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대학신문 이재 기자] “주간교수가 흔한 논문표절시비라도 붙어 해임됐으면 좋겠다.”

대학언론의 실상을 묻자 한 대학의 편집국장은 이렇게 대답했다.  도대체 왜 이런 말을 하는 것일까.

이 학보사는 오랫동안 주간교수의 편집권 횡포에 시달려왔다. 조판과정에서 주간교수가 기사의 논조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로 인쇄기를 멈추는 일이 예사로 일어났다. 학생기자에게 별다른 언질 없이 기사가 기존 방향과 정반대로 고쳐진 경우도 비일비재했다. 자신의 말을 이해하지 못한다며 학생기자에게 ‘멍청하다’는 폭언을 퍼붓기도 했다. 정당한 논리나 사유없이 주간교수에게 빨간펜으로 난도질 당하는 기사를 보며 눈물 흘리는 일은 이젠 웬만한 무용담 축에도 못 낀단다.

학생기자들은 인쇄된 신문이 부끄러워 몰래 수거한 적도 여러 차례. 한 학생기자는 “학생들 보라고 만든 신문을 제 손으로 주워오는 심정을 아느냐”고 되물었다.

항의할 순 없었을까. 내부규정상 학보의 편집, 취재, 발행의 전권을 쥐고 있는 주간교수에게 맞설 사람은 사실상 없다는 게 학생기자들의 말이다. 대학본부에 비판적인 보도기사를 받아본 주간교수들이 그 자리에서 ‘조판 중단 지시’를 내리는 일도 공공연히 일어나고 있다. 조판 중단에 항의하던 편집국장이 해임된 적도 있다며 학생기자들은 억울해 했다.

대학 안팎에서 ‘학보가 대학 홍보지’로 전락했다는 비판이 수면 위로 올라온 지도 10여년이 흘렀다. 척박해진 대학언론을 지키는 학생기자들은 지칠대로 지쳐 있다. 최근 배재정 민주당 의원이 발표한 ‘대학 학내 언론의 자유’ 설문조사는 이같은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설문조사에 따르면 수도권 38개 대학의 학생기자 131명 중 절반 가량(46%)이 편집권 탄압을 경험했다고 한다. 10명 중 3명은 자기검열을 한다고 응답했다. 기사를 객관적으로 보도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주간교수의 입맛에 맞추기 위해 스스로 기사를 뜯어고치고 있다. 이것이 청년 저널리즘의 초석이 돼야할 학보의 현실이다.

프로기자들의 굽히지 않는 패기와 열정을 동경하던 학생기자들. 애석하게도 그들은 ‘기자라면 신물이 난다’고 말한다. 밤샘 마감, 지루한 조판과정, 수업 결손보다 그들을 지치게 하는 건 주간교수다. 학생기자들에게 비판적 지성의 도약판을 만들어주라는 임무를 맡은 주간교수. 그러나 지금 대학언론의 현실에 비춰보면 주간교수는 빨간펜을 든 검열관에 불과한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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