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대 퇴출되는데 수도권 대학은 오히려 '비대'

규정 안 지키는 대학 정원 감축하면 일거양득
구조조정 평가에 ‘지역균형 발전’ 가치 담아야

[한국대학신문 이재 기자] 하위 15%의 대학을 ‘부실 대학’으로 낙인찍어 시장에서 퇴출시키는 정부의 대학 구조조정이 지역불균형을 심화시킨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향후 대학 구조조정은 대학 수가 아닌 입학정원 감축으로 진행돼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대학교육연구소(대교연)는 지난달 30일 지역별 학생 수를 분석한 통계자료를 발표, 잘못된 구조조정 탓에 지방대학은 고사위기에 처하고 수도권 대학만 배를 불린다고 비판했다.

▲ 지난 10년간 지역별 설립별 대학생 수 <출처:대학교육연구소>

연구소 자료에 따르면 학령인구 감소가 예견되기 시작한 2002년 서울지역 대학생 수는 105만9954명이었으나 지난해는 114만7545명으로 약 10만 여명 증가했다.

반면 같은 기간 비수도권 지역에서는 대학생 수가 큰 폭으로 감소했다. 특히 전라지역의 학생 수는 2002년 38만6171명에서 지난해 33만8411명으로 4만7760명이 줄었다. 대구·경북지역의 학생 수도 2002년에 39만3043명이 집계됐으나 지난해는 36만2105명에 그쳤다. 약 10년간 3만938명이 감소한 것이다.

부산·울산·경남지역 대학생은 2002년 45만5563명이었으나 지난해는 44만3765명으로 나타났다. 제주는 3만4225명에서 2만9482명으로 감소했다. 각각 1만1798명, 4743명 줄어든 수치다.

■ ‘충청벨트’도 안전지역 아니다= 반면 충청지역의 학생 수는 48만3522명(2002년)에서 52만9579명(2012)으로 4만6057명 증가해 대조를 이뤘다. 강원지역도 2002년 13만2688명에서 지난해 13만7281명으로 4593명이 늘었다. 수도권을 중심으로 소위 ‘충청벨트’가 형성된 셈이다. 때문에 향후 학령인구 감소에도 불구하고 충청벨트에는 학생들의 급격한 감소세는 없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충남 천안에 위치한 선문대 관계자는 “수도권을 중심으로 비교적 교통이 용이한 충청권역의 대학은 아직 위기감이 덜하다”며 “그러나 천안과 대전을 제외한 다른 충청지역은 이미 발등에 불이 떨어진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나 충청지역이라고 안심할 상황은 아니다. 이 지역 일반대학 학생 수는 2002년 22만 2193명에서 지난해 39만4903명으로 대폭 증가했으나 전문대학은 11만8042명(2002년)에서 9만1797명으로 2만6245명 감소했다. 충청권 역시 전문대학들을 중심으로 위기감이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는 분석이 가능하다.

특히 충청권 대학생 수의 증가폭이 줄어든 것도 눈여겨볼 대목이다. 이 지역 대학생 수는 2002년부터 2011년까지 연평균 4500명씩 증가했으나 2011년에서 2012년에는 2000명 증가하는 데 그쳤다. 증가율이 반 토막 난 것이다. 2009년과 2010년 사이 이 지역 대학생 수 증가폭이 9000여명, 2010년에서 2011년까지 1만1000여명의 학생이 증가했던 것과는 다른 흐름이다. 다른 지역에서 충청권으로 대학생이 유입되던 현상도 ‘끝물’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 수도권은 ‘딴 세상’ 나 몰라라= 수도권 대학들의 사정은 다르다. 학령인구가 감소해도 지방대학과는 온도차가 크다.

수도권 대학의 대학생 수를 보자. 2011년 114만4109명이던 대학생 수가 지난해는 3436명 늘어 114만7545명이 됐다. 2010년에서 2011년까지의 증가폭은 1만여 명에 이른다. 수도권의 학생 수가 가장 큰 폭으로 증가한 시기는 충청권의 전문대학 수가 급감했던 2009~2010년이다. 이 기간에 수도권은 1만7775명의 학생이 증가했고, 2008~2009년에는 1만2000여명이 늘었다.

대교연 이수연 연구원은 “대학 구조조정 정책이 지방대학과 수도권대학을 일률적으로 줄 세우기하면서 격차가 더 커졌다”며 “정부의 대학정책이 명백히 잘못된 흐름으로 가고 있다는 반증”이라고 지적했다.

정부 구조조정 정책의 골자는 취업률·충원율을 기반으로 장기적으로 하위권 대학의 퇴출을 유도하는 것이다. 정량적 지표가 낮은 대학은 ‘부실대학’으로 낙인찍히고, 학생 충원이 어려워진다. 이로 인한 등록금 수입 감소는 열악한 재정 상태로 직결된다.

