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경진 본지 논설위원·대구가톨릭대 언론광고학부교수

요즘 언론이 심한 몸살을 앓고 있다. 그 어떤 매체보다도 공정성과 중립성을 잘 지켜야 할 공영방송들과 뉴스통신사가 언론에 대한 정치적 입김과 그로 인한 제작 독립성의 훼손을 강력하게 경고하면서 거리로 뛰쳐나왔기 때문이다. 이른바 언론파행의 위급한 상황이라고 할 수 있고 이에 따라 언론의 기능이 일부 마비되는 현상마저 나타나고 있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언론의 역할과 그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다. 언론은 우리 사회에 가장 중요한 공론화 과정의 장을 제공하고 여기서 논의되고 형성되는 담론과정을 통해 사회적 여론이 형성되는데 결정적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그러한 언론이 제 기능을 다하지 못 하고 특정 정치세력에 의해 장악될 때 사회는 물론 국가 전체적으로도 불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언론의 공공성은 언론과 정치의 건강한 상호견제를 거치면서 용해되어 나오는 사회공동체적인 이익이다. 공공성은 그 어떤 경우라도 정부나 의회, 사법 그리고 언론 등 그 어떤 특정 주체에 의해서만 창출되는 것도 아니요 또 영향을 받아서도 안 된다. 언론은 -설령 그것이 민영 상업적 재정구조를 갖고 있다고 하더라도-일종의 ‘공공적 자산(öffentliches Gut)’이기 때문에 반드시 공공의 이해와 공공의 관심 그리고 공공의 이익에 부합돼야 한다.

지난 한 세기 동안 한국의 언론과 미디어 정책은 상당히 굴곡진 과정을 겪어왔다. 식민지 시절과 전쟁 그리고 미군정을 포함한 혼란했던 사회를 거쳐 오면서 왜곡과 오류의 역사를 반복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지난 최근 몇 십 년 동안은 군부독재와 같은 전제정치에 유린당했던 불행한 과거를 경험했었다. 언론은 그 과정에서 권력의 수단으로 이용되었고 언론 정책은 권력의 체계적 안착을 위한 도구로 악용되기도 했다.

언론의 파행을 경고하고 절대 권력을 배척하며 민주화를 열망하는 한국사회의 역동성은 시민으로부터 나왔다. 시민사회의 결집된 목소리와 비판적 대안은 무기력한 언론의 힘을 앞섰고 나아가 민주사회의 회생을 위한 가장 강력한 요소로 등장했다. 소위 언론기본법을 비롯해 80년대 신군부에 의해 극단적으로 개악되었던 일련의 언론 정책에 비하면 문민정권이 들어선 90년대와 2000년대의 언론정책은 그나마 새로운 시대의 가능성을 제시하는 듯 했다.

하지만 절반의 성공으로 만족해야했던 김대중 정권과 노무현 정권의 언론 정책이 그 한계를 보이면서 한국사회는 미래를 위한 새로운 시도를 꿈꾸기도 전에 ‘자본의 권력’이라는 어두운 그림자에 휩싸이고 말았다. 설상가상으로 지난 몇 년간 두드러진 언론에 대한 정권의 집요한 개입과 간섭은 우리 사회의 소통을 가로막는 우를 범하기도 했다.

언론의 정치화, 자본화 과정에서 언론은 물론 시민사회의 입지도 상당히 좁아졌다. 특히 이명박 정부가 집권하면서부터 한국사회의 공론장은 사라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소통이 단절되는 희귀한 현상들이 나타나고 있다. 현재 한국사회의 언론은 아이러니하게도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으로 중병을 앓고 있다. KBS, MBC그리고 YTN에 내려진 낙하산 사장들이 그러하고 미디어 생태계의 현실은 외면한 채 정권의 정치적 야욕을 위해 무리하게 정책을 밀어붙이다가 거센 저항에 밀려 퇴진한 방송통신위원장 등 모두 대통령의 정치참모들이었기 때문이다.

언론을 장악하고 국민과의 소통을 거부하는 현 정권에서 민주적인 언론을 기대하는 것은 무리인 것 같다. 언론이 다시 건강하게 회생하기 위해서 필요한 조건은 무엇보다 언론의 정치적 독립성이다. 향후 어떤 정권이 들어서더라도 언론이 정치권의 구속과 간섭을 받지 않으려면 정치적 독립을 위한 제도적 개선은 필수적이다. 뉴스 제작의 일선 기자 피디 아나운서들이 그 중요한 일손을 놓고 시위현장으로 달려가는 불행한 일은 더 이상 일어나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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