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은 관행 드러나자 “임금 인상분 보전, 대납은 아냐”

교육부 소극적·뒷북 대응 사태 키워 ··· 환수엔 ‘난색’
등록금 인하 주장 대학교육硏조차 “단체협약 지켜야”
 

[한국대학신문 이용재·이현진·이재·손현경 기자] 전국 44개 사립대가 사립학교 교직원 연금(이하 사학연금) 가운데 개인이 부담해야 할 2080여억 원을 교비회계에서 납부해온 것으로 드러나 파장이 일고 있다. 대학가는 연금 대납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교육부가 오랜 관행인 이 문제를 공론화한 배경에 의구심을 드러내고 있다.

일부 전문가들은 교육부가 연금 대납을 지적한 배경에는 사회적으로 논란이 됐던 반값등록금의 책임을 대학에 전가하고, 사립대 구조조정을 앞두고 대학 길들이기에 나선 것이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한다.

■ 연세대 524억…임금인상 대체한 ‘편법’= 연세대는 개인부담금 대납액이 524여억 원에 달해 공개된 대학 중 가장 많은 개인부담금을 대납한 대학이 됐다. 전체 2080여억 원의 약 25%에 달하는 액수다.

연세대가 사학연금 개인부담금을 대납한 것은 지난 2000년 3월부터다. 당시 노조와의 단체협상을 통해 사학연금 개인부담금에 해당하는 금액을 ‘미래설계지원금’에 포함해 지급하기 시작했다. 특히 연세대는 부설병원인 세브란스 병원 직원 5000여명의 연금도 보조했다.

이처럼 대학들이 사학연금 개인부담금을 떠안기 시작한 것은 2000년 이후부터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대학재정도 어려워지며 교직원 임금이 동결되기 시작한 시점과 일치한다. 각 대학의 노조들은 이 시기부터 사회적 여론을 의식해 기본급 인상을 포기하고 단체협상을 통해 각종 수당을 늘리는 방식으로 물가인상률에 해당하는 임금인상분을 충당하기 시작했다.

이 같은 흐름은 외환위기 이후 사립대의 등록금이 가파르게 오르면서 가속화됐다. 익명을 요구한 대학 관계자는 “2000년 이후 다양한 수당이 교직원들에게 지급됐고, 사학연금 개인부담금을 떠안는 대학도 많아졌다. 이후 고액 등록금에 대한 사회적 여론이 악화되며 교직원들의 임금인상이 억제됐지만 임금인상분을 충당하기 위한 개인부담금 보전은 유지돼 왔다”고 말했다.

교직원들은 개인부담금을 대학본부가 내는 것이 절차상 하자가 있다는 것을 인정하면서도 내심 억울하다는 분위기다. 일반기업이 직원복지를 위해 각종 보험이나 자기계발비를 지원해 주는 것과 다를 게 없다는 주장이다.

조성환 동국대 노조위원장은 “대납을 했다는 표현은 억울하다. 물가인상률에 해당하는 임금인상분 보전일 뿐”이라고 항변했다.

■ 교육부, 대학 자발적 반납에 기대= 교육부는 환수방침을 밝혔지만 법적 근거가 부족하다는 당초 입장은 변함이 없다. 현행 근로기준법(제94조 제1항 단서)에 따르면 ‘취업규칙을 근로자에게 불리하게 변경하는 경우 근로자 과반수의 동의’를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교육부는 환수를 강제하지 못하고 대학의 자발적 움직임에 기대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나 10일 현재 금액 환수에 자발적인 움직임에 나선 대학은 단국대와 동국대 두 곳에 불과하다. 그마저도 환수방법을 구체적으로 내놓지 못했다.

단국대 한 관계자는 “사학연금 개인부담금 지원액 전부를 환수하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방학 기간인 만큼 구성원의 의견 취합이 어려워 구체적인 방법은 추후 논의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 두 대학을 제외한 대부분의 대학들은 여전히 미온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남두우 인하대 기획처장은 “환수를 위한 구체적인 움직임을 시작할 단계는 아니다. 회의를 진행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교육부도 뾰족한 대안은 없다. 정영준 교육부 기획감사담당관은 “환수의 경우 현재 법적으로 회수가 어려워 대학이 결정해야 하는 사안”이라며 “하지만 대학 자체 환수·반납과 기부 등 여러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일각에서는 단체협상을 통해 결정된 사안이므로 법인에 책임이 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대학교육연구소 임은희 연구원은 “단체협약을 체결하는 당사자는 법인이사회와 노조다. 법인이사회가 개인부담금을 떠안기로 합의했으므로 합의사항은 지켜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 반값등록금 책임 전가위해 공개 했나= 대학들은 잘못을 인정하면서도 시기를 두고 반값등록금의 책임을 대학으로 전가시키기 위한 것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이 문제가 대학가의 오랜 관행이었으며 교육부가 그것을 몰랐을 리 없다는 것이 대학가의 의견이다. 교육부는 이미 지난 2010년 한양여대 등을 적발해 시정조치를 내리는 등 연금 대납을 알고 있었으면서 지금 시점에서 전체 대학을 대상으로 감사를 진행하고 발표한 것은 의문이라는 것이다.

