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보 한국외대·한신대 강사

새천년에 대한 기대와 희망을 품은 지도 10여년이 흘렀다. 사회는 다시 반복된 일상에 스며들어 매스미디어가 제공하는 이미지에 의식을 맡기고 있다. 지구촌의 변화와 경제적 불안정에 일반시민은 평정심을 찾고자 노심초사한다. 석화를 목표로 근대성의 지표인 합리성을 추구하던 지난세기 전반기와 탈근대와 다양성을 모색했던 후반을 지나온 지금, 개인과 민족, 국가와 지구촌에 걸맞은 문화와 가치관을 찾은 것인지 성찰할 때다.

문화는 20세기 후반과 21세기를 가늠하는 열쇠다. 라틴어에 어원을 둔 문화는 ‘경작하다, 가꾸다’ 등을 의미하는 'colo'에서 나온 말이다. 즉 문화는 물질적인 자연을 가꿔 만든 산물, 혹은 그런 행위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자연이 아닌 ‘인간적 세계’란 점이다.

즉, 문화란 ‘자연물을 인위적으로 가공해 정신적 측면과 물질적 측면을 함께 담은 다원성을 지닌 것’이다. 근대 문화의 특징은 동일성에 근거한 지배와 종속의 관점이다. 반면 탈근대는 차이와 다양성을 ‘지향’하면서 탈중심, 탈주체의 길을 걸었다. 나오 ㅏ다른 문화와 언어, 인종에 대한 이해가 요구되는 것이다.

이 같은 새로운 문화적 개념이 필요한 시점에서 문화기본법 발의는 의미가 있다. 21세를 맞아 사회적으로 세계화의 물겨을 맞이하고 민족문화의 정체성 확립에 어려움을 겪고 있기 때문이다. 세계화와 지역화라는 두 마리의 토끼를 잡아야 하고, 보편과 특수를 조화시켜 창조적인 지평융합을 이뤄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법 제정 이전에 우리 문화의 정체성은 무엇이고 내용은 어떤 것이며, 그것을 담을 틀은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신중하게 살펴야 한다. 지난 20세기 세계는 서구의 근대성과 산업화를 모델로 동일성의 논리만 따라 달리지 않았나. 서구의 것이 아닌 각자의 문화는 ‘열등’한 것이 되고 버려야할 부끄러운 유산이자 역사의 거추장스런 무게로 치부돼 왔다.

문화기본법의 문화는 먼저 무엇을 계승할 것인지, 그 내용과 실체는 무엇인지 깊고 넓은 통시적 시각과 공시적 관점에서 추진돼야 한다.

문화기본법 제정에 부쳐 지난 6,70년대 문화유산의 복원과 보존이 시사하는 바는 크다. 익산 미륵사지 탑의 복원과정, 숭례문의 방화 이후 몇 년에 걸친 복원 등 사례는 많다. 복원의 보존과 원래의 모습, 즐 실체는 제대로 정리돼 있는지 자문했나. 무엇을 근거로 복원·보존했고, 문화유산의 전통과 현대적 해석 중 어느 관점이 더 중요한지 고민은 있었나. 문화를 원형으로 복원할 때 복원의 원형인 콘텐츠와 보존할 기술이 구비돼 있는지도 고려 대상이다. 또 21세기 지구촌 시대를 넘어 우주시대를 지향하는 현 시점에서 문화에 대한 자문은 더욱 중요하다.

지금 국회에서 논의되는 문화기본법도 좁은 관점에서 접근하지 말아야 한다. 인류문화라는 보편성과 각 개별 민족, 그리고 민족 공동체가 갖은 특수성을 조화시키고 민족문화의 정체성을 살려 계승, 보존할 인재의 양성방안도 담아내는 문화의 청사진이 돼야 할 것이다.

다음은 백범 김구 선생이 쓴 ‘나의 선생’의 일부다. “나는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가 되기를 원한다. 가장 부강한 나라가 되기를 원하는 것은 아니다. 내가 남의 침략에 가슴이 아팠으니, 내 나라가 남을 침략하는 것을 원치 아니한다. 우리의 부력(富力)은 우리의 생활을 풍족히 할 만하고,우리의 강력(强力)은 남의 침략을 막을 만하면 족하다.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다. 문화의 힘은 우리 자신을 행복하게 하고, 나아가서 남에게 행복을 주겠기 때문이다”

 

저작권자 © 한국대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