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학교수단체ㆍ시민단체 등 “개악적 로스쿨 법안 국회 상정되면 전면 거부 투쟁”

“다양한 법조인 양성을 위해 법학전문대학원(이하 로스쿨)을 도입한다면서 정원을 제한하는 것은 결혼한 부부에게 불임을 강요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정용상 부산외대 법대 학장(한국법학교수회 사무총장)이 최근 입법 예고된 ‘법학전문대학원 설치ㆍ운영에 관한 법률(안)’을 두고 한 말이다. 전국의 법학교수단체와 시민단체가 28일 공동기자회견을 갖고 로스쿨 특별법안에 대해 강도 높은 비판을 날렸다. 이들은 공동 성명서를 내고 “사법제도개혁위원회(이하 사개위)와 사법제도개혁추진위원회(이하 사개추위)가 성안하고 교육인적자원부(이하 교육부)가 복제한 로스쿨 법안으로는 로스쿨 도입의 본래 의도가 충족될 수 없다”며 “입법 예고된 법안의 국회상정 자체에 적극 반대하며 국민이 납득할 수 있는 민주적 절차에 따라 새로운 법안을 만들 것”을 강력히 요구했다. 이날 공동 기자회견은 전국의 법학교수들이 총 궐기했다는 느낌을 주기에 충분하다. 현 법안에 가장 적극적으로 비판 의견을 표명했던 전국법과대학협의회(회장 이철송 한양대 법대 학장)와 법학교육개혁을 위한 전국교수연합(법교련ㆍ공동집행위원장 김민배 인하대 법대 학장, 이승호 건국대 법대 학장, 허일태 동아대 법대 학장, 홍춘의 전북대 법대 학장)뿐 아니다. 1995년 로스쿨 도입이 처음 논의될 때 적극 참여했던 법과사회이론학회(회장 정종섭 서울대 교수)도 현 법안에 대한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고, 민주주의법학연구회(회장 이상수 한남대 교수)와 전국교수노조(위원장 김상곤) 민중연대(의장 정광훈) 공무원노조(위원장직무대행 정용천) 등 60여개 단체가 만든 민주적 사법개혁을 위한 국민연대(민주사법 국민연대)도 참여했다. 심지어 한국법학교수회(회장 송상현 서울대 교수)도 뜻을 같이했다. 로스쿨 특별법안에 따르면, 한국법학교수회장은 로스쿨 총 입학정원을 정할 때 교육부장관이 협의해야 할 네 사람 가운데 한 명이다. 시쳇말로 가만히 있어도 손해 볼 것 없을 것 같은 한국법학교수회마저 반대 대열에 적극 동참한 이유는 무엇인가. 이영준 경희대 법대 학장은 대신 낭독한 공동 성명서에서 “많은 국민들이 로스쿨 도입에 지지의사를 보냈던 이유는 로스쿨 도입의 취지가 수준 높은 법률가를 대량으로 배출해 우리 사회에 필요한 법률 서비스의 질적 향상을 도모하고 국민들을 위해 변호사의 문턱을 낮추고자 하는데 있었기 때문”이라며 “현재의 로스쿨 법안은 자율과 상호 경쟁을 원천적으로 배제한 배타적ㆍ독점적 법조인 양성 시스템이기 때문에 우리 사회에 필요한 법률서비스의 질적 향상은 기대할 수 없으며 학벌 폐해는 더욱 심화될 것이고, 가난한 사람의 법학교육에 대한 접근 자체가 봉쇄될 가능성이 농후하다”고 비판했다. 법학교수단체 등은 또 “현재의 법안은 로스쿨 설치를 극도로 제한해 배출되는 변호사 수를 철저하게 통제하려는 기존 법조인의 이해를 그대로 반영한 것으로 법학교육 및 법조인 양성 시스템을 개혁하는 것이 아니라 개악하는 것”이라며 “입법 예고된 법안은 절대로 국회에 상정되어서는 안 되고, 로스쿨 본래 취지를 훼손하는 현재의 법안이 그대로 국회에 상정될 경우 개악적인 제도의 전면 거부를 포함한 모든 투쟁에 나설 것”이라고 경고해 긴장감을 높였다. 이에 앞서 한국법학교수회 사무총장을 맡고 있는 정용상 부산외대 법대 학장은 “법률 시장이 개방되는데 정원 제한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는 질문을 던지며 “로스쿨 도입의 목적이 다양한 법조인 양성이라면서 정원 제한을 두는 것은 결혼한 부부에게 불임을 강요하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정 학장은 이어 “지금의 법안은 진정한 사법개혁과 법학교육 정상화를 외면하고 있다”며 “위장된 로스쿨 법안의 국회 상정을 반대한다”는 입장을 분명히 밝혔다. 전국법과대학학장협의회를 대표해 나온 임중호 중앙대 법대 학장(부회장)은 “언론에 보도되는 대로 1천2백명으로 총 입학정원을 제한해 놓고 로스쿨 도입의 취지인 법률 서비스 향상과 국제적 감각을 갖춘 법조인 양성을 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며 “법조인 양성 측면에 집중하다 보니 법학 후속세대 양성 등 학문적 논의가 도외시되고 있는 것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임 학장은 이어 “대한변협 산하에 사후 평가 기관을 두게 돼 있는데 공정하고 적정한 평가가 이뤄질지 의문”이라며 “교육부 산하에 전문적 평가 기관을 둬 전문적이고 공정한 사후 평가가 이뤄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법과사회이론학회 편집위원장을 맡고 있는 김창록 건국대 교수는 “로스쿨의 성공을 위해서는 충실한 교육이 확보돼야 하는데 그것은 자율과 경쟁의 원리에 의해 움직일 때 가능하다”하다며 “현재의 법안은 사법연수원을 소수의 대학에 특혜 분양하는 것밖에는 안 된다”고 비판했다. 대한변협에 대한 주문도 빠뜨리지 않았다. 김 교수는 “대한변협은 그 동안 법학교육에 대해서는 아무런 적극적인 모습 없이 숫자에만 매달려 왔다. 책임 있는 자세가 아니다”며 “대학 측과 지혜를 모아 충실한 법학교육을 이뤄낼 수 있도록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필요하다”고 주문했다. 정광훈 민주사법 국민연대 공동집행위원장(민중연대 상임의장)은 “법률도 서비스의 하나인데 법조계를 보면 양질의 서비스를 제공하기보다 마피아적 카르텔을 형성하고 있다”며 “가난한 사람들은 서비스를 받고 싶어도 못 받고 있는 현실에서 현재의 로스쿨 법안은 질 좋은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길을 막고 있기 때문에 폐지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공동기자회견을 마친 후 이들은 교육부를 방문, 전문대학원 제도개선팀에 이 같은 뜻을 담은 의견서를 제출했다. 교육부가 지난 18일 입법 예고한 로스쿨 법안은 법무부와 법제처 심사 등을 거쳐 국무회의에서 최종 확정되면 정부안으로 올 9월 정기국회에 상정된다. 한편, 대한변협도 조만간 현재의 법안에 문제가 있기 때문에 바꿔야 한다는 공식의견을 표명할 예정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어 로스쿨 법안을 둘러싼 논란은 앞으로 더 뜨거워질 전망이다. 9월 정기국회까지는 두 달 넘게 남았지만 로스쿨 도입을 둘러싼 각계의 '총성 없는 전쟁'은 이미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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