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22개大 기획처장들이 말하는 ‘대학 발목잡는 규제’는

일방적 구조개혁 추진하다 갑자기 ‘규제개혁’에 '어안벙벙'
정부가 두 개혁을 설득력있게 추진해야 개악 피할 수 있어
규제개선 방향 ‘先자율 後책무’ … ‘착한 규제’까지 손댈라

창조경제를 통한 경기 활성화를 꾀하고 있는 정부가 지난 연말 내놓은 ‘투자활성화 대책’을 기점으로 규제완화정책에 시동을 걸었다. 최근 기획재정부는 △교육 △소프트웨어 △콘텐츠 등 ‘6대 유망 서비스 분야’에 태스크포스팀(TFT)을 꾸렸다. 여기에 포함된 교육부도 규제개혁의 닻을 올렸다. 지난 24일 ‘규제개선추진단’을 조직하고 초중등교육기관과 대학의 자율성을 저해하는 각종 규제를 발굴하겠다고 나섰다. 박백범 교육부 기획조정실장을 단장으로 발족한 이 추진단은 “시대의 변화를 반영하지 못한 법령 탓에 실질적으로 ‘제재’에 가까운 규제안들과 더불어 드러나지 않은 규제를 찾아내 (시대상황에 맞게) 완화 혹은 폐지하겠다”고 밝혔다. <편집자 주>

[한국대학신문 최성욱 기자] 지난 5년간 대학구조개혁을 외치던 정부가 갑작스레 대학규제개혁을 들고 나왔다. 대학가는 냉탕과 온탕을 오가는 정부의 정책적 배경엔 의구심을 품고 있지만 일단은 기대하고 지켜보자는 눈치다. 지난 25~26일 본지는 전국 22개 대학(국공립 4·사립 14·전문대학 4) 기획처장들로부터 ‘대학 발전을 발목잡는다’고 느끼는 규제에 대해 들었다.

취재 결과 이들은 ‘정부 재정지원사업과 연계한 정원 감축’과 ‘등록금 인상률 제한’을 가장 심각한 규제로 꼽았다. 특히 국공립대 기획처장들은 ‘정부 재정지원사업과 연계한 정원 감축’을 가장 심각하게 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사립대 기획처장들도 절반이 ‘정부 재정지원사업과 연계한 정원 감축’에 대해 심각성을 토로했다. 사립대의 경우 상대적으로 ‘등록금 인상률 상한제’(38.9%)를 심각한 규제라고 보는 측면이 컸다. 이들은 입학전형료도 자율적으로 쓸 수 있게끔 규제를 풀어야 한다는 반응을 보였다.

대학 간 평가지표 경쟁으로 정부의 재정지원을 따내는 방식과 동시에 대학의 주요 수입원인 등록금 인상률을 제한하는 정책이 맞물리다보니 재정여건이 악화일로를 걷게 된다는 설명이다. 재정이 어려워지니 교원 충원이나 시설 개선에 투자할 수 없어 악순환이 반복된다는 것이다.

모 대학 기획처장은 “물가가 매년 치솟는 데다 평가지표 향상을 위해 교원을 더 많이 뽑아야 하는 대학 입장에선 인건비 부담도 만만치 않다”며 “매년 들어갈 돈은 많아지는데 등록금 인상을 제한하는 정부의 정책은 장기적으로 교육의 질과 교육환경만 악화시킬 뿐”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또 “상황이 이런데도 정부는 오히려 정원을 줄이는 쪽으로 구조조정을 하라고 하는데 과연 어떤 대학이 경쟁력을 가질 수 있겠느냐”고 말했다. 

교육부는 지난 2010년 취업률, 재학생 충원률 등을 중심으로 학자금대출제한대학을 지정하고, 이듬해부터는 교육역량강화사업 등 대학에 지원해 온 모든 정부 재정지원사업까지 하나로 묶어 지원을 끊는 ‘패키지 패널티(package penalty)’ 방식의 정책을 써왔다. ‘대학구조개혁정책’이라는 이름으로 시행하고 있는 이 정책은 정부 재정지원사업을 수주할 대학을 대학 간 상대평가로 선정하고 하위 15%에 속한 대학은 재정지원사업에 참여자격을 박탈하며 입학정원 등 대학의 규모를 대폭 줄여야 한다. 지난해 새 정부 출범 이후 일부 지표비율이 조정되고 새로운 지표가 추가됐지만 ‘기본방침은 바뀐 게 없다’는 게 대학들의 지적이다.

