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수서원 정신 이어받아 공무원사관학교 모델 구축

▲ 동양대 본관 앞에 자리잡고 있는 학자수(소나무).

동양대는 ‘공무원사관학교’ 브랜드로 전국적 인지도를 쌓았다. 1994년 문을 연 짧은 역사에 지방 소도시의 작은 대학이지만 확실한 정체성을 세워 강소(强小)대학으로 자리매김했다. 지난 2004년 전국 대학들 중 최초로 공무원사관학교를 표방하고 나서 주목받은 덕분이다. 동양대가 어디에 있는지, 얼마나 오래된 대학인지는 알지 못해도 공무원사관학교라는 브랜드는 사람들의 뇌리에 각인됐다.

공무원사관학교라는 이미지만 그리다 직접 찾아가보면 캠퍼스가 인상적이다. 탁 트인 캠퍼스 곳곳에 심어진 학자수(소나무)가 시선을 잡아끌어서다. 경북 영주시 풍기읍, 동양대가 위치한 이곳과의 연관성을 상징하는 조경이다. ‘선비의 고장’이라 불리는 풍기에 자리 잡은 우리나라 최초의 사액서원인 소수서원을 계승하자는 의지를 나타냈다. 동양대의 공무원사관학교 브랜드가 선비의 인성과 자질을 갖춘 공인을 키우고자 하는 것임을 알게 되는 것이다.

■ 소수서원 연원 품은 공무원사관학교 = 동양대의 공무원사관학교 프로그램은 독특하다. 다른 대학들의 고시반과 달리 전체 학과를 대상으로 한 특화된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공무원사관학교 전용 건물을 건립해 야간·방학기간에도 커리큘럼을 소화할 수 있도록 했다. 때문에 흔히 생각하는 일반행정 공무원 배출에 국한되지 않는다. 전공이나 희망에 따라 다양한 직렬별 공무원과 준공무원 준비가 가능한 게 장점이다. 단과대학인 철도대학·국방기술대학과 공무원사관학교 프로그램을 연계해 철도 공무원이나 코레일, 각 지역 메트로(지하철공사), 군무원 등으로 진출하는 사례가 대표적이다.

커리큘럼은 단순한 수험 과목 대비를 넘어 공무원에게 걸맞은 인성을 기르는 데 초점을 맞췄다. 인성교육을 병행해 청렴한 공무원을 길러낸다는 의미다. 매년 치르는 전통 성년례를 비롯해 명사 초청강연 ‘동양의 정신’ 개설 등 다양한 프로그램이 뒷받침됐다. 대학 마스코트인 ‘디지털 선비’ 역시 이 연장선상에 있다. 동양 고유의 사상을 배우고 익힐 수 있는 환경을 십분 활용해 올곧은 정신의 공공 관료를 육성해내자는 게 공무원사관학교 브랜드의 탄생 배경이 됐다.

이 같은 동양대 공무원사관학교의 롤모델은 인근에 위치한 소수서원이다. 소수서원은 당초 백운동서원으로 설립됐으며 풍기군수로 부임한 퇴계 이황이 요청해 소수서원으로 사액(賜額)됨과 동시에 국가 지원을 보장받았다. 국내 최초의 사학으로 수많은 학자와 관리들을 배출한 곳으로 동양대에서 약 10km 거리에 있다. 동양대 관계자는 “공무원사관학교는 소수서원의 현대적 계승이라는 의미에서 시작된 것”이라며 “직업인으로서의 공무원을 넘어 소수서원이 그랬듯 지역교육의 중심이자 공공 관료를 길러내는 역할을 수행하자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 전통인성교육관 ‘현암정사’.

■ ‘선비정신’ 깃든 학자수 캠퍼스 눈길 = 캠퍼스 전체에 너르게 펼쳐진 녹색 잔디밭에 학자수(學者樹) 소나무가 서있는 모습에는 동양대가 내세우는 선비정신이 깃들었다. 소수서원에 들어서면 볼 수 있는 아름드리 학자수를 본떠 캠퍼스 곳곳에서 소나무를 만날 수 있다. 설립자 최현우 선생이 소수서원의 학풍을 이어받고 선비정신을 계승하고자 손수 캠퍼스 마스터플랜에 따라 동선과 지형을 고려해 건물을 짓고 분재에도 힘썼다. 조경 담당 이사를 별도로 둘 만큼 정성을 기울여 가꾼 덕에 산뜻하면서도 예스러운 멋을 지닌 지금의 캠퍼스가 완성됐다는 전언이다.

캠퍼스 한켠에 들어선 전통인성교육관 ‘현암정사’는 동양대가 지향하는 선비정신의 요체로, 설립자의 호를 따 이름 지었다. 지난 2004년 연면적 330㎡ 규모로 완공된 목구조 전통한옥 형식의 이 건물은 40여명의 학생들이 동시에 예절교육을 받을 수 있는 온돌교육실·누마루 등을 갖췄다. 구호만이 아니라 학생들이 선비정신과 전통예절 교육을 직접 체험할 수 있는 장을 마련한 셈이다. 재학생 뿐 아니라 지역민·외국인·청소년의 인성교육·전통문화 체험교육 장소로 적극 활용하고 있다.

▲ 최성해 총장(맨 왼쪽)이 참석한 가운데 현암정사에서 열린 전통 성년례 행사.