인하대 한 관계자는 “‘그동안 대학들이 등록금 많이 받으며 이를 사학연금으로 대납하고 있다’라는 여론몰이를 하려는 것 아니냐”며 “학생과 학부모들이 등록금 문제를 국가 책임이 아닌 대학내부 책임으로 보이게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교육부의 사립대학 ‘길들이기’라는 관측도 있다. 학령인구 감소위기가 코앞에 다가온 가운데 주요 사립대들이 교육부의 정책을 따르지 않아 ‘길들이기’가 필요했다는 해석이다. 국회 한 관계자는 “지난 정부에서 교육부가 많은 사립대학 정책을 펼쳤지만 주요 사립대가 이를 따르지 않았다. 학령인구 감소가 코앞에 닥쳐온 지금 주요 사립대를 ‘관리’하지 않고는 대학정책을 수립할 수 없다는 위기감이 작용했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이런 의혹에 대해 정영준 감사관은 “이번 감사는 과거의 관행을 개선하는 차원에서 실시된 것이지 특정한 의도는 없다”고 선을 그었다. 또 다른 교육부 관계자도 “그 이전에 적발된 연금 대납에 대해선 해당 대학만의 문제로 파악했지 대학가에 전반적으로 퍼진 문제란 점은 작년에야 알게 됐다”며 “그래서 지난해 11월 감사에 착수해 올해 2월 종료했다”고 말했다. 어떤 의도를 두고 공개시기를 조율한 사실은 없다는 해명이다.

■ 교육부 무른 대응이 사태 키워= 사학연금 사태와 관련해 교육부의 뒷북 대응이 사태를 더 키웠다는 지적도 있다. 교육부는 3일 감사 결과를 발표하며 “법률자문을 받은 결과 강제 환수가 불가능하다”고 밝혔다.

그러나 8일 박 대통령이 수석비서관회의에서 “높은 대학 등록금 때문에 학생과 학부모들이 고통 받고 있는데, (대학들이) 그 등록금으로 교직원 개인이 부담해야 할 돈을 지급했다는 것은 변명의 여지없이 정말 잘못된 일”이라고 질책하자 교육부는 기존 입장을 바꿔 “대납 금액 보전 방안을 대학들이 자체적으로 마련하도록 요구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앞서 지난 5일 교육부는 적발된 대학에 관계자 징계, 기관경고 등을 담은 감사처분요구서를 보내면서 환수 조치에 대한 주문은 담지 않았다.

당초 교육부가 연금 대납 대학의 명단을 공개하지 않은 것도 문제가 됐다. 3일 교육부는 교직원들이 부담해야 할 사학연금의 개인부담금 대납 대학 적발 사실을 공개하면서 정확한 명단은 공개하지 않았었다.

하지만 정치권과 여론의 질타와 함께 명단 공개 요구가 커지자 교육부는 불과 이틀 뒤인 5일, 2010년과 2011년 적발된 5개 대학을 포함한 44개 대학의 명단을 발표했다. 이에 대해 교육부 관계자는 “명예훼손 등 법적인 문제로 공개하지 않았는데 학생과 학부모의 알권리를 충족해야 한다는 공공성 차원에서 공개하게 됐다”고 해명했다.

솜방망이 처벌로 사태를 키운 측면도 있다. 교육부는 이미 3년 전 회계감사를 통해 사학연금 대납 사례를 적발했다. 하지만 당시 위법하게 쓰인 돈의 환수 노력 없이 대학에 재발방지 등 시정 명령만 내린 것으로 전해졌다. 이중 일부 대학은 지난해까지 이 같은 관행을 유지하다 이번에 다시 적발됐다.

※ 사립학교교직원 연금법은 …  문제가 된 사립학교교직원 연급법(사학연금법)은 사립학교의 교수와 직원들의 경제적 생활안정과 복리향상을 위해 제정된 법이다. 사립학교에 근무하는 교직원은 의무적으로 가입되며 월급의 7%를 자동으로 적립한다. 연금은 65세부터 지급된다.

7%의 적립액 중 개인 부담금은 50%다. 나머지 50%는 기관에서 보조한다. 교수의 경우는 법인이 30%를 부담하고 국가가 20%를 부담한다. 직원의 경우는 개인부담금을 제외한 모든 금액을 법인에서 부담하게 돼 있다.

이번 교육부 감사로 적발된 44개 대학 가운데 26개 사립대는 이 중 개인이 부담해야할 50%의 비용을 노조와의 단체협상을 통해 교비회계로 부담하면서 문제가 됐다. 원칙적으로 사학연금은 법인과 개인이 각각 부담해야 하고, 학교기관의 교비회계에서 지급되는 경우는 모두 불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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