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학생들 속옷만 입고 활보하다 '딱걸려'

2004. 2. 18. 오전 11시. 건대 수의과대학 옆길로 들어가 일감호 주위를 따라 걸어가면 5층짜리 벽돌건물. 여기는 금녀의 지역이라는 건국대 남학생 생활관(기숙사) ‘신관(信官)’이다. 107호를 구경하기로 했다. 이런, 얼핏 엉망이 된 방을 본 것 같다. 안에서 재빨리 문을 닫는다. 들여다 본 사진기자의 보고에 의하면 여기저기 속옷만 입고 널부러져 있는 남아들이 보였다는데. *^^* ▶기숙사 풍경 하나 - “지킬 건 지켜야” 건국대 생활관은 최근 대학가에 선보이기 시작한 민자유치 기숙사들처럼 럭셔리하지는 않지만 이곳저곳에서 사람 사는 냄새가 물씬이다. 4인1실이라 다소 답답한 감도 있기는 하지만 예비역 복학생 1명에 재학생들이 함께 복작이며 살아간다. 관비는 하루 세끼 식비 포함, 학기당 66만원. 한 학기가 4개월 남짓이니까 한달에 17만원이 채 안되는 돈으로 식사는 물론, 개인별 초고속 인터넷서비스, 체력단련실 등을 이용할 수 있다. 올해는 기숙사 내 모바일 서비스도 추진할 예정이다. 그러나 단체생활인 만큼 ‘지킬 건 지켜야’ 한다. 벌점 5점 이상이면 징계, 징계 이후 벌점이 5점 더 추가되면 아웃이다. 두말없이 짐 싸야한다. 절도·방화·폭력행위를 하거나 의도적 관내 기물·시설물을 손상·파괴하는 경우. 그리고 비흡연구역에서 흡연하다가 적발되면 퇴관이다. 점호 3회 이상 연속 불참, 무단외박, 관내 음주·도박행위는 벌점 3점. 한학기에 무단외박 3번이면 역시 아웃이다. 그밖에 월담, 비관생을 출입시키거나 식사를 제공하다 들키면 벌점 2점. 청소상태 불량하거나 ‘잔반없는 날’에 식사를 남기다 적발되면 벌점 1점씩이다. ▶기숙사 풍경 둘 - “내 집은 신관 107호” 드디어 건국대 생활관 107호가 공개됐다. 1시간 전 쯤 얼핏 문틈 사이로 보였던 어수선한 모습은 온데간데 없다. 방주인들은 머리카락도 촉촉하고 얼굴도 뽀사시하니 금방 씻고 나온 모양이다. 선제(컴공 2), 재홍(부동산2), 진석(토목2)이는 방학 동안에만 한시적으로 한방을 쓰는 룸메이트들. 경상도와 전라도의 만남이다. 방문을 열고 들어서자 2층 침대가 좌우로 놓여있다. 침대는 신장 185cm의 재홍이가 누우면 딱 맞는 정도의 크기다. 침대 측면에는 대형 영화포스터를 걸어뒀는데, 아마도 칸막이 대용인 듯 했다. 하지만 그닥 멋스럽지는 않다. 침대 앞뒤로는 책상이 하나씩 놓였다. 책상에는 4칸짜리 작은 책장이 딸려 있고 컴퓨터도 하나씩 놓여있다. 정면으로는 큰 창이다. 창 바로 앞에는 천장에 빨래건조대가, 건조대에는 추리닝이며 양말이 널려 있다. 오, 이런! 맨 앞줄에는 남색 트렁크 팬티닷. ▶기숙사 풍경 셋 - “너희가 기숙사 생활을 아느냐”
107호 선제, 재홍, 진석이, 기숙사 자치회장 영래(부동산3), 총무부장 형식(국제무역4)이 모여 앉았다. 기숙사에는 이런저런 규제가 있기도 하지만 또래들끼리 모여 산다는 것 자체가 또 하나의 재미다. ‘남자 다섯’에게 듣는 기숙사 생활 백태. 즐감하시라! 0시30분 전쟁은 시작된다 - 기숙사 통금시간은 0시30분. 이 시간이 되면 정문에 셔터를 내리고 들어오지도 나가지도 못하는 상태가 된다. 이 때부터 기숙사 곳곳에서는 ‘생존’을 위한 서바이벌 게임이 펼쳐진다.^^ 무단외박은 벌점 3점. 통금시간을 놓쳐 오도가도 못하게 된 학생들은 용감해진다. 지난해 한 녀석은 지하 샤워실 환기구 뚫고 잠입을 감행하다가 걸렸다. 또 몇 년 전 ‘신출귀몰’ 신창원이 주목받던 때에는 건물 외벽 배관을 타고 들어오는 경우도 더러 있었다. 한창 먹성이 좋을 때. 밤중에 배가 고플 때는 달리 방법이 없다. 일단 배달을 시키고, 음식을 받을 경로를 고민한다. 지하식당 창문 틈새가 적당하다. 하지만 틈새가 좁기 때문에 큰 그릇은 세워 받아야 한다. 보쌈 쟁반은 1자로 세워야 들어온다. 1층 현관 셔터 아래도 애용된다. 셔터가 바닥에서부터 40cm정도 떠 있는데 그 틈으로 배달된 야식은 더 맛있단다. 1주일에 1번 점호도 한다 - 월요일 밤 11시. 