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양대-한국대학신문 공동 기획 "로스쿨 시대가 온다'<3> ①법조계 기득권 지키려 입학정원 통제

사법제도개혁추진위원회(사개추위)가 지난 16일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 도입 방안을 확정했다. 사개추위는 이날 본위원회 회의를 열어 특별법인 ‘로스쿨 설치·운영에 관한 법률(안)’과 ‘시행령(안)’을 의결했다. 2008학년도에 학교별 신입생 1백50명 이내 규모로, 3년제 석사과정을 개교한다는 내용이다. 그러나 연간 총 입학정원을 몇 명으로 할 것인지는 정하지 않았다. 총 입학정원은 변호사 수뿐 아니라 로스쿨을 몇 개나 만들 것인지와 직결되는, 로스쿨 도입의 핵심이다. 사개추위는 “이후 교육부장관이 각계의 협의와 사회적 합의를 거쳐 정하게 될 것”이라는 입장만 밝혔다. 사개추위가 총 입학정원을 얼버무린 채 법률안을 확정하자 법학계와 시민단체가 곧장 강도 높은 비판 성명을 발표하고, 대한변호사협회(변협)조차 ‘전면 수정’을 요구해 이후 국회 입법과정에서의 파장을 예고하고 있다. ◆법조인을 위한 로스쿨 전국법과대학학장협의회(학장협의회)와 법학교육 개혁을 위한 전국교수연합(법교련)은 17일 공동 성명서를 내고, “사개추위의 안은 사법개혁을 바라는 국민의 염원과 기대를 전혀 담아내지 못하고 철저히 ‘법조인의, 법조인에 의한, 법조인을 위한’ 방안으로 전락하고 말았다”며 “입법청원과 국회 관계자 면담 등 사개추위 안의 철회를 위해 모든 노력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민주주의법학연구회와 전국공무원노조 등 60여 개 단체가 모여 출범한 사법개혁3000국민연대도 “사법개혁이라기보다 법조기득권층의 생명을 연장시켜주는 개악이다”고 비판했다. 무슨 소리인가. 학장협의회 회장을 맡고 있는 이영준 경희대 교수는 “교육부장관이 정하도록 했지만 법원행정처장, 법무부장관, 변협 회장, (사)한국법학교수회장과 반드시 협의하도록 한 총 입학정원 결정과정에 주목하라”고 말한다. 사실상 4분의 3을 차지하는 법조계의 이해에 맞춰 총 입학정원을 통제하겠다는 의도란 설명이다. 이상수 한남대 교수는 “변호사 수 증가가 사법개혁의 성공을 위한 전제인데, 핵심 사안인 변호사 수의 문제를 건드리지 못함으로써 국민을 기만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사개추위에서 총 입학정원에 대해 한 마디도 하지 않았는데도 1천2백명설이 유력하게 대두하고 있는 것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법학계와 시민단체는 2~3천명 수준을 요구하고 있는 반면 사법제도개혁위원회(사개위)와 변협은 사법시험 합격자 수에 맞춰 1천2백명 수준을 제시한 바 있다. 김천수 성균관대 교수는 “사개추위는 언론을 통해 끊임없이 로스쿨 입학생 1천2백명설을 유포시키고 있다”고 비판했다. 김 교수는 “여러 언론들이 1천2백명설을 기정사실화해서 보도하고 있는데도 사개추위는 한번도 정정 보도를 요청하지 않았다. 사실상 1천2백명을 도식화해 국민들에게 주입시키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인가 방식도 문제다. 사개추위 안은 일정한 기준을 갖추면 모두 설립할 수 있는 준칙주의가 아니라 인가주의를 채택하고 있다. 김창록 건국대 교수는 “설치 기준을 충족해도 전국 총 입학정원이 초과된 상태에서는 허가를 안 내 줄 수도 있다는 얘기”라며 “사실상의 허가제, 특허제로 현재의 독과점 체제를 유지하겠다는 뜻”이라 말했다. 로스쿨 평가위원회를 변협 산하에 두도록 한 것 역시 마찬가지다. 로스쿨 평가위원회는 개별 로스쿨에 대한 평가를 통해 시정 명령과 정원 감축뿐 아니라 인가 취소 등의 제재조치를 교육부장관에게 건의할 수 있는 권한을 갖는다. 