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교과 스펙 쌓기 열풍, 공정성 시비 등 잇따른 논란

정보력 싸움되면서 부의 대물림 수단으로 악용 지적
전문가들 “대입전형 간소화 따라 축소·수정 불가피”

▲ 지난해 10월 입학사정관제 선도대학인 건국대가 수시모집 입학사정관 자기추천전형에서 학생의 잠재력과 진면목을 충분히 살필 수 있도록 한 심층면접 방식의 1박2일 합숙면접을 하고 있다.

[한국대학신문 백수현 기자] 얼마 전 한 언론에 의해 보도된 ‘입학사정관제(이하 사정관제) 전격 폐지’ 뉴스는 그야말로 대입 판을 뒤흔들어 놨다. 보도의 요점은 교육부가 대입부담 경감을 위해 현재 고교 2학년생이 응시하는 2015학년도부터 사정관제를 폐지하기로 의견을 모았다는 것. 사정관제를 통한 대학 진학을 목표로 해온 수험생과 학부모, 대학과 고교 관계자들, 일선 입시업체들까지 뉴스의 진위를 파악하기 위해 일대 혼란이 벌어졌다. 파장이 확산되자 교육부는 “사정관제 폐지를 검토한 바 없으며 기사 내용이 사실과 다르다”고 해명했지만, 여전히 많은 이들은 사정관제 폐지에 대한 의심의 눈길을 거두지 못하고 있다.

■ “후진적 입시로 회귀 하려는가”= 사정관제 폐지 소식이 전해진 뒤 많은 교육관련 단체들은 일제히 반대의견을 제기하고 나섰다. 교육시민단체 사교육걱정없는세상(공동대표 송인수, 윤지희)은 논평을 통해 “사정관제를 없앤다는 것은 우리 교육이 다시 점수 중심의 획일적·후진적 입시제도로 회귀하겠다는 의미”라며 “학교교육 선진화에 치명적인 패착이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학업성적 외에 잠재력·특기·적성·경험 등 다양한 가능성을 고려해 학생을 선발한다는 취지로 도입된 사정관제는 대입 선발방식에 적지 않은 변화를 가져왔다. 제도의 본래 취지만 살린다면 여러 가지 긍정적 효과가 가능한 게 사정관제다. 점수위주의 선발방식에서 벗어나 학생의 특기와 잠재력을 보기 때문에 사교육 완화 효과도 거둘 수 있다.

이 같은 이유 때문에 사정관제 선발인원은 해마다 증가했다. 2014학년 입시에서는 전체 대입정원의 12.96%(4만9188명)가 사정관제로 선발된다. 이는 지난해보다 1582명이 증가한 수치다. 정부의 지원도 해마다 늘어 사정관제 지원 관련 예산은 2007년 20억 원에서 2008년 157억 원, 2010년 350억 원, 2011억 351억 원, 지난해는 391억 원으로 증가했다.

■ 전문가들 “제도 폐지보단 보완해야” = 도입 취지가 나쁘지 않음에도 사정관제 폐지가 거론된 배경에는 제도를 둘러싼 숱한 논란거리가 있다. 서남수 교육부 장관은 지난달 2일 교육부 기자단과의 오찬에서 “입학사정관제는 양날의 칼”이라며 “교육 정상화에 기여할 수 있는 장점이 있는 반면 남용되거나 악용되면 문제가 생길 여지가 있다. 어떻게 장점을 살리면서 문제를 최소화 할 수 있느냐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고 밝혔다.

실제로 사정관제가 확산되는 과정에서 많은 문제점이 노출됐다는 사실에 전문가들 대부분이 동감한다. 그러나 제도 자체의 폐지보다는 보완이나 개선이 필요하다는 조언도 덧붙인다. 서거석 대교협 회장은 “입학사정관제가 특목고 학생들을 뽑기 위해 악용된다면 문제가 있지만, 학생을 수능 위주가 아닌 잠재력으로 뽑을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며 “폐지보다는 보완해야 한다”고 밝혔다.

김종우 전국진로진학상담교사협의회장(성수고 교사)도 “입학사정관제는 없어져서는 안 된다”며 “다양화 된 사회에서 국·영·수 성적만으로 대학 진학을 결정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아이들의 꿈을 키워주고 살려주는 전형이 바로 사정관제이기 때문에 정규 교육과정을 충실히 이수한 학생이 대학에 진학할 수 있도록 보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정관제 확산의 ‘속도 조절’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있다. 안상헌 한국대학입학사정관협의회장(경북대 입학사정관)은 “갑작스런 확대보다는 내실화하면서 점차 확대해나가는 노력이 필요하다”며 “새 정부에서 말하는 창조적 인재 육성은 사정간제 방식이 아니고서는 불가능하다. 제도를 처음 시행하다보면 일부 부작용이 있을 수 있는데 이 때문에 제도 자체를 없앤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일”이라고 말했다.

■ “권력·부의 대물림 수단으로 변질” 지적도= 전문가들이 지적하는 현행 사정관제의 문제점은 크게 세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먼저 전형 종류와 명칭이 지나치게 많다는 것이다. 사정관제는 대학마다 학생부중심전형·특기자전형·기회균등전형 등 다양한 이름으로 시행되고 있다.

