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미지근한 태도’에 KT·현대重 ‘사업 포기’ 통보

학내선 “사전 검토 없이 성급한 MOU” 비판

[한국대학신문 민현희 기자] 숭실대가 KT·현대중공업과 손잡고 야심차게 추진해 온 산학연 복합시설이 무산됐다. 이 복합시설은 총 4700억원의 사업비가 투입되는 국내 최대 규모의 산학연 시설로 지난해 10월 양해각서(MOU) 체결 당시 화제가 된 바 있다.

현재 숭실대 내부에서는 “대학본부가 충분한 검토 없이 성급하게 사업을 추진해 인력·시간을 낭비하고 별다른 성과도 거두지 못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또 당시 임기 말이었던 김대근 전 총장이 연임을 위해 ‘일단 저지르고 보자’는 식으로 사업을 추진했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 숭실대가 지난해 10월 공개했던 산학연 복합시설 조감도.
2일 숭실대 등에 따르면 숭실대·KT·현대중공업이 공동으로 진행해온 ‘산학연 복합시설 개발사업’이 최근 기업 측의 요청으로 중단됐다. 이 사업은 숭실대 정문 인근 1만4499㎡(4386평)부지에 2015년 10월까지 지하 5층·지상 11층, 연면적 9만9350㎡(3만평) 규모의 복합시설을 건축하는 것이 골자다.

이들 3개 기관은 MOU를 통해 숭실대가 토지를 제공하면 KT와 현대중공업이 총 4700억원의 사업비를 투입하기로 약속했다. 대신 복합시설이 완공되면 KT의 인터넷데이터센터와 현대중공업의 R&D연구소 등이 들어설 계획이었다. 숭실대는 이 시설을 통해 맞춤형 인재 양성과 취업 활성화, 산학연 공동연구 활성화 등의 효과를 거둘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그러나 현재 이 사업은 기업들의 ‘사업 포기’ 통보로 무산됐다. 대학 관계자들의 말을 종합해보면 사업 무산의 결정적 원인은 숭실대의 미지근한 태도에 있다. 실시협약 체결을 앞두고 있던 지난 2월, 한헌수 총장이 취임했고 이후 대학 측은 KT와 현대중공업 측에 사업이 계속된다는 명확한 사인을 주지 않았다. 결국 현대중공업은 숭실대가 사업에 대한 의지를 가지고 있지 않다고 판단, 계약 종결 의사를 전했고 KT도 발을 뺐다.

그렇다면 숭실대가 복합시설 조성 사업에 관한 이렇다 할 입장을 표명하지 못했던 이유는 무엇일까. 대학 관계자들은 “성급한 MOU 체결이 문제였다”고 지적했다. 충분한 검토나 학내 의견 수렴 없이 MOU부터 체결하고 보니 법적인 문제, 학내 구성원의 반발 등이 뒤늦게 발목을 잡았다는 말이다.

복합시설에 포함된 인터넷데이터센터는 방송통신시설이기 때문에 설립을 하려면 법적 허가가 필요하다. 하지만 현재로서는 학교 내 방송통신시설 건립에 관한 법 조항은 없어 논란의 소지가 많다. 그러나 숭실대는 MOU가 체결되고 나서야 서울시, 교육부 등과 이 문제를 논의하기 시작했다.

국내 최대 규모의 산학연 복합시설 조성이라는 초대형 사업을 학내 구성원과의 논의 없이 추진한 것도 문제다. MOU 체결 후 사업 추진 방식, 계약 내용을 둘러싼 학내 의견이 분분했고 김 전 총장이 연임을 목적으로 실적을 쌓고자 성급하게 사업을 밀어부친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하지만 김 전 총장은 연임에 실패했고 후임 총장이 취임하자 사업은 원점에서 다시 검토됐다. 

대학 관계자는 “숭실대·KT·현대중공업은 ‘법적인 어려움으로 사업 추진이 불가능하다겠다’는 결론을 내리고 사업을 종료했다. 그러나 이는 표면적인 이유에 불과하다”며 “법적인 문제는 사실 정부 기관과의 논의를 통해 충분히 풀어나갈 수 있는 부분이었다”고 밝혔다.

그는 “학내 의견이 엇갈리면서 사업을 다각도로 검토하다 보니 이에 관한 명확한 입장 표명이 어려웠고 사업에 진전도 없었다”며 “이 같은 대학의 태도를 놓고 현대중공업과 KT가 ‘대학이 사업에 대한 의지를 가지고 있지 않으므로 더 이상 추진이 어렵겠다’는 결론을 낸 것이 이번 사업이 무산된 진짜 이유”라고 설명했다.

다만 이 관계자는 “김 전 총장이 연임에 욕심을 냈다”는 비판에 대해서는 “김 전 총장이 연임을 목적으로 복합시설 조성을 추진한 것은 아니다. 진작부터 이 사업을 추진해왔는데 MOU 체결 시점이 우연치 않게 김 전 총장 임기 만료, 새 총장 선출 시점과 맞아떨어졌다”고 덧붙였다.

복합시설 조성이 무산되자 숭실대 내부에서는 “처음부터 안 되는 일이었다”는 의견과 “대학발전을 위한 엄청난 기회를 놓쳤다”는 의견이 동시에 나오고 있다. 이 대학 한 교수는 “사업 무산이 다행일지 불행일지 판단하기는 이르지만 상당히 무리하게 추진된 사업인 만큼 언젠가는 무산이 불가피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대학 관계자는 “사업이 제대로 추진됐다면 대학의 교육·연구력 강화, 장학금·기부금 확충에 큰 도움이 됐을 것”이라며 “복합시설 중 4분의 1 이상은 무상으로 기부 받을 수 있어 공간 확보에도 효과적이었을 텐데 아쉬움이 크다”고 밝혔다.

복합시설 조성 무산에 따라 숭실대는 해당 부지에 위치한 문화관·경상관에 대한 재건축 사업을 대학 자체 자금으로 추진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이 계획이 실행될 경우 문화관 재건축 작업이 내년부터 2015년까지 진행되고 이후 경상관 재건축이 이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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