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인하 청강문화산업대학 교수(만화창작전공)

태풍의 북상을 막아낸 폭염의 힘이 한반도를 거대한 찜통으로 만들었다. 더위에 헉헉 대다 늦은 밤이 되어 겨우겨우 정신을 차리면 텔레비전에서 올림픽 경기를 중계한다. 여러 경기를 보며 역시 대단해, 놀라운 실력에 끄덕이고 깜짝 스타 탄생에 환호한다. 다만 명백한 오심과 미숙한 경기 운영은 스포츠의 감동을 갉아먹는다. 올림픽이 지나고 나면 많은 이들이 올림픽에 대한 감상을 남기겠지만, 아마 런던 올림픽은 오래도록 뛰어난 개막식을 보여준 올림픽으로 회자될 것 같다.

<트레인스포팅>의 감독인 대니 보일이 보여준 런던 올림픽의 개막식은 셰익스피어의 고색창연함과 ‘미스터 빈(로앳 왓킨슨)’의 개그와 007 제임스 본드(다니엘 크레이그)의 박진감과 <피터팬>에서 <해리포터>로 이어진 영국산 아동문학의 환상적 재미를 자랑했다. 거기에 20세기의 가장 위대한 아티스트인 비틀즈의 폴 매카트니가 무대에 올라 관객들과 함께 ‘헤이 쥬드(Hey Jude)’를 불렀다. 많은 이들이 그날 새벽, SNS를 통해 개막식의 환상적 경험을 고백했고, 영국문화의 힘을 칭송했다.

런던 올림픽 개막식을 보며, 해가 지지 않는 나라라 불리며 무력으로 세계를 장악했던 시절은 다시 오지 않겠지만 문화강국 영국의 힘은 앞으로도 오래 지속될 것이라는 확신을 갖게 되었다. 그렇다. 문화는 오래 지속되며, 사람의 마음을 움직인다.

우리나라의 주력 수출품은 누구나 다 아는 대로 삼성전자의 전자제품과 현대기아차의 자동차다. 이 두 회사는 한국의 대표 글로벌 기업답게 세계를 대상으로 엄청난 제품을 팔아치고 있다. 하지만 삼성전자와 애플을, 현대기아차와 BMW를 비교하면 뭔가가 부족하다. 기술과 기능은 넘치는데 결정적 매력이 없다. 혹자는 결정적 매력을 ‘브랜드 가치’라 이야기하겠지만, 난 문화의 힘, 감성의 힘이라 부르련다. 애플의 제품은 모든 걸 절제하는 극단적 미니멀리즘을 보여준다. 복잡한 기능과 활용성을 빼고, 절제의 미학을 통해 감성에 호소한다. 항공기 엔진에서 모터사이클을 거쳐 자동차를 만드는 BMW는 달리는 것에 집중한다. 그에 어울리게 드라이빙 스쿨을 만들어 잘 달리고, 잘 운전하는 문화를 교육한다. 그래서 애플과 BMW에는 단지 제품을 만들어 파는 행위를 넘어 제품 안에 자신의 철학과 문화와 비전을 담는다.

서구의 유사한 제품을 모방한 싸구려 제품을 팔던 일본은 경제가 성장하자, 곧바로 자신의 문화를 외국에 소개했다. 일본의 독특한 문화가 서구에 소개되면서, 일본 제품의 가치도 덩달아 올라갔다. 스시로 대표되는 일본의 음식문화, 다도, 서예, 우키오에, 가부키와 같은 전통문화와 함께 80년대 후반 일본의 서브컬쳐인 만화, 애니메이션, 게임 등이 세계로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90년대 이후 일본의 서브컬쳐는 젊은이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여름 휴가차 찾은 제주에는 온갖 이름의 박물관이 가득하다. 테디베어, 나비, 미니어처, 자동차, 영화, 녹차 같은 꽤 낯익은 박물관은 물론 그리스신화나 다빈치 과학박물관까지 있다. 이런 이벤트식 박물관 사이에 제주의 오름이 좋아 루 게릭 병으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제주에서 사진을 작업한 김영갑 선생의 작품을 전시한 김영갑 갤러리 두모악은 그 존재로 감동이다.

경이롭던 런던 올림픽 개막식, 삼성과 애플, 현대기아차와 BMW의 차이. 싸구려 제품을 만드는 나라에서 매력적인 전통문화를 보유한 나라로, 더 나아가 새로운 서브컬쳐의 발신지가 된 일본. 그리고 거대하고 잡다한 제주의 여러 박물관들보다 더 진실한 김영갑 갤러리 두모악. 이 모든 사례가 이야기하는 건 결국 하나다. 문화란 5개년계획 따위를 동원에 밀어붙이기식으로 한순간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오래도록 켜켜이 쌓여 그 사람의 마음이 된다. 미래 그 나라의 경쟁력은 바로 문화에서 나온다. 우리가 문화교육에 다시 주목해야 될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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