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선 본지 논설위원, 충남대 언론정보학과
이슬비에 옷이 젖는다. 는개보다 굵지만 가랑비에 비하면 가늘기 짝이 없는 비다. 이슬처럼 내리는 가느다란 비가 겹겹이 껴입은 옷들의 두꺼움을 쉬이 관통한다. 젖고 나서야 경계할 요량을 헤아려보지만 대개 요령부득, 때는 늦기 마련이다.
언론학자들은 일상의 이슬비에 젖는 이치를 프레임, 우리말로 번역하자면 ‘틀 짓기’라는 개념에 빗대어 보려고 한다. 어떤 언론매체에 이슬비 젖듯 장시간 노출될 경우 독자나 시청자는 그 언론사의 관점으로 세상을 이해하게 된다고 본다. 뉴스란 무색무취한 결정물이 아니라 언론사들 나름의 특정 프레임이 반영된 결과물이라고 여겨지기 때문이다.
언론사가 조직적으로 찧고 까부는 제작관행과 이념들이 개별 언론인의 신념과 버무려지는 가운데 뉴스가 만들어진다. 무엇에 대해 생각하고 어떤 속성을 주목해야 할 것인지를 언론사들이 미리 틀짓기해서 독자와 시청자에게 전달한다. 무방비 상태의 언론 수용자들은 언론이 규정한 프레임에 갇힐 뿐이다. 그러다가 대통령선거와 같은 결정적인 시기에, 언론의 이슬비 보도는 강력한 ‘한 방’을 점화하는 탁월한 역량을 발휘하기도 한다.
대통령선거를 맞은 언론의 선거보도 양상이 취객처럼 비틀거린다. 척결돼야 할 취재보도 관행이 오히려 기승을 부리고 있다. 우선 넘쳐나는 익명 취재원 문제다. 언론은 취재원을 분명히 밝혀야 한다. 취재원이 목숨을 위협받거나 직무상 결정적일 수준의 불이익을 당하는 경우에 취재원을 익명 처리할 수 있지만 언론은 본디 취재원을 공개하는 것이 맞다. 한국 언론이 채택한 신문윤리실천요강은 익명이나 가명으로 취재원을 표현해선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공익을 위해 부득이 필요한 경우 외에는 추상적이거나 일반적인 취재원을 빙자해서도 안 된다. 영국의 BBC도 편집가이드라인에서 모든 제작물은 반드시 출처를 충분히 밝히고 철저하게 검증한 뒤 명확·정밀한 언어로 표현할 것을 주문하고 있다. 선거 캠페인이 펼쳐질 때는 더욱 민감하게 불편부당성을 다뤄야 한다고 BBC는 말한다. 우리나라 KBS도 신뢰를 구축하기 위해서라며 취재원의 실명을 공개할 것을 원칙으로 삼고 있다. 단순한 소문과 구별하고 책임 있는 보도를 하기 위해서다. 더불어 오보나 정보조작의 위험성을 막기 위한 목적도 있다.
11월 중순의 일간신문 보도를 보자. 문재인-안철수 두 후보가 단일화 관련 여론조사 방식을 놓고 대립할 때였다. 주요 일간지 1면 헤드라인 기사엔 여러 명의 취재원이 등장한다. 상당히 여러 차례 취재원들은 ‘문 후보 측 관계자’ ‘안 후보 측 관계자’ ‘또 다른 관계자’ ‘또 다른 핵심 관계자’ ‘복수의 두 후보 측 관계자’ 등으로 처리되고 있다. 심지어 1면 머리기사의 본문에 등장해 비중 있게 발언한 취재원의 이름은 ‘여의도 정치권’이었다.
필자가 11월 한 주간의 5개 주요 일간지 기사를 분석해본 결과, 실명 취재원 기사는 56%였다. 29%의 기사엔 한두 명의 익명 취재원이 꼭 등장했다. 익명 취재원의 비중이 30%가 넘는 기사가 12%나 되었다. 대개의 경우 언론의 취재원 익명 처리는 정보 제공자의 생명을 보호하는 것과 거리가 멀다.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익명의 장막 뒤에 숨어 정보거래를 하는 취재원을 ‘관행적’으로 익명 처리하는 경향이 짙다.
선거보도의 더 큰 문제는 취재원의 발언을 직접 인용해 기사 제목으로 처리하는 경우다. 익명 취재원과 취재원의 실명이 뒤섞인다. 취재원이 작심하고 발언한 내용 중에서 언론은 독자에게 필요한 말이 아니라 그들의 입맛에 맞는 말을 골라 제목으로 뽑는다. 미운 사람의 실수한 말과 맘에 든 사람들의 잘 포장한 말이 기사의 얼굴 제목이 된다.
따옴표 제목이 많이 사용되는 것도 문제지만 인용한 말의 따옴표를 제거하고 취재원의 발언을 ‘사실’처럼 다루는 것은 더욱 위험하다. ‘핵심 관계자’는 취재원의 이름이 아니다. 더욱이 ‘핵심 관계자’의 말은 의도한 ‘발언’일 뿐 ‘진실한 사실’ 그 자체가 아니다. 언론의 취재보도 과정에서 결과적으로 허위가 발견되더라도 언론의 법적 책임을 면책하는 법원의 법리는 언론의 보도가 유권자에게 필요한 여론정보를 제공한다는 믿음에 기초하고 있다.
그러나 유권자에게 필요하다기보다 언론의 프레임에 부응한 거친 말들을 선택적으로 확대하여 복사·배포하는 언론의 선거보도는 오염 정보에 불과하다. 언론의 틀지어진 이슬비 보도에 독자들의 생각이 속수무책 젖어 갇히듯, 은연 중 익명처리 관행이라는 것에 언론 스스로 젖어든 결과일 터다. 묵직하게 젖은 옷을 벗고 되돌아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