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1년 6월3일은 한국외대 구성원들에게는 여러모로 '아픈' 날이었다. 그해 4월26일 명지대생 강경대군이 진압경찰의 쇠파이프에 맞아 숨진후 촉발됐던 시위정국이 한순간에 사그러든 날이기도 했다. 아직 '정총리 밀가루 폭행사건'으로 불리는 이 일은 한국외대에 강의나온 당시 정원식 국무총리에게 외대생들이 대학생들의 잇단 죽음에 항의 해 밀가루를 던지며 촉발됐다.

이 사건으로 급기야 당일 2백여명이 넘는 학생들이 안기부 수사관들에게 직접 연행되 고 거의 대부분의 총학생회, 단과대 학생회 간부들이 정처없는 구속, 수배생활을 겪어야 했다. 이 사건은 아직도 노태우 정권시절 한국외대 학생운동사의 최대사건으로 기록되고 있다.

정원택씨는 당시 총학생회장으로 이 사건의 한가운데 있었던 사람이다. 그런 그가 최 근 한국외대 대학평의원회의 간사로 다시 대학에 돌아왔다. 총장 직속기구로 학내·외 전구성원이 대표로 참여하고 있는 대학평의원회는 지난해 한국외대가 비리재단 퇴진투 쟁의 부산물로 얻어낸 명실상부한 민주적 의사결정기구다.

정씨는 당시 6·3 사건으로 1년여 넘는 옥고를 치루고 일본에서 유학생활을 하다 지난해 외대분규가 터지자 급거 귀국, 지난 5월부터 1년 계약직으로 평의원회의 간사로 임 명돼 한국외대의 교직원이 됐다.

최근 386세대들의 정치권 진출 모색이 활발해 지고 있는 가운데 이처럼 과거 전대협출 신 총학생회장들이 대학 직원으로 일하며 대학개혁의 견인차 역할을 하는 사례가 점점 늘어가고 있다.

정씨 이외에 총장직속기구인 21세기 외대발전위원회 산하 외대발전캠페인본부에서 직 원으로 일하고 있는 오춘열씨도 이 학교 총학생회장(94년) 출신.

오씨는 지난해 외대분규당시 교직원 비상대책위원으로 활동해 '운동권' 특유의 활동력 을 인정받아 학교측의 신임을 샀다. 현재 오씨는 한국외대의 발전상을 대외에 알리는역할을 맡아 동분서주하고 있다.

현 상지대 노조 위원장인 진광장씨도 마찬가지 사례. 진씨는 91년도 총학생회장출신으로 당시 강원지역대학생대표자협의회(강대협) 의장까지 역임했었다. 진씨는 지난 96년 김문기 전 상지대 이사장 퇴진 운동에 앞장서다 대학 직원으로 일하게 됐다.

지난 95년 부총학생회장을 지내고 진씨의 영문과 88학번 동기인 이주엽씨도 기획처에 근무하며 상지대 개혁 프로그램을 도맡아 진행하고 있다.

이씨는 "학생때 단순히 꿈과 이상으로 목말라했던 민주와 개혁이라는 화두를 이제 직 접 실천해야 하는 입장에 있다보니 책임감이 무겁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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