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과생각]문웅 호서대 문화기획학과 교수

 
“5년 후까지 자네들이 미술계에서 빛을 못 본다면 다시 자네들을 초청해 그 자리에서 작품들을 모두 찢어버릴 걸세.”

문웅 호서대 문화기획학과 교수가 ‘인영미술상’을 받은 학생들을 초대해 건네는 말이다. ‘인영(忍迎)’은 문 교수의 호로, 문 교수는 매년 자신의 호를 건 미술상을 개최하고 있다. 중앙대 미술학부 한국화·서양화·조소전공 학생들의 졸업작품을 대상으로 진행하며, 학부 교수들이 평가해 각 1점씩을 선별하면 문 교수가 총 3점을 후하게 매입한다. 9년 전 중앙대 학생들을 가르칠 때 “실력이 괜찮은데 형편이 어려운 친구들이 많다”는 아들의 말을 듣고 시작해 지난해 말까지 모두 8회의 수상자를 냈다.

매년 한 번씩 열리는 상은 동기들 중 최고를 의미한다. 상을 받아 마음이 들뜬 학생들은 상 제정자인 문 교수의 초대를 받는다. 그리고 “실력이 늘지 않으면 그림을 찢어버리겠다”는 비수와도 같은 말을 듣게 된다.

“4년 동안 미술을 공부한 학생들은 최소한 중고등학교 때부터 피나는 노력을 했을 겁니다. 자신의 작품이 동기 중 1등이라는 것은 대단한 프라이드겠죠. 그리고 그 작품으로 돈을 받는다는 자긍심 역시 대단할 겁니다. 사회에 첫 진출하는 작가에게는 큰 축복이죠. 그렇지만 이후에도 작품을 팔 수 있겠느냐는 또 다른 문제에요. 상 받았다고 자만해선 안 됩니다. 더 열심히 하라는 충고인 셈이죠.”

들뜬 미술학도들에게 냉정하게 이야기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돈이 되지 않는 것은 죽은 예술이라는 것. 그래서 문 교수는 수업 중에도 항상 “미술가는 생활인이 돼야 한다”고 학생들에게 가르친다. ‘가족의 등골 빼 먹지 말라’는 그의 조언에 학생들은 큰 충격을 받곤 한다는 게 문 교수의 설명이다.

“2만5000명 되는 미술협회 회원들 중 작품으로 먹고 사는 작가가 몇 프로나 될까요. 한 250명 되려나요. 미술가라면서 머리나 수염 기르고 ‘예술가입네’ 하는 무리들이 좀 많습니까. 자기 마누라들이 부업으로 버는 돈으로 살아가는 예술가가 너무 많아요.”

예술을 가르치는 교수답지 않은 이런 지적은 그의 독특한 이력과도 연관이 있다. 경영학을 전공한 문 교수는 대학원을 졸업하고 건설회사인 ‘인영건설’을 차렸고, 현재 ‘인영물류’를 비롯해 ‘인영기업’ 등 모두 3개의 기업을 가지고 있다. 예술경영을 가르치는 교수이기도 하지만 기업인이기에 ‘돈’을 말할 수 있다는 뜻이다.

교수로서가 아닌 ‘콜렉터’로서의 문 교수는 일반인들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이쪽 업계에서 상당히 유명한 인물로 꼽힌다. 문 교수의 초대를 받아 찾은 그의 자택 ‘인영헌’만 해도 굵직한 대가들의 작품이 수두룩했다. 미술품은 대학시절부터 모아온 것들로, 현재 문 교수의 소장고에는 조각이 100여점, 서양화가 600점 정도에 달한다.

“미술품을 모으는 첫 번째 이유는 감상하기 위해서죠. 그리고 미술품을 보고 즐기느라 행복했는데 ‘자고 일어나니 얼마짜리가 됐다’ 그게 두 번째 기쁨이죠. 그리고 그 과정에서 자신의 선미안을 확인하는 프라이드는 세 번째 기쁨이라 할 수 있습니다. 미술품 매입은 어찌 보면 주식 매입과도 같아요. 중소기업에 대해 투자할 때 그 기업의 미래를 눈여겨보지 않습니까. 그래서 작품에 대한 환금성이 무엇보다 중요한 겁니다.”

의제 허백련의 열 폭짜리 병풍을 사면서부터 시작한 콜렉터 생활은 이제 40년을 넘겼다. 콜렉팅 과정에서 위작과 졸작을 매입하다보니 자연스레 미학과 미술품 감정법도 배우게 됐다. 그리고 다시 대학원에 들어가 예술경영학도 전공했다.

“좋은 작품을 사려면 많이 알아야 합니다. 그러려면 예술경영을 배워야 할 것 같아 공부를 다시 했어요. 경영학은 제 전공이니 여기에 예술을 접목시키면 재밌겠다 생각해 마흔 다섯의 나이에 성균관대 박사과정을 다시 시작했지요.”

사업가로서, 콜렉터로서, 교수로서도 성공한 그에게는 꿈이 있다. 미술관이나 박물관을 지어 자신이 소유하고 있는 소장품들을 일반 사람들에게 공개하는 일이다. 그는 이러한 일을 ‘꽃 피우기’에 비유했다.

“연꽃은 시궁창에서 피어납니다. 비유가 좀 극단적이긴 한데, 제가 열심히 돈을 번 이유는 이쪽 분야에서 꼭 해야 할 일이 있기 때문이라 생각합니다. 미술관·박물관을 위해 지금까지는 준비를 하는 과정이었죠. 모처에다가 땅도 사놨습니다. 준비가 거의 된 것 같아요.”

꽃을 피우겠다는 문 교수의 꿈은 이제 얼마 멀지 않았다. 인터뷰 사진을 찍기 위해 작품을 보는 포즈를 취해 달라 하자 문 교수는 흐뭇하게 웃었다. 마치 꽃을 피운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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