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행복은 사람의 마음에 달려있다고들 한다. 나날이 행복한 사람이 되려면 마음부터 열어야 한다고 말들 한다. 우리 시대 종교학 석학이 보내는 '소소해서 종종 잊곤 하지만 너무나도 소중한' 메세지 <정진홍의 살며 생각하며>에서 마음으로 살아가는 세상을 만나보자.

전장(戰場)의 기억은 제게 널려진 주검으로 각인되어 있습니다. 굶주림도 진한 기억으로 남아 있습니다. 망연자실한 채 텅 빈 길거리에 서 있던 제 또래 아이의 눈망울도 이 기억에 보태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런데 다행스러운 포만감, 그리고 갑작스러운 허무를 수반한 사소한 기억들도 있습니다. 논에서 보풀을 뜯어 죽을 쑤어 먹던 일. 여뀌를 건건이 삼아 밀기울밥을 먹는데, 몇 술 뜨지 않았는데도 어느새 비어버린 밥그릇. 이런 것들입니다.

한데 요즘 제 전장의 기억은 수학선생님의 이미지로 좋이 채워져 있습니다. 참 좋은 분이셨습니다. 폭격으로 폐허만 남은 학교 운동장 주변의 플라타너스 그늘에서 우리는 수학을 배웠습니다. 칠판이 있을 까닭이 없습니다. 교과서도 공책도 그랬습니다. 우리는 그런 ‘조건’ 속에서 인수분해를 배웠습니다. 지금도 저는 인수분해를 마치 몽롱한 시(詩)처럼 ‘이해’하고 있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주말이면 당신의 반 학생들을 끌고 폭격에 폐허가 된 자리를 뒤지고 다니셨습니다. 저는 폐허가 그리 많은 못(釘)을 묻고 있는지 몰랐습니다. 깨진 벽돌, 기와, 기둥, 양철들을 거둬내고 땅을 꼬챙이로 긁으면 얼마나 많은 크고 작은 녹슨 못들이 나오던지요, 못만이 아니었습니다. 얼마나 많은 전선이 폐허에 거미줄같이 널려 있던지요. 선생님께서는 그것도 거두어 감게 했고, 어떤 전선은 껍질을 벗겨 동선(銅線)으로 만들게도 했습니다. 우리는 그런 것들을 시장에서 팔아 나눠가졌습니다.

이윽고 가교사(假校舍)가 생겨 학교는 자리를 잡아갔지만 여전히 칠판 마련은 어려웠습니다. 인근의 칠판공장이 거의 부서졌기 때문입니다. 선생님께서는 학생들과 칠판을 만드셨습니다. 판자를 모아 대패질을 하고 미리 만든 틀에 못질을 해서 커다란 판을 만들고는 한지를 판자 위에 풀로 바르고 석회를 다시 그 위에 발랐습니다. 그렇게 칠판 틀이 마련되면 아궁이 가마솥을 뒤집어 덕지덕지 붙은 바닥의 끄름을 떼어 빻고 체로 쳐서 검정 염료를 만들고, 거기에다 방수제(防水劑) 대신 땡감 집을 짜 넣고는 이를 아교에 섞어 석회판을 검게 칠했습니다. 우리는 이렇게 만들어진 칠판으로 공부를 했습니다. 선생님은 진정으로 학생들을 사랑하셨습니다. 수학을 가르치시면서는 늘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대학에 가려면 수학을 잘해야 해! 입학을 판가름하는 것은 수학 점수야. 수학을 못하면 인생을 망쳐!” 학생들을 아끼시는 마음이 이러하셨습니다.

저는 대학시험에 합격했고 당연히 입학과 더불어 수학을 버렸습니다. 필요가 없으니까요. 그런데 산문만 읽다가 갑자기 시에 허기를 느끼듯 어느 계기에서 수학적인 사유가 절실하게 아쉬워 수학을 공부하고 싶어졌습니다. 하지만 너무 힘들었습니다. 옛날 선생님이 원망스러웠습니다. 만약 선생님께서 수학을 ‘입시를 위한 수단’이라고 말씀하시지 않고 ‘수학이란 사물을 서술하는 또 하나의 언어야. 이를 익히면 사물의 현존이 달리 읽힐 수 있지. 그것은 다른 세상을 보여줄 거야. 어디 한번 신나게 공부해볼까?’라고 하셨으면 제가 수학을 이렇게 완벽하게 폐기해버렸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참 좋은 선생님이신데, 칠판 없이 플라타너스 아래에서 인수분해를 가르치시던, 그리고 우리를 위해 칠판을 만드신, 감동스러운 모습으로만 기억하고 싶은 선생님인데, 대학 입학과 더불어 수학을 버리게 한 선생님으로 기억해야 하는 일이 무척 당혹스러웠습니다.

이미 선생님은 이 땅에 계시지 않습니다. 지금 제 원망을 들으시며 “이 철딱서니 없는 녀석아. 내 말을 그렇게 알아들었단 말이냐?” 하고 꾸중을 하셨으면 좋겠는데 제 지난 세월을 회상하면서 전장의 기억과 더불어 선생님의 기억이 저를 이렇듯 혼란스럽게 하는 것은 어쩌면 제 ‘선생 노릇의 부끄러움’을 선생님 그늘에서 감추려는 저의(底意)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못나고 못된 짓인데도 아무래도 그런 것 같다고 고백해야 할 것 같습니다.

< 정진홍은 ... >
충남 공주 출신. 서울대 종교학과를 나와 미국 에서 목회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2003년까지 서울대 종교학과 교수로 재직했다. 대한민국학술원 회원이며 한국 종교학 분야 석학으로 인정받고 있다. 현재 울산대 석좌교수로 있으며 아산나눔재단 이사장을 맡고 있다.
 

<한국대학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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