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발상' 신설 2년째 접어든 단국대 철학과 찾아가보니...

최근 철학과는 학과통폐합 과정에서 글쓰기나 논리학과 같은 특정분야만이 겨우 살아남았다. 이마저도 개별 학과가 아닌 교양학부의 ‘일부 과목’으로 흡수됐다. 학문의 특성상 딱히 통합할 여지가 없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실제로 취업률이나 재학생 충원률 등 평가지표에서도 타 학과에 비해 낙제점에 가까운 점수를 받아왔기 때문에 대학들은 ‘구조조정 1순위’로 철학과를 지목해왔다. 하지만 지난해 단국대는 발상을 전환했다. 1947년 개교 이래 처음으로 철학과를 신설한 것이다. 신설 2년째, 단국대 철학과는 철학을 재발견하고 있다.

입학정원 34명, 경쟁률 10대 1로 상승, 인문대 ‘최고'
폐지 흐름에 역발상 ‥ 예상밖 인기에 학교도 놀라

▲ ‘누가 철학과를 비인기학과라고 했던가’ 학과구조조정의 여파로 사장(死藏)될 위기에 내몰린 철학과가 새삼 주목받고 있다. 인문학 육성의 기치 아래 단국대는 지난해 철학과를 신설했다. 생활 속에서 철학의 가치와 의미를 탐구하는 ‘현장밀착형 철학과’를 선보였다. 학생들로부터 외면받을 줄 알았던 철학과가 입학경쟁률(정시) 10대 1을 훌쩍 넘기며 인문대학 ‘최고 경쟁률·최다 지원자’ 1위를 모두 가져가는 파란을 일으키고 있는 것이다. 9일 오전 ‘생활과 철학’ 강의시간, 발표를 경청하는 학생들의 표정이 사뭇 진지하다. <사진 한국대학신문 최성욱 기자>

[한국대학신문 최성욱 기자] ‘철학과는 비인기학과’라는 상식이 뒤집혔다. 지난해 3월 철학과를 신설한 단국대의 ‘실험’이 이를 입증했다. 경기도 성남 죽전캠퍼스에 둥지를 튼 단국대 철학과는 학생모집의 어려움과 전과생이 속출할 것이라는 대학가의 우려를 말끔히 씻어냈다. 오히려 주변 대학들의 부러움을 사고 있으며 의구심을 희망으로 바꿔놓을만큼 순조로운 2년차를 맞았다. 특히 원전강독 중심의 이론수업에서 벗어나 생활 곳곳에 서려있는 철학의 가치를 끄집어내려는 노력이 주효했다는 게 학교 측의 분석이다.

단국대에 따르면, 이 대학 철학과는 지난해 신설 당시 입학경쟁률(정시 다군·일반)이 8.3대 1(6명 모집· 50명 지원)을 기록한 데 이어 올해는 10.8대 1(5명 모집·54명 지원)까지 치솟았다. 신설학과임에도 불구하고 인문대학 내 최고 경쟁률과 최다 지원 1위 타이틀을 모두 가져갔다. 이는 올해 죽전캠퍼스의 정시모집 전체 평균 입학경쟁률인 6.18 대 1도 훌쩍 뛰어넘는 수치다.

‘전과’(학과를 옮김)를 염두에 두고 철학과에 입학했을 것이란 추측도 빗나갔다. 전과가 가능한 이번 학기, 철학과 1기생들 중  타 학과로 전과를 신청한 학생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오히려 사범계열에서 철학과로 1명이 전과를 해왔다.

입학정원 34명에 전임교원 2명(동·서양 철학전공 각 1명)으로 출발한 단국대 철학과는 ‘현장밀착형’이라는 새로운 개념의 커리큘럼으로 학생들에게 접근했다. 현장밀착형 철학과는 과학기술이 폭발적으로 발달하고 정치와 문화가 엉겨붙듯 혼재하는 현대사회에서 철학이 현장을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는 데 목표를 두고 있다.

이 학과에서는 신종범죄 등 각종 사회문제에 대해서도 인간의 어떠한 특성이 이 같은 문제를 야기하는지를 규명해 내는 일이 철학의 역할이고 철학도의 임무라고 본다. 철학과 창립을 주도한 유헌식 학과장은 “일상 속에서 일어나는 사건을 이해한 후 추상적·개념적으로 설명하는 일을 철학도가 해내야한다”고 강조했다.

