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률 본지 논설위원·숙명여대 영문학부 교수

최근 한국 사회의 키워드는 ‘소통’이다. 정치권이나, 대학사회에서도 소통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소통이란 개인과 개인, 집단과 집단 사의의 가로막힌 벽(barrier)을 ‘트고(疏) 연결하(通)’는 노력을 말한다. 그 만큼 아직도 많은 벽들이 존재한다는 뜻이다. 그러나 소통의 중요성을 말하면서 벽을 트려는 구호만 무성할 뿐, 정작 트인 벽 사이를 연결하려는 실천적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우리 사회는 그 동안 많은 벽들을 허물며,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고 연결하려는 노력을 해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도처에 다양한 차이를 가로막는 벽들이 존재한다. 특히 신체적, 정신적 차이로 인해 고등교육의 기회를 박탈당하거나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을 보는 것은 실로 안타깝다.

문제는 그 차이가 소수의 문제라는 다수의 착각에서 비롯된다. 차이는 몇몇 사람들의 현상이 아니라, 보편적인 현상이다. 특히 신체적 차이는 더욱 그렇다. 백인이 흑인이 될 수 없고, 남성이 여성이 되기 힘들고, 빈자가 하루아침에 부자가 될 수 없다. 그러나 우리 모두는 언제나 신체적으로 불편한 존재가 될 수 있다. 단지 '잠시 동안만 건강한 몸(TAB: Temporarily Abled Bodies)'을 가지고 사는 예비장애인일 뿐이다. 요컨대, 인간은 불완전한 존재이며, 항상 크고 작은 병을 달래며 살아간다.

지금 사회적으로 통용되고 있는 ‘장애’라는 용어는 신체적, 정신적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 정치적 문제이다. ‘불구’가 신체적 결여나 불편을 말한다면, ‘장애’란 신체적으로 불편한 사람들의 접근성을 차단하는 장애물을 사회가 만들거나, 방치함으로써 그들을 부정적 존재로 만드는 사회적 과정이기 때문이다. 즉, 계단과 횡단보도와 같은 사회 환경적 요인에 의해서 장애라는 차별적 개념이 탄생하게 된 것이다. 장애를 차이로 인식할 때, 장애란 개념은 소멸된다.

선진국에는 차이를 가진 사람들이 불편 없이 살아갈 수 있는 ‘배리어 프리(barrier-free)’ 운동이 확산되고 있다. 우리나라도 최근 시청각적으로 불편한 사람들을 위해 배리어 프리 영화위원회가 활동하기 시작했다는 것은 반가운 일이다. 배리어 프리 운동은 단순히 시청각 영화를 공유하기 위한 문화복지 차원의 운동에 국한해서는 안 된다. 생활복지와 교육복지 등 사회전반으로 확산되어야 한다.

대학도 예외가 아니다. 우리나라 대학은 1995년 장애학생 대학입학특별전형제도가 실시된 이후 현재 신입생 장애학생의 진학률이 20%를 육박한다. 그러나 교과부의 장애학생지원실태 평가결과 교수․학습영역과 시설․설비영역은 기준 이하다. 특히 인권포럼이 발표한 평가를 보면 상황은 더욱 열악하다. 대학들의 개선이 시급하다. 대부분의 대학들은 교수학습법이나 이동경로의 시설미비로 인해 신체적으로 차이가 있는 사람들을 장애인으로 만들고 있으며, 그들의 학습권을 박탈하고 있다. 또한 국제화로 인해 많은 외국인 학생을 유치하고 있는 대학들은 한국어 중심의 행정체제로 인해 외국인들을 언어 장애인으로 만들고 있다.

우리나라가 선진국이 되기 위해서는 대학이 먼저 ‘배리어 프리 캠퍼스’를 구축해야한다. 세계적인 명문대학이란 연구와 교육의 수월성에서만 나오는 것이 아니라, 연구와 교육이 인간의 자유와 평등 그리고 행복을 위해 이바지 할 때 비로소 가능한 것이다. 대학이 선진화되어야 사회가 선진화된다. 아직도 캠퍼스 도처에 존재하는 벽을 허무는 작업에 동참함으로써 진정한 소통을 실천하자. 그것이 바로 국격을 높이고, 대학의 진정한 국제화와 선진화를 이루는 길이다.

<한국대학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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