아울러 하위 15% 대학으로 지정되면 정부 재정지원도 받을 수 없기 때문에 향후 학령인구가 급감하는 상황에서 스스로 도태될 가능성이 높다. 이런 기조 아래 최근 경북외국어대가 자진폐교를 결정했고 명신대, 선교청대 등 8개 대학이 퇴출됐다. 경기도 안성에 소재한 수도침례신학교를 제외하면 모두 지방대다.

이 연구원은 “수도권 사립대의 정원을 감축하지 않고 학령인구 감소에 대응할 방법은 없다”며 “대학 특성화나 자구노력을 고려치 않고 현재의 지표만 갖고 평가한다면 지방의 어떤 대학도 수도권의 사립대보다 우위에 설 수 없다”고 지적했다.

정부도 수도권 사립대에 대해 정원감축을 시도한 적이 있다. 2005년 ‘구조개혁 선도대학 지원사업’이 대표적이다. 이는 입학정원을 전년대비 10% 이상 감축한 대학에 재정지원을 하는 사업이지만, 사업 참여 대학은 경희대·동국대·연세대·한양대에 불과했다.

특히 이들 4개 대학은 이 사업에 참여하면서 입학정원을 600여명 줄이는 대신 3~4년간 최대 100억여 원에 이르는 정부 지원금을 받았다. 대교연에 따르면 이는 정원 감축으로 인한 등록금 수입 감소의 약 2배에 달하는 수치다. 입학정원을 감축하는 대신 ‘재정 수익’이란 반사이익을 얻은 것이다.

이 연구원은 “수도권에 1만5000명 이상의 대규모 사립대가 많다”며 “이들이 여전히 수도권과 지역을 가리지 않고 흡입력을 갖는 상황에서 지방대의 퇴출만을 야기하는 구조조정으로는 학령인구 감소에 대응할 수 없다”고 비판했다.

■ 문제는 대학 수가 아니라 학생 수= 학령인구 감소가 대학가를 강타할 것으로 보이는 시기는 7년 뒤인 2020년이다. 지난해 유기홍 의원(민주당)실이 통계청 인구추계와 교육기본통계를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7년 후 수도권의 학령인구는 24만6511명이 된다. 수도권 대학의 입학정원인 20만3556명에 비해 4만2955명이 많은 것이다.

그러나 지방대학은 이 때가 되면 미충원 인원이 9만 명을 넘어설 전망이다. 학령인구가 25만3615명인데 반해 입학정원은 35만2637명이기 때문이다. 무려 9만9022명이 입학자원을 초과한 정원이다. 수도권으로 진학하지 못한 인원이 지방대로 충원된다고 해도 미충원 입학정원은 최소 5만 여명에 달할 전망이다.

▲향후 학령인구 대비 초과 대입정원 예측현황 <출처: 유기홍 국회의원실>

수도권에서도 서울과 경기지역 간 온도차가 다르다. 서울도 2020년부터 입학정원보다 학령인구가 약 1000여명 부족해진다. 이 연구원은 “학벌주의가 팽배한 사회구조상 이 같은 위기에도 지방대만 지속적으로 부실해질 것”이라며 “지역의 고등교육기관을 위해서라도 정부가 지출을 확대해 사립대에 대한 정책 구속력을 확보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대학은 단순한 교육기관에 그치지 않는다. 수도권에 집중된 대학은 인구 불균형과 이로 인해 야기된 많은 사회적 문제의 원인”이라며 “학령인구 감소가 국가적 위기로 닥쳐오고 있는데 수도권 대학의 배만 불리고 있어서야 되겠는가”라고 지적했다.

■ 규정 강화해 입학정원 감축해야= 전문가들은 대학평가의 지표를 △국·사립 비중 조정 △지역 균형 발전 △대규모 대학 규모 조정 △교육여건 개선 등 4가지 원칙에 맞춰 재구성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유기홍 의원실 이해진 비서관은 “4가지 원칙을 관철한 새로운 평가지표를 마련하면 지방대학을 고사위기로 빠뜨릴 지금 대학평가를 개선할 수 있다”고 말했다.

▲유기홍 국회의원이 내놓은 입학정원감축방안

이들이 내놓은 방안은 ‘대학 설립·운영 규정’을 준수하지 않는 대학에 행정 처분의 일환으로 입학정원 감축을 추진하는 것이다. 수익용 기본재산 확보율과 법정부담금 부담률을 기준으로 법정기준 미 준수 정도에 따라 입학정원을 감축하는 방법이다. 이 기준에 따르면 사립대 정원 9만3717명이 감축될 수 있다는 예측도 있다.

이 연구원은 “이 같은 방법을 적용하면 사립대의 사회적 책임도 강화하고 나아가 입학정원 감축효과도 거둘 수 있을 것”이라며 “그 밖에도 평가에서 대학규모에 따른 차등을 둬 평가한다면 지역 균형 발전과 고등교육의 질 개선 등 목표한 원칙을 달성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 교육여건 개선을 통한 입학정원 감축 시뮬레이션 <출처: 유기홍 국회의원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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