매달 한 번씩 열리는 ‘철학광장’은 대표적인 공론장이다. 제목 그대로 일상에 숨어있는 철학을 공론화하고 이끌어내는 프로그램이다. 전공을 불문하고 단국대 학생이면 누구나 참여할 수 있다. 각자 주제를 정해 자신들이 발견한 철학적 가치를 발표하고 토론한다.

밤새 컴퓨터 게임을 한 탓에 수업시간에 집중할 수 없었던 한 학생은 ‘현대인은 왜 컴퓨터 게임에 빠지는가’를 주제로 발표했다. 영어영문학과와 정치외교학과 학생들은 한 팀을 이뤄 ‘음식의 정치철학적 의미’를 분석했다. 화학과와 기계공학과 학생들이 발표를 예약해뒀을만큼 타 학과생들로부터도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다.

이러한 시도들은 그간 철학과가 ‘그들만의 리그’에 머무른 채 학술담론에 치우쳐왔다는 안팎의 비판을 극복하기 위한 것이다. 신설학과이지만 전통이나 학맥을 따라가지 않고 사회와 대중을 더 우선적으로 택한 이유다. 유 학과장은 “후발주자인 우리가 기존 철학과의 커리큘럼이나 연구의 흐름을 좇아가선 학과가 유지되기 어려울 것”이라며 “생활 속 철학을 발굴하고, 다른 학문과 융합 등을 통해 ‘현장밀착형 철학’을 시도하는 게 우리가 찾은 하나의 가능성”이라고 말했다.

자연히 커리큘럼도 새롭게 구성했다. 헤겔, 니체 등 철학자의 원전을 중심으로 한 이론수업은 1~2학년 과정에 묶어뒀다. 철학계의 기본적인 흐름을 읽어내는 수준으로 가르치되 기간이 짧은 만큼 학생들이 공부해야할 양은 많다. 3~4학년 과정은 이론과 현장의 융합적 사고능력을 기르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정치철학’ ‘예술철학’ ‘중국현대철학’과 같은 기존 철학과 강의도 ‘정치와 철학’ ‘예술과 철학’ ‘현대 중국과 철학’으로 이름을 바꿨다. 정치에 대한 이해나 예술의 감상을 전제한 이후부터 철학이 가미되는 방식이다. 이 또한 현실과 동떨어진 학문을 가르치지 않겠다는 의지가 반영된 것이다. 여기에 ‘경영과 철학’ ‘IT와 철학’ ‘놀이와 철학’ 등 일상에 다가가는 철학과목을 새롭게 선보일 계획이다.

학생들의 진로지도 역시 철학에 기반을 둔 다양한 분야의 사회진출을 독려하고 있다. 의상·미용 등 패션에 관심이 있는 학생에겐 ‘패션철학’을, IT쪽에 관심이 있으면 ‘IT철학’을 스스로 개척해 보라고 권유한다. 이 때문에 학생들은 경영학과, 상담학과, 지식재산연계전공 등 각자의 관심분야를 복수전공하고 있다.    

이처럼 기존 철학과의 한계를 넘어서려고 한 접근은 환영할만하지만 이러한 시도의 성패는 ‘누가 가르칠 것이냐’에 달려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유 학부장은 “경영·IT·예술 등 현장의 생생한 이야기를 학부 수준의 철학강의로 소화할 수 있는 적임자(교수·강사)를 찾기가 말처럼 쉽지 않다”고 토로했다. 예컨대 ‘경영과 철학’ 과목의 경우 대기업 임원급 인사 가운데 철학 석·박사학위를 한 사람을 구하기 어렵고 또 적임자가 있다고 해도 바쁜 일정 탓에 학생들을 교육하기엔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단국대는 그러나 더 과감한 인재 등용에 나서기로 했다. 홍인권 교무처장은 “겸임·초빙교수나 강사 외에도 내년까지 전임교원 4명을 더 충원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유 학부장도 “전공강의가 ‘명사특강’ 수준으로 떨어져선 안되기 때문에 커리큘럼 운영에 깊이를 더하는 등 신중을 기할 것”이라고 말했다.

▲ 9일 ‘생활과 철학’ 강의 도중 한 학생이 손을 번쩍 들어 발표자에게 질문하고 있다. 유헌식 교수(오른쪽)는 이를 지켜보면서 토론주제를 철학적으로 접근할 수 있도록 도와줬다. <사진= 한국대학신문 최성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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