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실대학 "관료 손끝에 대학 운명 달려" 불만

부실대학 퇴출이라는 대의명분을 얻은 교육과학기술부의 행정 편의주의가 일선 대학들을 울리고 있다. 이상한 지표 계산이나 현실성이 부족한 지표 적용 등 막무가내식 탁상행정에 불만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23일 대학들에 따르면 최근 하위 15%인 재정지원 제한대학 선정 등 대학 구조조정이 ‘전가의 보도’가 됐다. 그간 대학들이 계속 제기한 종교계·예술계 대학들의 특수성이나 지방대의 불리함을 감안하지 않은 점, 몇몇 지표에 따른 정량평가 방식의 맹점에 대한 비판 외에도 교과부의 과도한 지표 산출과 적용이 이어지고 있다는 지적이다.

대표적 사례가 2년 연속 학자금 대출제한대학에 선정돼 퇴출 대상으로 지목되고 있는 건동대다. 건동대는 최근 학자금 대출제한대학 선정과는 별개로 입학정원 대폭 감축 명령을 받았다.

건동대가 교과부로부터 받은 행정제재는 무려 내년 입학정원의 약 53%를 줄이라는 것이다. 사실상의 학교 퇴출 수순을 밟는 셈이다. 부실대학 낙인에 대한 조치로 받아들여지지만, 사실은 이와 조금 다르다. 문제가 되는 것은 이번 조치가 전문대에서 4년제 종합대로 전환한 건동대가 요건인 ‘전환 4년째 전임교원 확보율 100%’를 채우지 못한 데 따른 것이다.

지나치게 과도한 제재가 일선 대학의 불만을 샀다. 그동안 교과부는 의대 부속병원 설립 요건을 충족하지 못한 관동대에 입학정원 10% 감축 조치를 내린 게 최대 수치였다. 두 자릿수 감축 자체가 이례적으로, 정원의 50%를 넘게 줄이라는 조치는 처음 있는 일이다.

이는 교과부의 속내가 부실대학 퇴출이라는 명분을 이유로 이 기회에 ‘화끈하게’ 대학을 정리하려는 데 있음을 보여준다. 교과부가 명분을 합리화하기 위해 이상한 계산방법이나 과도한 지표 적용을 불사했다는 게 대학 측의 항변이다.

더 큰 문제는 이 조치의 법적 근거나 지표 합당성이 부족하다는 데 있다. 우선 제시된 기준인 전임교원 확보율 100%에서 현 확보율 47%를 뺀 만큼의 정원을 감축하라는 것이 정당한가의 여부다. 교과부 측은 53% 정원을 감축하면 자연스레 전임교원 확보율이 가능하다는 논리를 폈다.

기존 대학들의 평균 전임교원 확보율이 70~80%대에 머무르는 점을 고려하면 더욱 어이없는 계산법이다. 이 논리대로라면 전임교원 확보율 100%를 채우지 못한 다른 대학들도 그만큼 입학정원 감축을 당해도 할 말이 없다. 올해 대학정보공시에 따르면 전임교원 확보율 100%를 채운 대학은 전국적으로 상위 20여개에 불과하다.

건동대는 이 때문에 교과부를 상대로 이번 조치의 법적 근거를 밝히라는 행정소송을 청구할 계획이다. 김철현 건동대 기획처장은 “학교의 존폐가 걸린 만큼 이러한 조치의 전례가 있는지, 법적 근거는 무엇인지 법정에서 따질 계획”이라고 밝혔다.

자체적으로 학사구조조정에 나선 대학들에 대한 인센티브는커녕 오히려 평가에서 불이익을 받는 점도 문제다. 정부가 학교 상황이나 개선 노력에 대한 감안 없이 표면상 지표만으로 평가하고 있는 것이다.

일례로 대학 입장에서는 학과 통폐합에 나서 폐과된 학과의 얼마 안 남은 재학생들이 졸업할 때까지의 ‘과도기’가 재학생 충원율에서 큰 손해를 보게 된다. 적극적으로 구조조정 하라는 정부 방침에 따랐지만 오히려 피해를 입은 케이스다.

이순자 경주대 총장은 “자체 구조조정에 적극 나서 학과를 통폐합했지만 보상이 아니라 오히려 평가에서 마이너스 되는 상황을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폐과를 하더라도 남아있는 학생들은 보살펴줘야 하지 않느냐. 이런 학과들의 재학생 충원율을 따지면 10%도 채 안 된다”며 “이런 학과들은 해당 지표 평가에서 제외하는 운영의 묘가 필요하다”고 꼬집었다.

이외에도 평가지표 중 하나로 활용된 학자금 대출 상환율의 경우 정보공시 외 추가항목으로 산정된 지표로 객관성이 부족하다는 지적이다. 다른 지표상의 맹점도 많지만 재학생·졸업생들의 학자금 대출 후 상환 여부를 따지는 이 항목은 특히 대학이 어쩔 수 없는 부분이라 억울하다는 표정이다.

가장 큰 이유는 이 항목이 가정 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이 많은 대학에게 불리하기 때문이다. 이를 대학의 책임으로 떠넘기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는 것이다. 특히 등록금 수준이 높을수록 학자금 대출자가 많을 것이라는 일반적 예상과 달리 오히려 등록금이 비싼 서울 주요 대학들의 대출자 비율이 낮은 아이러니컬한 상황까지 겹쳐 지방대들의 불만이 크다.

이와 관련, 한 지방대 관계자는 “교과부 관료가 지표상으로 정렬해 선을 그은 뒤 퇴출 대상으로 정해버리면 그 대학은 문을 닫아야 한다”며 비판했다. 이 관계자는 “대학 구조조정이 불가피하다면 최소한 지표 계산과 적용에서는 세부적인 것까지 해당 대학이 납득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생존이 걸린 대학들의 반발이 극심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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