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경배 본지 논설위원/경희사이버대 NGO학과 교수

디지털 혁명으로 산업사회 시절의 견고한 유물들이 하나씩 무너지고 있다. 종이 신문은 급속한 쇠락 단계를 지난 지 벌써 오래다. 지금은 아예 존폐 기로에 서 있는 참담한 처지로 전락했다. 정당도 정치 영역에서 더 이상 독점적 지위를 고집하기 어려운 형편이다.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고 있는 온라인 시민 참여 열기는 이제 정당의 존립 근거 자체를 뒤흔들고 있다. 그렇다면 종이 신문과 정당에 이어 거대한 지각 변동을 맞이하게 될 산업사회의 세 번째 유물은 무엇일까. 아마도 그것은 대학이 아닐까 싶다.

대학 강의가 값비싼 등록금을 낸 소속 학생들만의 전유물이란 생각은 이미 10년 전부터 깨지기 시작했다. MIT가 2002년부터 개설한 ‘OCW(Open Course Ware)’가 첫 신호탄이었다. 인터넷을 통해 대학의 강의 영상과 자료들을 공개해 누구나 자유롭게 수강할 수 있도록 허용한 이 움직임은 이제 전 세계 수백 개의 대학으로 확산되었다. 글로벌 IT 기업들의 동참도 이어졌다. 구글은 유튜브-Edu로, 애플은 아이튠즈-U로 배움을 열망하는 수많은 네티즌들에게 공개 강좌 플랫폼을 마련해 주었다.

그런데 올해 들어 대학 공개 강좌에 새로운 움직임들이 나타나고 있다. 코세라(Coursera), 유다시티(Udacity), 에드엑스(edx) 등 기존 OCW와 차별화된 교육 모델들이 잇달아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코세라는 스탠퍼드대 컴퓨터과학과 대프니 콜러와 앤드루 응 두 교수가 실리콘밸리 벤처 기업들로부터 투자를 받아 설립한 온라인 교육 사이트다. 현재 제휴 관계를 맺은 미국과 유럽의 16개 대학들이 제공하는 100 여 개의 강좌를 운영하고 있다. 스탠퍼드대의 또 다른 교수 세바스찬 스런이 만든 유다시티도 주목할 만하다. 그는 최고 수준의 대학 강의를 세계 모든 사람이 자유롭게 접할 수 있어야 한다는 목적으로 이 사이트를 만든 후, 모두가 선망하는 명문대 교수직까지 과감히 박차고 나왔다. 에드엑스는 하버드와 MIT가 공동 출자해 추진하고 있는 무료 온라인 강의 프로젝트이다. 여기에 UC 버클리도 동참하면서 올 가을부터 본격적인 운영이 이뤄질 예정이라고 한다.

최근의 이런 실험들을 일컬어 ‘MOOC(Massive Open Online Course: 대형 공개 온라인 과정)’라 부른다. MOOC는 OCW에 비해 한층 업그레이드된 모습을 보인다.

첫째, 일방향 강의 동영상만을 제공했던 OCW와 달리 MOOC는 실질적인 온라인 교육을 수행한다. 수강생들은 LMS를 통해 강의 수강 외에도 학습 모임을 형성해 질문과 토론, 자료 공유의 과정을 경험할 수 있다. 과제 제출과 시험을 통해 성적 평가도 받으며, 정식 학위는 아니지만 이수증까지 발급된다.

둘째, 오프라인 강의실에서 진행했던 수업을 동영상으로 찍어 재활용하는 수준이었던 OCW와 달리 MOOC는 온라인 교육에 최적화된 강의 콘텐츠를 제작해 제공한다. 범용성을 갖춘 웹 저작툴로 만든 교안이나 강의 노트가 교수의 강의 영상과 함께 제공되는 등 국내 사이버 대에서 운영하고 있는 것과 비슷한 방식의 온라인 전용 교육 콘텐츠를 무료로 서비스한다.

셋째, OCW가 강의실을 개방해 대학 울타리 안으로 외부인들의 입장을 허용한 것이었다면, MOOC는 아예 대학 울타리 밖에 강의실을 만든다. 대학 교육의 개방 차원을 넘어 대안적 대학 교육의 보편화 가능성을 담고 있다는 점에서 매우 의미심장한 변화가 아닐 수 없다.

물론 이런 움직임들이 대학이라는 산업사회의 유물에 어떤 충격을 안겨줄지 아직은 섣불리 단언하기 이르다. 하지만 몇 가지 질문을 통해 그 미래를 가늠해 볼 수는 있을 것이다.

만약 당신이 현명한 CEO라면 허울 좋은 대학 졸업장만 손에 쥔 입사 지원자와 세계 최고 수준의 강의들을 알차게 인터넷으로 이수한 입사 지원자 중 누구를 채용하겠나. 후자에게 동등한 기회가 주어지는 환경에서 만약 당신이 학생이라면 값비싼 대학 교육과 무료 온라인 교육 중 어떤 길을 선택하겠나. 그리고 만약 당신이 교수라면 많아야 몇 백 명의 제자를 가르칠 기회와 수십만 명의 제자를 가르칠 기회 중 어디에서 더 보람을 느끼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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