안상진 사교육걱정없는세상 정책대안연구소 부소장은 “대다수의 사람들은 전형 이름만 보면 사정관제인지 아닌지 구분하기가 힘들다. 고3 담임교사를 몇 년 동안 맡았던 나도 일일이 모집요강을 확인해봐야 알 수 있다”고 말했다. 이치우 비상교육 입시평가연구실장도 “사정관제에 포함되는 전형유형이 지나치게 광범위하고, 다양한 전형유형·명칭을 사용하기 때문에 수시모집의 대부분이 사정관제인 것으로 오해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수험생들은 사정관제를 통해 대학에 진학하기 위해 수능과 내신 외에도 △대학별고사(논술·면접·적성평가 등) △창의적 체험 △봉사 △리더십 △동아리 등의 활동 △어학시험 준비 △자기소개서 작성 등 다양한 전형요소를 모두 준비해야 한다. 안 부소장은 “전형요소의 난이도가 높지 않더라도 수험생으로서는 모든 전형요소를 지원 대학에 맞춰 준비해야 하는 부담을 생긴다”며 “급격히 증가하는 입시설명회, 컨설팅 사교육의 원인이 여기에 있다”고 말했다.

학생들로서는 학생부 외의 ‘스펙’을 쌓는 일도 부담스럽다. 안 부소장은 “서울대의 경우 지역균형선발 모집요강에서 평가서류 목록을 ‘학생부, 추천서, 자기소개서, 각종 증빙서류 등 제출된 모든 서류’라고 밝히고 있다”며 “제출서류 양식에서 ‘증빙서류 목차’를 제공함으로써 사실상 학생부 이외 서류(실적)가 평가에 어떤 식으로든 반영된다는 것을 명시하고 있다. 이런 방식은 비단 서울대만이 아닌 많은 대학에서 이뤄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교사들 역시 △서류 준비 △추천서 △비교과 영역에 대한 관리 △입시지도로 더 큰 부담을 갖게 됐다. 교사들은 “두루뭉술한 전형기준으로 무엇이, 어떻게, 얼마나, 중요하게 작용할지 몰라 모든 전형요소에 대해 전 방위적인 준비를 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토로하고 있다.

사정관제에 대한 부정적 인식은 또 있다. 경제력과 정보력의 차이에 따라 권력·부의 대물림 수단이 되고 있다는 지적이 그것이다. 김희갑 전국대학입학처장협의회장(강원대 입학본부장)은 “서울대를 포함한 명문대에서는 해외어학연수, 해외여행 등의 학교생활 외적인 부분도 반영하고 있다”며 “스펙 중심의 전형으로 소위 명문가 자녀들이 대학에 들어가는 관문으로 전락한 경우도 있다”고 지적했다.

■ 끊임없는 공정성 시비도 낳아= 학생선발의 공정성과 신뢰성 논란도 끊임없이 사정관제를 흔드는 요소다. 감사원이 지난해 10월 8일부터 11월 23일까지 교육부와 시·도 교육청 등을 대상으로 진행한 ‘창의교육시책 추진실태’ 감사 결과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전국 4년제 대학 신입생 중 10.8%, 올해 서울소재 사립대 신입생 28%가 사정관제로 대학에 입학했다.

이렇듯 선발규모는 커지고 있지만, 제도 시행과정 곳곳에서 부실이 드러나고 있다. 자기소개서를 표절하거나 전·현직 입학사정관의 불법 사교육업체 취업 등이 적발된 것이다. 대학들은 학생부 성적을 예고한 전형계획보다 적게 반영하는 관행으로 감사원 지적을 받았다. 서울 6개 사립대의 경우 학생부 반영비율 20~45%를 의도적으로 낮춰, 실질반영비율이 1.2~1.3%에 그치는 것으로 분석됐다.

이 실장은 “사정관제 대부분이 정성평가와 종합평가인데 선발 기준이 명확하지 않고 합격 결과에 대한 공개된 정보의 양이 적어 합격자와 불합격자 모두 결과를 인정할 수 없는 형국”이라며 “서류평가 시 사정관의 주관성 개입과 자료 누락, 입시 비리 의혹 등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상황”이라고 주장했다.

■ “사정관제 축소·변화는 불가피” 전망= 박근혜정부가 주요 정책과제로 내세운 ‘대입전형 간소화 방안’과 맞물려 사정관제의 개선은 피할 수 없는 사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입사제가 시행 5년 만에 전환점을 맞은 것이다.

서남수 교육부 장관은 올해 8월 입시 간소화 방안(2015학년도 대입부터 적용)을 발표한다고 예고했다. 이 방안에는 선택형 수능, 입학사정관제, NEAT(국가영어능력평가) 활용 등 2015학년도 입시의 주요 사항이 포함될 것으로 보인다. 많은 전문가들은 대입전형 간소화라는 큰 정책 틀 속에서 3000개가 넘는 대입전형을 줄이기 위해선 사정관제의 축소가 불가피하다고 전망한다.

이 실장은 “사정관제가 가지고 있는 순기능이 분명히 있기 때문에 이를 존속시키기 위해 대학별 특별전형으로 유지할 것”이라며 “전형유형을 정리해 학교생활 중심 전형으로 통일시키고 전형요소는 학생부(교과, 비교과), 추천서, 자기소개서 정도로만 제한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안 부소장은 “2014학년도 입시부터는 학생부 교과 성적이 절대평가로 매겨지기 때문에 지금과 같이 단순히 정량 점수만 반영하기는 어려워 질 것”이라며 “사정관제 중 학생부 중심전형은 정성적 평가로 운영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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