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위석(경제평론가, 전 중앙일보 논설고문)

박근혜 대통령 정치의 환경은 평화롭지 못한 정도가 아니다. 사방에서 새로운 전선(戰線)이 생겨나고, 어떤 것은 격화하고 있다. 박대통령 자신이 들어서 스스로 격화시킨 것도 있다. 그러나 북한 문제, 일본 우경화, 세계 경제의 비관적 불확실성, 중미일 사이의 불편 심화 등은 박 대통령의 탓이 아니다.

특히 북한 문제는 순전히 북한이 만들고 있다. 남한에서 어떤 대통령이 나와도 해결 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박 대통령이 유일하게 잘 하고 있는 것이 대북 분야다. 나중에 만약 그가 실패한 대통령으로서 평가받게 된다면 그 실패는 경제 분야이고 실패의 주범은 경제민주화였다고 밝혀질 것이다.

그가 대통령이 되는 데 가장 크게 도움을 주었던 그의 아버지 고 박정희 대통령의 성공을 그는 바르게 분석해 보아야 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박정희는 북한과 그 동조 세력의 해작질에서 남한의 시장 경제적 자유와 평화를 지켜냈다. 경제 발전에 이 보다 더 긴요한 환경은 없다. 이것이 박정희의 첫째 가는 공로다.

둘째는 시장 경제의 성공자들에게 자금을 꾸어 주도록 제도를 만든 것이다. 당시에는 경제개발에 필요한 국내 저축이 전무하다시피 했다. 그래서 외국정부나 금융기관에 기대거나 아니면 한국은행과 시중은행이 발권력과 신용창조를 통해 조달하는 수밖에 없었다. 이런 돈을 아무에게나 꾸어줄 수는 없었다. 외화를 벌어 오는 수출산업을 위시하여 파산으로 돈을 떼먹힐 염려가 적은 우등생 거점(據點) 기업에 대주었다. 이런 우등생들이 나중에 재벌그룹이 됐다. 삼성, 현대, LG, 대우, 국제, 효성, SK 등이 그들이다.

박정희의 경제적 성공이란 것은 이들 거점 대기업들의 성공을 말하는 것이다. 사전적인 계산의 결과라기보다 사후적으로 보았을 때 전형적인 불균형 성장 이론의 지도(地圖)가 그려졌다. 거점에서 주변으로 확산하는 트리클다운(trickle down) 모델 말이다.

반면에 좌파 평등주의자들은 이 성공을 소득 불균등화, 재벌 독식이라고 박정희에 대한 비난의 초점으로 삼는다. 하지만 최근인 2008년의 글로벌 금융 경제 위기 때에도 한국 경제가 선전하고 버틸 수 있었던 것은 IT, 자동차, 화학, 정유 등 대기업그룹 덕분이었다.

이 가운데는 글로벌 경쟁력의 부족, 경영 실패, 거기에 집권세력에 밉보인 것이 결합되어 분해된 그룹도 있다. 국제, 대우 등이 그 예다. 전두환 정권 이후 한국 정치는 재벌 패는 것으로 좌파와 청렴파의 공격을 피하고, 자기도 좌파인 척 분장하고, 심지어 그것으로 한 쪽에서는 정치 자금을 가렴(苛斂)하는 방편으로 삼기도 해 왔다.

경제민주주의는 다른 말로 경제평등화다. 경제민주주의는 구체적으로 빈부의 평등, 노사의 평등, 대기업과 소기업의 평등, 이 세 가지다. 경제는 효율을 축으로 삼는다. 경제적 평등은 덜 효율적인 부문이 더 효율적인 수준으로 ‘나아감’으로서 달성 되어 간다. 이런 나아감은 경제 성장을 동반한다. 정치가 정의를 축으로 삼는 것과 매우 대조적이다. 정치적 평등화는 전진하든 퇴보하든 평등만 이루면 그것이 정의다. 작금의 경제민주화는 정치의 정의 놀음이지 경제의 효율화 운동이 아니다.

지금 한국 경제는 내외적으로 모두 살얼음판 위에 서 있는 형국이다. 설상가상 격으로 경제민주화라는 슬로건 밑에서 재벌 패기가 검찰, 국세청, 공정위원회, 금융감독원, 노동조합, 좌파 언론에 의해 들불처럼 번지고 있다. 재벌 총수를 비롯한 기업 간부들이 당국의 타당성이 불분명한 조사, 판결에 시달리고 있다. 한국경제의 주역 선수는 지금도 대기업이다. 그들을 모욕하고 패는 것을 능사로 하면 그들에게서 좋은 경기를 기대하기 어렵다.

최근 검찰의 집중 수사를 받은 효성그룹 한 간부의 말은 시사하는 바 크다. “여러번의 경제위기상황에서 다른 기업처럼 공적자금에 의존하지 않고 우직하게 버텨온 기업을 탈세기업으로 낙인찍는 분위기에서 의욕적인 투자가 이루어지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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