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경훈 본지 논설위원, 아주대 영문학과 교수

대통령선거 열기가 점점 달아오르고 있다. 유력 후보들이 저마다 국민의 행복, 복지, 격차해소를 이루겠다고 외치고 있다. 이들의 외침이 공허한 수사가 되지 않으려면 먼저 국민의 고통을 덜어주는 구체적인 정책을 보여주어야 한다. 무엇보다도 국민 대다수의 삶을 팍팍하게 만드는 대입시지옥과 사교육비 부담을 없애줘야 한다. 후보들은 이들 문제를 일으키는 가장 큰 원인인 학벌차별 의식과 관행을 해체하는데 돈 한 푼 들지 않으면서 매우 효과적인 학벌차별금지법 제정을 약속해야한다.

박근혜, 문재인, 안철수 세 후보 모두 학부모의 부담을 덜기 위한 대학입시전형 간소화를 약속했다. 하지만 더 중요한 학벌차별문제와 관련해서는, 박근혜 후보는 명확한 공약이 없고, 능력중심사회 구현을 위해 직무능력평가제를 도입해야 한다고 언급할 뿐이다. 문재인 후보는 학교서열을 완화하기 위해 특목고 폐지와 국공립대공동학위제를 제안하지만, 특목고, 국공립대뿐만 아니라 사립대, 기업, 공공기관에도 널리 퍼져 있는 학벌차별의식을 직접 겨냥하지 못하고 있다. 안철수 후보는 대학서열화를 완화하기 위해 지역거점대학, 혁신대학 육성을 약속하고 취업, 입시에서 지원자의 학력, 성별, 출신지역 정보에 대한 요구를 금지하는 차별금지법 제정을 공약했다.

유력한 후보 중의 하나인 안철수 후보가 차별금지법 제정을 약속한 것은 매우 고무적이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이미 나이, 장애, 성별, 출신지역 등에 따른 차별을 금지하는 차별금지법을 갖고 있다. 하지만 차별금지법의 차별금지조항에 ‘학력’이 빠져있다. 왜 그런가? 2007년 법무부는 차별금지법제정안을 입법예고하며 학력, 성별, 나이, 장애 등 총 20개의 차별금지조항을 설정했으나, 경총을 비롯한 재계와 보수언론들이 ‘자유로운 기업 활동을 막는다’는 이유로 반대해 학력 조항이 삭제됐다.

2011년 민주당 홍영표 의원과 새누리당 김기현 의원이 근로자 모집, 채용, 임금 지급에 있어 합리적 이유 없는 차별의 금지, 모집, 채용 상 합리적 기준 이상의 학력 요구 금지, 국가자격 검정시험에서 학력 관계된 응시자격제한 금지, 국가인권위원회를 통한 학력차별당한 사람구제 등을 규정하는 학력차별금지법을 각각 발의했으나 입법에 실패했다.

학력차별금지법 제정을 가로막아 99% 국민을 루저로 만드는 반인권적인 사람들은 누구인가. 재계는 아직도 자유로운 기업 활동을 위해 학력차별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가. 재계의 총수격인 삼성은 이미 신입사원채용에서 학벌신화를 벗어던졌다. 직무적성검사(SSAT)와 면접을 중심으로 학벌이 아닌 기본소양, 적성, 창의성 위주로 신입사원을 채용하고 있다. 정연주 전 KBS 사장에 따르면, 5년 동안 신입사원채용에 학력 ‘블라인드제’와 ‘지방대 할당제’를 실시한 결과, 채용된 신입사원 중 지방대 출신이 36%인 반면, ‘스카이’대 출신은 29%에 그쳤고, 서울대는 1위를 못하고 2위로 밀려났다.

이렇게 현실은 학벌과 실력이 같지 않음을 보여준다. 우리의 학벌차별의식은 환상이다. 왜 우리는 학벌차별의식이란 환상의 노예가 되어 99%국민을 루저로 만들며 고통에 허덕거리는가. 학력차별금지법을 만든다면 출신 대학과 고등학교에 따른 부당한 판단의 관행이 상당히 사라질 것이며, 사교육 완화와 공교육 정상화, 지방대학 육성과 균형발전에 크게 기여할 것이다. 국민을 행복하게 하고 복지를 중시한다는 대선 후보들이여, 돈 한 푼 쓰지 않아도 수조원의 행복효과가 있는 학력차별금지법제정을 약속하라.

<한국대학신문>

저작권자 © 한국대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