■ 총장에 회초리 전달… 전통예절교육 = 동양대는 매년 입학 때가 되면 전통 의상을 갖춰 입은 학생들이 스승에게 제자로 받아달라고 예를 행하는 진풍경이 벌어진다. 이 ‘집지(執贄)’ 행사는 학생 대표가 총장에게 육포와 회초리를 올리는 의식이다. 제자로 받아달라는 부탁과 함께 학업에 정진하지 않을 경우 가차 없이 매질해달라는 뜻이 담겼다. 총장은 학생들에게 열심히 배움에 임하라는 의미로 지필묵을 내린다. 성균관대가 전통 의식으로 널리 알려져 있지만 선비정신을 계승하자는 동양대의 집지 행사도 잔잔한 화제가 되고 있다.

공무원사관학교도 소수서원 전통교육의 유산을 이어받았다. 매월 최고 성적을 거둔 학생을 가려내 ‘선비대상’을 수여하는가 하면 인성교육관 현암정사 운영을 통한 예절교육에 힘쓰고 있다. 소수서원에서 스승들이 일신재(日新齋)와 직방재(直房齋)에 기거하며 유생들을 지도했듯 공무원사관학교 역시 원장과 책임지도교수를 중심으로 학생들의 인성교육을 담당한다. 공무원시험 대비 전문강사를 초청해 특강을 지도하는 것과 별개로 지도교수를 배정, 인성과 자질을 두루 겸비한 인재로 키워내고 있는 것이다.

동양대 측은 “공무원사관학교는 공무원 양성에 힘쓰는 단순한 직업훈련기관이 아니다. 옛적 선비들이 소수서원에서 나라를 걱정하고 학문에 정진했듯 오늘날 학생들도 그들의 자세를 익히며 공직자의 가치를 배우는 곳”이라며 “공무원사관학교라 하면 상아탑의 태도를 잃은 직업인 양성소로 오해하곤 하는 세간의 편견과 달리, 지역과 대학이 보유한 큰 유산을 밑거름삼아 대학교육의 바람직한 청사진을 제시하는 모델”이라고 강조했다.

▲ 최성해 총장.
‘디지털 선비 아고라’, 전통과 현대의 만남
[인터뷰]최성해 동양대 총장

최성해 총장은 동양대가 구현하는 선비정신을 간단히 요약했다. 기존의 실사구시·온고지신 사상에 오늘날의 첨단과학기술을 접목한 것이다. 우리 고유 사상의 본질인 선비정신 전통을 계승하되 현대적 재해석을 통해 개방·글로벌화를 덧입히자는 얘기다. ‘디지털 선비 아고라’라는 이질적 요소들의 조화로움이 최 총장이 그리는 교육 이상이다.

- 전통을 이어받고자 하는 모습이 무척 인상적이다.
“새 역사를 창조할 수 있는 힘을 찾아내 다음 세대에 실질적 도움을 주는 게 목표다. 기본적으로 실사구시와 온고지신 사상이 바탕에 깔려있다. 실용과 학습, 전통을 바탕으로 현대적 과학기술을 접목하면 동양대의 비전이 나온다. 구체적으로 ‘디지털 선비 아고라’가 목표다. 디지털 기술과 참된 인성을 고루 갖춘 인재를 양성하는 개방성·세계성·사회성·문화성을 구현하는 평생교육의 장을 가리킨다. 이러한 교육 이상을 디딤돌 삼아 직능 중심 교육체제, 즉 공무원사관학교를 통해 수요자에게 감동을 주는 교육을 하겠다는 것이다.”

- 인성·전통예절교육을 강조하는 이유는.
“인성교육원 소속 현암정사라는 한옥 건물에서 인성·전통예절 관련 교육과 강의를 하고 있다. 자신의 분야에서 일가를 이룬 명장이나 사회 저명인사들을 초청해 강의하고 있는데 특히 예절을 강조한다. 학생들이 입실하면 가지런히 정리하지 않은 신발은 마당으로 던져버리도록 했다.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히고 배움을 구하려면 신발부터 잘 정돈해야 하지 않겠나. 작은 일이지만 꼬박꼬박 실천하게 한다. 학생들은 2시간여의 수업시간 동안 방바닥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 강의를 들어야 한다. 일종의 훈련인 셈이다. 인성·예절교육은 억지로 되는 게 아니라 학생들이 몸에 익히도록 힘쓰고 있다.”

- 집지 행사 등 전통의식이 특히 눈에 띈다.
“옛날의 좋은 방식을 따랐다. 잊혀져가는 전통을 살려내고 학생들도 행사 의미를 가슴에 새겨 각오를 다지게끔 하자는 의미다. 집지 행사 뿐 아니라 전통 성년례도 현암정사에서 열린다. 청색과 분홍색의 한복을 각각 차려입은 학과 교수와 학생들이 함께 차를 마시며 예를 치른다. 떠들썩한 성인식보다 절도 있으면서도 자유롭게 성인이 되는 중요성을 공유할 수 있도록 유도했다.”

- 독특한 교육모델로 호평을 받고 있다. 어떤 교육자로 기억되고 싶나.
“디지털 선비 아고라를 실현하는 것은 인생의 꿈이자 목표다. 교육자로서 갖고 있는 구체적인 교육 이상이라고도 할 수 있다. 물론 현실은 만만찮다. 수도권 집중현상과 서열화가 뚜렷한 고등교육 환경에서 그러한 이상을 실현하기 힘든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새로운 모습의 ‘에듀토피아’를 꿈꾸고 실천해나가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전통과 현대를 아우르는 색다른 교육모델 정착을 위해 삶을 마치는 날까지 멈추지 않고 노력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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