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기부 X파일’ 관련 대학 주요보직교수 반응

“너무 민감한 사안이라….” 소위 ‘안기부 X파일’ 파문에 대해 대학 주요 보직교수들은 언론 보도에 촉각을 세우면서도 상당히 조심스러운 반응들이다. 그러나 “사실 관계를 철저히 밝혀내는 것이 중요하다”는 데에는 목소리를 높였다. 불법 도청보다는 불법 로비에 강조점을 찍는 분위기다. 이영준 경희대 법대 학장은 “도청 자체가 국가 기관에 의해 저질러진 불법적인 일이고, 공소시효 문제 등이 걸려 있어 (법을 공부하는 사람으로서) 참 입장이 애매하다”면서도 불법정치자금 제공과 관련해서는 “철저한 진상 규명이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학장은 “도청 테이프 수가 수백에서 수천이라고들 하는데 이번에 그 중 하나가 공개돼 문제가 되고 있는 것 아니냐. 과거에는 불법 정치자금 제공이 불문율처럼 자행됐다는 점에 비춰볼 때 특정인만 갖고 집중적으로 비판하고, 그것만이 사태의 전부인 것처럼 떠드는 것은 법의 형평성 측면에서도 어긋난다”고 덧붙였다. 이승호 건국대 법대 학장은 “불법 도청이 문제냐 로비가 문제냐는 점에서 언론 보도가 갈리는 것 같은데 향후 한국사회가 나아가야 할 바람직한 모습이라는 측면에서 본다면 불법 로비가 더 문제”라는 입장을 밝혔다. 이학장은 “도청이야 국가 기관이 못하게 하면 그만이지만 재벌이 로비하고 돈 대줘 정치권력 만들어 내고, 거기다 언론하고 연계돼 있고…. 미래지향적 한국사회를 꾸려나가기 위해서는 이 기회에 로비 문제는 그냥 넘어가면 안 된다”며 “법적인 평가는 현행법 잣대로 봐야겠지만 X파일에 나오는 중요한 사실 관계는 밝혀져야 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최기헌 덕성여대 기획처장은 “불법적인 도청으로 인해 밝혀진 것이긴 하지만 이 같은 일이 발생했다는 것은 사회가 잘못된 것이고 창피한 일”이라고 말했다. 전하성 경남대 기획처장 역시 “IMF가 온 게 정경 유착이 큰 원인 중 하나였는데 거기에 언론까지 가세했다는 점에서 공분을 느끼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강호수 동명정보대학 교무처장은 “문민정부가 들어서도 권력 행사와 유지를 위해 불법 행동을 자행한 것이 안타깝다”면서도 “삼성이 기업으로서 국가경제에 기여한 측면은 분명히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위법ㆍ탈법ㆍ불법 행위를 해도 된다는 것은 아니다. 이러한 부분들이 밝혀지면 가차 없이 막아야 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박기갑 고려대 학생처장은 “물론 대선자금 지원과 관련한 정경유착에 대한 부분은 잘못된 것이지만 국가기관에 의한 불법도청에 더 큰 문제가 있다”고 불법 도청에 더 무게를 실었다. 박처장은 “불법적으로 얻어진 내용이 법적 증거로 활용된다면 문제가 어떻게 되겠느냐”며 “현재 여론은 삼성 측이 잘못됐다는 쪽에 있지만 국가기관의 잘못이 더 크다는 생각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삼성 측을 두둔하는 것은 아니지만 좀더 추이를 지켜봐야 한다”고 덧붙였다. 언론 보도 형태에 대해서는 다소 입장이 엇갈렸다. 김유경 한국외대 홍보실장은 “(타당하고 인정된 방법이 아닌) 편법에 의해 확인된 내용을 그대로 보도한 것 자체가 언론윤리 측면에서 볼 때는 공적 매체로서의 역할을 다하지 못한 것으로 볼 수도 있다”며 “사실 관계 확인과 사회적 파장을 충분히 살펴보았어야 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박동곤 숙명여대 입학처장은 “언론은 할 바를 했다”며 “국민의 알 권리를 충족시키는 것이 중요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홍석현 주미대사의 사의 표명 이후 제기되고 있는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사퇴 여론에 대해서는 신중한 반응이 주를 이뤘다. 삼성이 한국사회에 미치는 영향력에서 대학도 자유롭지 못함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최기헌 덕성여대 기획처장은 “사건에 연루된 홍석현 주미대사도 사퇴를 하는 등 책임을 지는 모습을 보인 것처럼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도 오너로서 어떤 식으로라도 책임을 져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익명을 요구한 서울 소재 사립대학 모 처장은 “지금 삼성의 독점 야욕이나 이건희 회장의 사퇴를 따지는 것은 시기상조”라며 “가장 중요한 것은 삼성이 돈의 출처를 밝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승호 건국대 법대 학장은 “삼성 문제도 손댈 건 손대고, 밝힐 건 밝혀야 된다. 삼성이 커나가기 위해서도 불법로비 같이 정리할 건 정리하는 게 필요하다”면서도 “그러나 속된 말로 삼성이 가진 힘을 약화시키는 삼성 죽이기 식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당부했다. 한편, 삼성 재단인 성균관대의 한 보직교수는 “너무 민감한 사항이다. 성균관대 어느 교수도 여기에 관해 쉽게 말할 수 없을 것”이라며 극도로 말을 아꼈다. 이 교수는 “중앙일보만 관련 됐어도 조금 낫지만 삼성과 직접적으로 말이 나오는 분위기에서 학교와 모기업 간의 관계가 있으므로 말하기 어렵다. 사실 학교도 좀 침통한 분위기다”고 전했다. <대학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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