기획처장들은 최근 5년간 이 같은 평가틀 속에서 지내온 대학들이 이제는 한계점에 도달했다고 말한다. 한 사립대 기획처장은 “정부 재정지원사업은 대학을 육성하기 위한 각각의 사업목적에 맞게 추진돼야 하고, 하위 15%대학(부실대학) 지정 등 대학구조개혁은 별도의 재정지원사업으로 추진돼야 대학도 혼란이 덜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기획처장은 “정부 재정지원사업평가와 등록금 인상률 제한은 대학의 자율성을 저해시켜 책임있는 교육을 시키지 못하게 하는 주요 원인”이라며 “빠른 시일 안에 없애야 할 규제”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교육 관련 규제로는 가장 많이 지목된 것이 ‘상대평가 시 성적비율 제한’과 ‘영어강의 비중 강화 조치’다. 국공립대 기획처장들은 ‘영어강의가 교육의 질을 떨어뜨리는 불필요한 규제’라는 의견이 많았다. 이들은 또 “교육부 주관 사업 관련 업무로 인해 강의 준비를 소홀하게 된다” “교육부의 정원감축 정책이 직·간접적으로 교육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친다”고 말해 정부가 추진하는 대학정책이 교육의 질을 떨어뜨리고 있다고 평가했다.

대학행정에 관련해서는 총장직선제를 폐지토록 유도한 교육부의 방침과 학내의 각종 위원회 의사결정과정에 외부인사를 의무참여토록 한 규정을 가장 불필요한 규제라고 보는 의견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국공립대는 총장직선제 폐지를, 사립대는 외부인사 의무참여가 특히 더  심각한 규제라는 입장이다.

이들은 시설 관련 규제 중엔 수도권정비계획법에 따른 입학정원 규제와 지역대학 수도권 진출 제한에 가장 민감해 했다.

■‘전관예우 금지’ ‘3불정책’ 등 필요한 규제도= 한편 정부의 이번 규제개혁이 자칫 ‘필요한 규제’까지도 덩달아 풀어버리게 되진 않을지 우려섞인 목소리도 나왔다. 이들 22명의 기획처장들은 대학에 꼭 필요한 규제로 △교육부 고위 관리 2년 내 총장 선임 금지 △신입생 오리엔테이션 학생회 단독 주관 금지 △3불(기여입학제·고교등급제·본고사)정책 △대입 논술고사 출제 범위 고교 교과서 내 제한 △입시전형 명칭 및 수 규제 등을 꼽았다.

특히 사립대 기획처장들은 교육부 고위관리가 퇴임 후 곧바로 사립대 총장으로 선임되는 등 전관예우가 실제 교육현장에서 심각한 문제를 낳고 있어 이 규정에 관한 관리감독을 더 철저히 해줄 것을 당부했다. 한 기획처장은 “전관예우 차원에서 교육부 고위관리가 사립대 총장에 선임되면 정부 재정지원사업 평가 등에서 형평성 논란을 초래하고, 실제로도 불공정한 일이 다반사”라며 “감독관청의 퇴직자가 단기간에 피감독기관의 책임자를 맡는 것은 사회적으로도 도덕적 해이(解弛)에 해당한다”고 말했다.

기획처장들은 정부의 규제개선안이 ‘선 자율성, 후 책무성’으로 이어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사립대라도 교육의 공공성을 확보할 수 있는 방향으로 관리·감독(규제)하려면 우선 대학 운영의 자율성이 주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한 사립대 기획처장은 “대학의 자율성이 훼손되는 상황에서 대학의 책무로서 공공성을 주장하게 되면 지금처럼 대학과 정부 간 갈등만 반복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또 다른 기획처장은 “교육의 공공성의 확보는 자율성에 상응하는 책무성을 강화하는 것”이라며 “대학에 대한 정부의 점검과 감사를 확대하되 명확한 법적기준을 제시하고 교육의 윤리·규범적 기준을 크게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편법과 변칙을 통해 목표를 달성하고자 하는 일부 대학의 상업적 변질을 차단하는 데 규제개혁의 초점이 모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학내비리가 적발될 경우엔 “총장·이사선임 취소 등 정부의 강력한 조치가 뒤따라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이 역시 대학에 자율성을 최대한 보장해주는 만큼 의무와 책임은 강하게 물어야 한다는 의미다. 수도권 대학의 한 기획처장은 “정부가 대학구조개혁과 대학규제개혁을 합리적이고 설득력있게 추진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개혁이 아니라 개악이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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