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기환(본지 논설위원/한국외국어대 프랑스어과 교수)

대학의 원형은 기원전 390년경 플라톤이 세운 아카데미아(Academia)로 일컬어지는데, 거기서는 선의 이데아를 탐구하고 이성적인 정신을 도야하는 연구와 교육이 이루어졌다. 오늘날과 같은 학위제도를 갖춘 최초의 대학으로서 12세기에 개교한 이탈리아 볼로냐 대학, 프랑스 파리 대학, 영국 옥스퍼드 대학 등도 모두 철학, 수사학, 논리학, 기하학 등 기초학문의 연마에 몰두했다. 요컨대 어원적으로 보편성(universality)을 가리키는 대학(universitas)은 사회에서 필요로 하는 실용적 지식에 앞서 무엇보다 보편적 진리를 공부하는 고등교육 기관이었던 것이다.

오늘날 무한생존경쟁이 펼쳐지는 세계화의 물결 속에서 대학 또한 실용지식의 생산과 전수를 외면할 수 없다. 하지만 최근 삼성그룹이 개편안을 발표했다가 시행을 유보한 채용시험제도는 대학의 존재이유가 무엇인지 다시 한 번 자문하게 한다. 현재 매년 20만 명이 응시하는 삼성직무적성검사(SSAT)는 연간 200억 원 이상의 채용 비용을 발생시키는 동시에 사회적으로 대규모 사교육 시장까지 형성시키므로, 개편의 필요성에는 충분히 공감할 수 있다. 그렇다면 문제는 무엇인가?

개편안의 핵심은 <총장추천제도>인데, 삼성은 전국의 대학 총‧학장이 추천한 응시자에 대해서는 서류전형을 면제해주겠다고 하면서 할당 인원을 대학에 전달했다. 이것이 여러 문제를 낳으리라는 것은 특별한 성찰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예컨대 그것은 할당인원으로 대학의 서열화를 명백하게 가시화할 것인바, 벌써부터 이를 홍보수단으로 삼는 대학도 없지 않다. 또는 이공계 중심의 대학 서열화, 특히 숫자에 기반을 둔 대학 서열화는 그렇잖아도 입지가 좁은 인문학을 결정적으로 질식사시킬 위험이 있다. 문제의 예는 끝없이 나열할 수 있지만, 가장 심각한 문제는 뭐니 뭐니 해도 문제의 심각성을 모르거나 모르는 체하는 삼성의 태도일 것이다.

삼성이 애플, 마이크로소프트, 인텔 등 경쟁사와 다른 점은 삼성의 몰락이 곧 한국의 몰락을 가리킬 정도로 엄청난 영향력을 지닌 국민기업이 되었다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삼성의 책임감은 단순한 사기업의 그것과는 차원이 달라야 한다. 차제의 개편안은 결국 대학이 기업에, 교육이 경제에 거의 직접적으로 종속되는 불행한 사태를 야기할 수도 있었다. 왜냐하면 총장으로서는 더 많은 인원을 할당받기 위해 기업의 요구를 반영한 학사운영을 하지 않을 도리가 없기 때문이다. 기실 삼성이 대학과의 아무런 협의 없이 고압적인 개편안을 내놓은 것도 놀랍지만, 개편안이 초래할 사회적 부작용을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고 고백하는 것은 더욱 놀랍다. 어쩌면 삼성은 오만함이 내면화되어 스스로 그것을 의식하지 못하는지도 모른다.

스웨덴 최고의 대학인 웁살라 대학의 현판에는 이런 글이 쓰여 있다. <자유롭게 사고하는 것은 위대한 일이다. 그러나 더욱 위대한 일은 올바르게 사고하는 것이다.> 삼성이 대학을 기업이익의 확대재생산을 위한 사원 양성소쯤으로 여긴다면, 삼성은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기업이 될지언정 세계에서 가장 사랑받는 기업이 되기는 힘들 것이다. 빌 게이츠는 자신을 만든 것이 미국도, 하버드도, 심지어 자신의 어머니도 아니며, 그것은 바로 고향마을의 작은 도서관이었다고 말한 바 있다. 지금 삼성에게 필요한 것은 바로 그 작은 도서관이 아닐까.

<한국대학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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