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운대 교양학부 정규봉 교학계장은 월·수·토요일이면 유독 일기예보에 신경을 쓴다. 화요일과 목요일 저녁, 일요일 오전에는 마라톤 연습이 있기 때문이다. 눈·비가 내려도 할 수 있는 게 마라톤이지만 겨울에 눈이라도 내리면 그만큼 부상 위험이 따른다. 정 계장은, 자신의 표현을 빌자면, 마라톤에 ‘중독’된 사람이다. 1주일만 안 뛰어도 벌써 몸이 근질근질해진다. 정 계장은 2001년 3월 마라톤 풀코스에 도전한 이후 5년이 채 못 되는 기간에 풀코스만 14번 완주했다. 100㎞ 울트라 마라톤도 2번이나 소화해냈다. 정 계장이 ‘달리기’ 시작한 것은 45세가 되던 2000년 봄이다. 그 전까지 그는 1년이면 ‘3백66일’ 술을 마셨다. 담배도 하루에 두 갑 가까이 태워 없앴다. 몸이 처지는 느낌이 들었다. 30대 후반부터 달고 살던 십이지장궤양에 좋다는 소리에 무조건 뛰었다. “마라톤 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마라톤은 신이 내린 보약이다’ 이런 말이 있습니다. 2002년에 내시경 검사를 하니까 십이지장궤양이 없어지기 시작하더라고요. 시간이 없어서 못 뛴다는 말은 핑계입니다. 40대가 되면 무슨 운동이든 꼭 하나 정해서 꾸준히 해야 합니다.” 2000년 10월 조선일보 춘천마라톤 10㎞코스를 거쳐 2001년 3월 동아마라톤 때 처음 풀코스에 도전했다. 기록은 4시간 36분. 이후 일산호수마라톤클럽에 가입해 체계적인 훈련을 받고부터는 기록이 눈에 띄게 단축됐다. 2002년 동아마라톤 때 3시간 49분을 기록한 데 이어 2003년에는 3시간 31분을 기록, 이른바 3시간 30분대 주자 대열에 합류했다.
찾은 것은 건강만이 아니다. 인생을 보는 눈도 조금은 달라졌다. “욕심이 화를 부른다고 하잖아요. 자기 몸이나 훈련 상태를 생각하지 않고 기록 단축을 위해 욕심을 부리다 보면 거의 99% 사고가 납니다.” 무엇이 그를 마라톤에 ‘중독’되게 만들었을까? “달리다 보면 황홀감과 행복감을 느끼면서 무아지경에 빠지는 경우가 가끔 있는데, ‘러너스 하이(runner's high)’라고 합니다. 기록에 대한 욕심을 내면 못 느껴요. 또 극한의 육체적 한계를 이겨내고 난 뒤에 찾아오는 성취감, 그것 때문에 요즘도 마라톤 전날에는 괜히 설레고 밤잠을 설치곤 합니다.” 한때 1년에 3~4차례씩 풀코스에 도전할 때는 기록 단축을 위해 뛰었지만 요즘 그는 다른 사람들과 어울려 함께 뛰는 재미로 달린다(마라톤 용어로는 ‘fun run'이라고 부른단다)고 했다. 대회도 봄(동아마라톤)·가을(조선일보마라톤)에 한번씩으로 줄였다. 그래도 기록은 3시간 30분대를 유지할 정도로 단순한 동호인 수준은 넘어섰다. 그런 그에게도 ‘욕심’은 있다. 100㎞ 울트라마라톤을 1년에 1번 이상 뛰는 것과 안산 ‘들꽃 피는 마을’ 아이들과 좀더 많은 시간을 보내는 것이다. 들꽃피는마을은 갈 곳 없는 아이들을 위한 대안가정이다. 마라톤 동호회원 소개로 알게 돼 2003년부터 다른 회원 4명과 함께 아이들을 후원해 오고 있다. “중·고등학생 중엔 마라톤 하는 애들도 15명 정도 되고, 그 중 2명은 풀코스도 뜁니다. 대회도 함께 나가곤 하는데, 좀 더 자주 찾아가고 내년에는 꼭 아이들과 함께 국토순례도 해 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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