각 방마다 문을 열고 4명의 방 주인들이 좌우로 두명씩 마주보고 도열한다. 단체생활의 꽃, 점호다. 자치위원 9명이 각 층에 2명씩 점호를 실시하는데 인원, 청소상태 등을 점검하고 각종 공지사항을 전달한다. 생일자에게는 선물도 전달하는 시간이다. ‘신관의 밤’ 축제를 즐겨라 - 1년에 한번씩 기숙사생들을 위한 축제가 마련된다. 여자친구에게 내 방을 보여줄 수 있는 기회도 이날이 유일하다. 오픈하우스 행사는 물론 각종 체육대회, 공연이 펼쳐진다. 올해는 지하 식당을 무도회장으로 꾸밀 예정이다. 방대방 스타크래프트 대국을 펼쳐라 - 방마다, 개인마다 초고속 인터넷망이 구비돼 있다. 룸메이트들끼리의 온라인게임전은 물론, 옆방과의 대결도 가능하다. 개중에는 밤새 게임만하다가 정작 낮에는 수업에 못들어가는 경우도 간혹 생긴다. 기숙사 일요일은 개점휴업 - 일요일에는 주중에 밀린 청소나 빨래를 주로 하겠지? 천만의 말씀이다. 기숙사의 일요일은 개점휴업상태다. 일어나도 방에서 나오지 않는다니, 한 주간의 피로가 얼마나 쌓였으면. 네 것은 내 것, 내 것도 네 것 - 빨래감이 생길 때마다, 혹은 입을 옷이 없을 때마다 스스로 세탁을 해야 하는 신세다. 혹시 빨래가 밀릴 것에 대비해 속옷을 넉넉히 준비하는 것이야 말로 기숙사생들의 생활의 지혜. 하지만 이상도하다. 팬티 20벌, 양말 30켤레를 준비했는데, 한 학기가 지나고 남은 건 양말 10켤레 뿐이다. 캠퍼스에는 C.C, 기숙사에는 D.C. - 기숙사 커플(Dormitory Couple)도 있다. 커플, 그들이야 동아리, 학과는 물론 직장 내에서도 끈질긴 생명력을 자랑하고 있으니 기숙사라고 예외일 수는 없다. 하지만 매일 아침 일찍 식당에서 세수도 못한, 혹은 노메이크업의 맨 얼굴을 마주쳐야 하는 남녀기숙사생들끼리 사랑이 싹트기가 쉽지는 않은 상황. 개중에는 ‘아예 아는 사람이 없어야 막 살기도 편하다’는 생각에 방팅도, 식당에서의 눈인사도 피하는 여학생들이 있을 정도다. 하지만 그래도 커플은 생긴다. 재홍이도 요즘 작업 중이다. 기숙사생은 공부벌레 - 기숙사생들은 독하게 공무만 한다는 말이 있단다. 하지만 그건 좀 아니다. ‘기숙사생들은 공부도 잘한다’라고 해야 맞는 얘기. 때문에 이들은 조별 발표로 학점을 주는 수업에서 인기가 높다. 평소 별 관심을 보이지 않던 여자 후배도 발표 수업에서 ‘저 선배는 기숙사에서 산다’는 얘기만 듣고 나면 눈빛부터 틀려진다. ▶기숙사 풍경 넷 - “신관은 우리가 지킨다”
선제, 재홍, 진석이가 이날 늦잠에 취한 이유는 어제 밤 생활관 입관생들을 최종 선발하고 기쁨에 들떠 늦도록 음주를 즐겼기 때문이다. 잠깐! 얘들이 입관생을 뽑았다고? 사실 ‘107호 늦잠 남아’들의 정체는 건국대 생활관 자치위원회(회장 노영래·부동산3) 임원들. 일종의 ‘기숙사 학생회’로 관생들의 직접선거를 통해 뽑혔다. 이들은 기숙사 관비 관리에서부터 관생, 시설관리 등 기숙사 운영 전반을 책임진다는 점에서 타 대학 사생회와는 구별된다. 이름 그대로 ‘기숙사 자치’를 담당한다. 타 대학이 학점 및 본가 위치 등 규격화된 기준으로 일률적으로 사생을 선발하는 것과는 달리 건국대 기숙사는 서류전형은 물론, 자치위 생활부장의 면접을 통해 학생을 선발한다. 함께 먹고 잘 동료를 뽑아야 하는 만큼 사람 됨됨이를 아는 게 중요하다는 것. 34년째 전통으로 이어져오고 있다. 면접은 인품, 성실성 등을 고려해 점수를 매기는데, 가정형편이 가장 결정적인 요인이다. 가정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에게는 가산점을 부여한다. 성적도 중요하다. 관생들의 성적커트라인은 4.2점 정도. 학사경고자는 퇴관이다. 입관 경쟁도 치열하다. 학교 주변에 대학생을 대상으로 한 오피스텔이 늘면서 지난해에는 지원율이 좀 줄었지만 올해는 얼어붙은 경기를 반영하듯 최근 5년 사이에 가장 많은 학생들이 지원했다. 재학생의 입관경쟁율이 3.5대1을 기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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