이승호 건국대 교수(법교련 공동집행위원장)는 “사업자 단체인 변협이 교육기관을 좌우하는 독점적 권한을 갖는지 납득할 수 없다”고 말했다. 박종보 한양대 교수는 “모든 사항을 법조계가 이중삼중으로 일일이 통제하고 관리하겠다는 뜻”이라고 비판했다. 한상희 건국대 교수(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 소장)는 “사개추위가 법조계 이기주의를 이기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런 가운데 변협이 지난 18일 성명을 통해 사개추위 법률안의 전면 수정을 요구한 것은 일종의 위기의식으로 해석된다. 변협은 “로스쿨 총 입학정원은 사개추위 건의안과 같이 사법시험 합격자 수를 기준으로 한다는 원칙을 법안에 명시하고, 교육부장관과 법조단체장과의 협의체에서 총 입학정원을 의결하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법학계는 물론 시민단체까지 나서 총 입학정원 2~3천명을 주장하고 있어 자칫 국회 입법과정에서 불리하게 바뀔지도 모른다는 위기의식 때문에 확실히 ‘못’을 박고 가자는 뜻이란 것이 대체적인 시각이다. ◆ 로스쿨 난립 가능성 없다 사개추위가 로스쿨 인가 방식에서 인가주의를 채택하면서 내세운 가장 큰 이유는 준칙주의로 할 경우 발생할지 모르는 ‘로스쿨 난립과 이로 인한 법학교육의 부실화’이다. 그러나 법학계는 “난립 가능성은 없다”고 잘라 말한다. 김창록 교수는 “현재의 안도 설치 기준이 굉장히 엄격하다. 이 기준을 적용하면 일본 로스쿨은 3분의 2가 퇴출 대상”이라고 말했다. 박종보 교수 역시 “현재의 엄격한 기준을 그대로 맞출 수 있는 학교가 전국적으로 20개를 넘을 수 없을 것이다”며 “난립에 따른 부실 교육 때문에 준칙주의는 안 된다고 했는데, 변호사 자격시험 합격률이 낮고, 시험에 붙어도 변호사로 살아남지 못한다면 그 학교로 학생들이 오겠느냐”고 되물었다. 이러한 법학계의 주장은 사개추위가 최근 내놓은 ‘법조 및 법과대학 현황’ 자료집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예컨대 사개추위는 로스쿨 설립요건으로 전임교수 20명 이상, 전임교수 대 학생 비율이 1대 12 이하를 제시하고 있다. 한 학년 당 정원을 1백명으로 가정하면 전임교수는 25명 이상이 돼야 한다는 말이다. 그러나 2004년 현재 법학과가 설치된 전국 1백여개 대학 가운데 다섯 학교만이 이 조건을 충족하고 있다. 전임교수가 20명 이상인 대학도 이들 대학을 포함해 12곳에 불과하다. “난립이라고 하는데 전국에 법과대학이 33~35개 정도 있다. 나머지 대학은 학부 안에 포함돼 있다. 그런 대학들이 언제 단과대학으로 독립해 건물 짓고 하겠느냐. 다른 구성원들의 반발도 있을 텐데. 그리고 사법시험에서 1년에 1% 이상 합격자를 배출하는 대학이 14곳이다. 합격자 한 명도 못 내던 대학에서 엄청난 초기 투자비용을 감수하고 로스쿨 한다고 덤비겠느냐.”(이영준 교수) 한상희 교수는 “로스쿨 정원을 현재 변호사 수에 맞출 때 문제는 어느 대학이 가고 안 가고가 아니라 법률서비스 시장을 어떻게 만드는가이다. 숫자를 묶으면 공부 안 해도 먹고 산다. 그러나 많이 뽑으면 합격률이 높아도 열심히 할 수밖에 없다. 교수들도 합격률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에 밤잠 못 잔다. 제대로 된 교육을 위해서는 어느 정도의 경쟁은 당연한 것 ”이라고 강조했다. 권형진 기자 jinny@unn.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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