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표 본지 논설위원/한양여자대학 산학협력처장

범 정부차원 전폭적인 관심과 지지 속에 고졸시대를 정착시키기 위한 무수한 정책 과제들이 쏟아지고 있다. ‘선취업 후진학 정책’은 대학 재정지원사업 핵심 주제가 될 정도로 최근 정부가 심혈을 기울여 추진하는 역점 사업 중 하나다.

언론들도 앞다퉈 고졸채용을 과감하게 도입하는 선량한 기업들을 연일 홍보하고 있다. 상위 10위권 대학을 제외한 일반 대졸자가 특성화고를 나온 고졸자보다 경제적 수익이 떨어진다는 국책연구소 조사 결과도 보도되고 있다. 그동안 철저하게 외면되고 홀대받아 왔던 고교 직업교육이 황금시대를 맞고 있는 가운데 마이스터고나 특성화고 졸업자들의 몸값도 높아지고 있다.

학력 및 학벌사회를 치닫고 있는 우리 사회에서 고졸 취업 드라이브 정책을 가동하고 있는 정부의 결단이 불가피해 보인다. 그러나 선취업 후진학 정책이 궁극적으로 고졸 취업 분위기를 정착시키고 열린 고용 정책을 유도해 나갈 수 있을 것인지, 그리고 바람직하고 현실성 있는 정책인지에 대해 여전히 의구심이 든다.

고교단계 직업교육을 강조하는 정부의 정책적 급선회는 몇십년간 지향해 왔던 직업교육정책 방향을 과거로 선회해 정책과 현장에 혼란을 주고 있다. 정부는 지난 1995년 5·31 교육개혁방안 이후 직업교육 축을 고등교육단계로 전환했다. 이에 따라 중등단계에서는 직업기초능력을 강화하고 직업교육을 희망하는 모든 고졸자에게 전문대학 수준의 직업교육을 보장하는 정책을 추진 중이다. 또, 많은 인력수급 전망 자료에서도 지식기반경제와 노동시장의 변화에 대응해 고학력자에 대한 수요가 필요할 것으로 전망하고 이에 대응해 공급체제를 개편해 왔다.

선취업 후진학 정책의 성공은 평생에 걸친 능력개발이 보장되고 언제 어디서나 개인의 능력이나 성과가 객관적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능력중심사회의 구축을 전제로 한다. 이를 위해서는 ‘고교-대학-노동시장’을 통해 지속적으로 개인의 평생 직업능력 개발을 지원하는 직업교육체제가 구축돼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 정책에서는 법령상 계속직업교육기관인 전문대학은 정책 추진 주변부로 밀려나고 있고, 오히려 학술연구를 지향하는 일반대학이 사업추진 중심부에 서 있는 형편이다. 더욱이 고학력과 학벌을 지향하는 국민적 정서를 고려해 고졸 재직자 특별전형에 사회적 평판이 높은 주요 사립대학의 참여를 유도하는 정책을 추진, 이 정책이 일반대학의 용이한 접근 수단으로 활용할 수 있는 빌미를 제공한다.

정책의 성공은 궁극적으로 열린 고용문화 정착에 달려있다. 최근 공공기관 및 금융업계가 고졸자에게 채용기회의 문을 확대하고 있는 점은 환영할 만하다. 그러나 채용 이후 인사관리에 있어서 학력 차별을 어떻게 해소할 것인가가 더욱 큰 과제다. 일류 대기업들이 여전히 입직 이후 취득한 학력이나 학위를 경력이나 임금으로 전혀 인정하지 않는 ‘학력 카스트제도’가 존재하는 이상, 열린 고용문화 정착을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이제 정부는 고졸 직업교육에 초점을 두는 선취업 후진학 정책의 수준을 뛰어 넘어 교육훈련제도 전반, 특히 고등단계의 직업교육을 어떻게 강화하고 참여를 유도할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 이 시점에서 고학력에 대한 사회적 수요를 실무중심의 직업교육으로 유도하기 위해 전문대학과 같은 고등직업교육기관의 위상과 가치를 일반대학과 동등하게 부여하고 직업교육에 대한 과감한 투자를 아끼지 않는 선진 외국의 사례를 눈 여겨 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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