고 대다수 서민은 희망을 가질 수 없다. 문제는 향후에도 물가 폭등과 주거 불안정의 해소를 정부에게 기대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경제철학을 바꿀 의사가 없고 정책실패를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보니 정부가 내놓는 모든 대책이 무용지물이고, 국민은 정부를 더 이상 신뢰하지 않는다. 가계부채, 물가 및 전세 대란 등으로 내수가 위축된 상황에서 대외 불확실성까지 고조되며 우리 경제는 저성장의 늪으로 빠져들고 있다. ‘성장률 수치 끌어올리기’ 경제철학의 처참한 결과다.

이 정부는 저성장도 물가폭등과 마찬가지로 대외환경의 탓으로 돌릴 것이다. 대외 여건만 개선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될 거라는 ‘천수답정권’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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