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명 숭실대 철학과 교수

‘나 스스로에게’(ad ipsum)와 ‘너 자신을 알라’(gnōthi seauton)라는 말이 지닌 무게는 동전의 양면과도 같다. 나를 통해 너를, 또한 너를 통해 나를 온전히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철학이라는 용어가 지칭하듯, 고대 그리스에서처럼 ‘지혜에 대한 사랑’은 우리에게 비교적 친근한 화두이다. 우리는 흔히 지혜와 지식을 구분하여, 사전적으로 말해 전자는 사물의 이치를 빨리 깨닫고 사물을 정확하게 파악하는 정신적 능력 또는 마음의 작용이요, 후자는 어떤 대상에 대하여 배우거나 실천을 통하여 알게 된 명확한 인식이나 이해 또는 알고 있는 내용이나 사물을 가리킨다. 지식과 정보의 시대에, 이 양자는 엄격히 구분하여 얻게 되는 실익보다는 상보적인 관계에 있어야 상생할 수 있을 것이다. 말하자면 명확한 인식을 통해 사물의 바른 이치를 깨닫게 되고, 또한 사물의 바른 이치를 터득함으로써 명확한 인식이 또한 가능하기 때문이다.

흔히 우리의 습관이 그러하듯, 필자가 지닌 습관 가운데도, 어딜 가다가 갑자기 떠오르는 생각을 메모한다거나 책을 포함하여 신문이나 잡지 등 여러 읽을거리를 읽다가 내 생각에 자극이 되거나 의미가 있는 글귀들을 두서없이 적는 습관이 있는데, 이는 지금도 여전히 진행형이다. 아마도 필자의 기억엔 ‘나 스스로에게’도 고등학생 시절에 읽어서 내 머리 속에 늘 남아 있던 몽테뉴의 <수상록>(1580) 속의 글귀였는데, 몽테뉴 이후 500여년 가까이 지난 최근에 새삼스럽게도 새로운 의미를 지니고서 자나 깨나 다시 내 머리 속에 살아 있다. 많은 시차를 두고서 벌어진 일이지만 이제 같은 시간의 지평에서 그 의미를 되새겨 본다. 인간의 삶이란 나 스스로의 삶으로부터 시작하되, 가족이나 사회를 거쳐 다시 나 스스로에로 회귀하는 까닭이다.

오랜 시간에 걸쳐 인간에 대한 지식이 많이 축적되어 왔음에도 불구하고, 누구나 동의하듯, 인간이야 말로 가장 불확실한 존재임이 분명하다. 나 스스로 나를 얼마만큼 알고 있으며, 우리는 우리 자신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있는가를 되물어 보면 그 사실이 더욱 뚜렷해진다. 사실 아는 것만큼 모른다고 고백해야 할 것이다. 스위스 제네바 소재 유럽입자물리연구소(CERN)에서 밝힌 바에 의하면, 현존의 과학기술로 관측되지 않아 붙인 이름이 이른바 암흑물질이다. 현재 관측 가능한 우주물질이 약 4%라고 한다. 암흑물질이 23%를 차지하고, 그밖에 73%가 암흑에너지이다. 합해서 96%가 암흑 속에 있으니, 우리는 거의 동굴과 같은 암흑 속에 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우리가 지상에 머무르며 차지하는 시공간은 그야말로 한 순간에도 못 미친다. 때로는 과학적이고 분석적인 실험을 거쳐 우리 자신이 지닌 불안이나 공포, 우울함 등 마음상태의 출처를 밝히기도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부분적인 앎에 그치고 만다. 이는 물질로 환원될 수 없는 정신적 존재이기 때문이다.

‘나 스스로에게’로 침잠하여 그 의미를 조용히 읊조려 본다. 종교다원주의 시대에, 어떤 특정 종교의 교리나 종파를 넘어 인간은 근원적으로 종교적인 존재이다. 종교가 인류에게 가르친 여러 교훈들 가운데 으뜸인 것은 무엇보다도 겸손이라 하겠다. 겸손은 ‘남을 존중하고 자기를 내세우지 않는 자세나 태도’이다. 요즈음 세태를 보면 갑과 을의 관계니 뭐니 하면서, 누구나 자신을 지나치게 내세우거나 허세를 부리고 과장하려는 경향이 강하다. 그리되면 진실이 실종되고 거짓이 난무하게 된다. 이를테면 속마음은 사라지고 겉모습만 남게 된다는 말이다. 철학적으로 말하면, 본래적인 것은 사라지고 비본래적인 것이 마치 본래적인 것인 양, 외양을 꾸미고 있다. 실로 정체성의 상실이요, 실존의 위기라 아니 할 수 없다.

‘나 스스로에게’와 ‘너 자신을 알라’는 말은 진정한 자기이해를 가리키는 아주 진솔한 이야기에 다름 아니다. 오늘날 우리는 많은 위기에 직면하며 살고 있는 바, 가장 중요한 위기는 자기이해의 상실에서 비롯된다. 시대의 유행이 되고 있는 자기계발이라든가 치유의 문제는 자기이해를 위한 노력에서 출발해야 하거니와, 또한 자기이해 속에서 완성된다고 하겠다. 따라서 우리는 자기이해를 위한 노력을 게을리 해서는 안 될 것이다.

<한국대학신문> 

저작권자 © 한국대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