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경배 본지논설위원·경희사이버대 교수

19대 총선을 관통할 주요 키워드라면 무엇이 있을까. ‘정치개혁’이니 ‘공천혁명’이니 하는 것들은 아직까지 내용도 실체도 없는 허울뿐인 구호에 머물러 있는 듯하다. 그나마 이번 총선 정국에 새롭게 눈에 띄는 키워드라면 ‘청년’을 꼽을 수 있을 것 같다.

27세 청년을 비대위원으로 앉힌 새누리당은 다시 부산에서 같은 나이의 젊은 여성을 야당의 유력 대권 주자인 문재인 후보의 대항마로 내세우려 하고 있다. 민주통합당과 통합진보당은 청년 비례대표 자리를 마련해 놓고 한참 유행 중인 방송사의 오디션 프로그램을 본 뜬 선발 과정을 진행 중이다.

총선을 앞둔 정치권이 새삼 ‘청년’을 화두로 삼은 이유는 두 가지 맥락으로 풀이된다. 하나는 청년층이 많이 사용하는 SNS의 위력이다. 지난 지방선거와 몇 차례 재보선 선거를 통해 SNS의 선거 영향력을 절감한 정치권으로서는 당연히 청년층의 표심을 잡기 위한 노력에 나설 수밖에 없는 노릇이다.

또 하나는 반값 등록금과 청년 실업 등 청년층 관련 이슈가 지난해부터 사회적 관심사로 급부상한 까닭이다. 직접적인 이해 집단인 청년 세대가 최대 유권자층을 구성하고 있으며, 이들의 투표 참여 의지가 어느 때보다 높은 분위기임을 직감한 정치권이 청년들을 향한 표심의 구애 작전에 나선 것이다.

이유가 어찌 됐건 청년층의 정치 진출은 환영할 만한 현상이다. 참신하고 패기 넘치는 젊은 인재들이 낡은 정치판에 신선한 새 바람을 불러일으키리라는 기대를 품게 만든다. 또 청년의 손으로 청년의 문제들을 직접 대변할 수 있다는 점에서도 바람직한 일임에 틀림없다. 다만 이런 기대감들이 지금 각 정당에서 선보이고 있는 청년 정치의 방식을 통해 과연 온전히 실현될 수 있을까 하는 점에서는 여전히 의구심이 남는다.

청년층의 이해를 대표할 만한 별다른 삶의 궤적도 찾아볼 수 없는 젊은이 몇 사람을 간택해서 언론에 띄워주는 새누리당의 방식은 공천 과정에서 늘 있어왔던 깜짝쇼의 청년 버전 그 이상을 넘지 못한다. 청년 정책을 대변할 비례 대표로 뽑는다는 명분으로 청년들을 서바이벌 장에 세워 놓고 그들끼리 치열한 경쟁을 벌이게 만드는 두 야당의 방식도 진정성을 의심하게 한다. 여당과 야당 모두 어떻게 청년들을 위할까에 대한 고민보다는, 어떻게 하면 청년들을 위하는 모양새를 낼까에 대한 고민이 앞선 것이 아니었나 싶다.

그러다보니 이렇게 뽑힌 청년 대표가 의회에서 제대로 청년층을 대변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도 확신을 갖기 어렵다. 기성 정치인들이 짜놓은 선거 전략 틀에 맞춰 간택되고 발탁된 청년 정치인이 과연 진정한 청년층의 대표자가 될 수 있을지, 오히려 기성 정치인들의 아바타에 머무는 것이 아닐지 우려스럽다. 모름지기 정치인이란 조직화된 세력에 기반을 두어야만 온전히 제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는 것이 엄연한 현실이기 때문이다.

청년들이 인터넷을 통해 정치 세력화한 최초의 사례라면 1992년 미국에서 결성된 온라인 조직 ‘Lead or Leave(이끌어라, 못하겠으면 떠나라)’를 들 수 있다. 청년들의 면담 요구에 “이봐. 청년들은 투표하지 않아. 그런데 내가 너희들에게 굽실거리기를 기대하는 거야?”라고 오만하게 대꾸한 위치 파울러 조지아주 상원의원에게 분개한 롭 넬슨과 조지 코완이란 두 청년의 제안으로 결성된 온라인 청년 조직이다.

그들은 불과 1년 만에 100만 명이 넘는 회원을 확보하고, 4000만 명의 청년 유권자를 선거인 명부에 등록시키면서 미국 대선과 총선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파워 집단으로 성장했다. 이후 다시 위치 파울러 상원의원을 찾은 청년들의 피켓에는 이런 문구가 적혀 있었다고 한다. “이봐, 청년들은 투표해. 그러니 이제 우리에게 굽실거려 봐!”

‘Lead or Leave’의 사례는 청년이란 화두와 마주한 지금의 한국 정치에 많은 시사점을 던져 준다. 단지 청년 몇 사람의 정치 진출이 곧 청년 정치 시대의 개막은 결코 아니다. “이끌어라, 못하겠으면 떠나라” 하고 정치권을 향해 당당히 외칠 수 있는 힘과 자신감을 가진 청년다운 청년 정치의 본격적인 등장을 다가올 청춘의 계절 새 봄에 기대해도 좋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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