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병호 (본지 논설위원/ 서울시립대 교수)

정부의 대학구조개혁안에 대해 대학사회의 우려가 커지고 있다. 우선 지방대 쪽에서는 전국 대학에 같은 기준을 적용하여 평가하면 수도권 대에 비해 조건이 열악한 지방대가 주로 구조조정 대상이 될 것으로 걱정하고 있다. 특히 지방 국공립대 쪽에서는 과거 경험을 토대로 교육부가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국공립대를 희생양으로 삼는 것은 아닌지 우려하고 있다. 또 사립대는 재정여건이 다름을 근거로 사립대와 국공립대를 구분하여 일정 비율로 구조조정을 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다른 한편 정부가 개입하는 것보다 구조조정을 아예 시장논리에 맡기는 편이 더 낫다는 주장도 있다. 학령인구가 감소하면 경쟁력이 약한 대학부터 학생충원을 못 해 자연히 고사하게 될 텐데, 정부가 미리 나서서 이런 대학들의 생명 연장을 위해 애쓸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정부의 대학구조개혁안을 둘러싼 논란을 보면서 본말이 전도된 것 같아 씁쓸하다. 교육부는 과거부터 줄곧 대학구조개혁의 궁극적 목적은 ‘교육의 질 제고를 통한 대학경쟁력 강화’라고 설명해 왔다. 그러나 이번의 구조개혁안은 학령인구 급감에서 비롯된 대증요법에 불과하다. 진정한 대학구조개혁을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먼저 한국 고등교육의 구조적 문제에 대한 성찰이 이루어져야 한다. 학령인구 급감도 사실 구조적인 문제에 기인하는 바가 크기 때문이다.

첫째, 고등교육 예산이 OECD 평균의 70%에도 미치지 못한다. 고등교육의 공공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예산을 최소한 OECD 평균 정도로는 확대해야 한다. 둘째, 사립대학 비중이 80% 가까이 되나. 사학의 교육이념을 실현할 재정 여건을 갖춘 경우가 극히 드물다. 비리·부실 사학재단부터 과감하게 정리하고 사립대학 통폐합을 유도함으로써 사립학교 비중을 장기적으로 50% 이하로 줄여야 한다. 셋째, 전국의 대학이 철저하게 서열화되어 학생은 입시지옥에, 학부모는 사교육비 부담에 시달리고 있다. 대학서열 문제는 경제민주화 문제와 흡사하다. 대학은 서열에 맞춰 독과점 상태에 있는데, 이런 상태에서는 제대로 된 경쟁이란 애초에 불가능하다. 살인적인 대학등록금 문제도 이런 구조 속에서 탄생했다. 고등교육의 경쟁력 강화를 위해서 정부는 하루빨리 서열 완화를 위한 정책을 내놓아야 한다. 국공립대부터 통합네트워크를 만들어 지원하고 사립대도 유도하는 것도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넷째, 수도권 대와 지방대 간의 양극화 문제가 심각하다. 지방대의 경우 우수한 대학원 입학 자원마저도 수도권 대에 빼앗겨, 연구 인프라가 붕괴할 지경에 이르렀다고 한다. 새 정부는 지방대 육성을 위해 상당한 예산을 투입한다는데, 국가 균형발전이라는 큰 틀에서 산업의 과감한 분산배치 없이는 큰 효과가 없을 것으로 본다. 지역 경제가 활성화된다면, 지역의 인재들이 지금처럼 지역대학을 피하는 현상이 상당히 완화될 것이다. 다섯째, 인문학, 자연과학 등 소위 비인기 학문분야는 갈수록 위축되는 등 학문 간에도 양극화가 심각하다. 일부 사립대의 예에서 보았듯이 주로 비인기 학과를 대상으로 구조조정이 진행될 우려가 있다. 대학이 실용 학문 위주로만 교육해서는 창의적인 인재를 양성하는 국제경쟁력을 갖출 수 없다. 교육부는 구조개혁 정책 시행에 있어 비인기 학문에 대해 특별한 배려를 하여야 하는 까닭이다.

이런 구조적인 문제에 대한 천착이 없이는 혹시 정원감축을 위한 구조조정은 가능할지 모르나 고등교육의 질 관리를 위한 구조개혁은 기대하기 어렵다. 국민적 합의 도출을 위한 토론을 기대한다.

<한국대학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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