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분열 초래하지 않도록 각계각층 뼈아픈 반성 · 변혁 필요

[한국대학신문 이연희·신나리·손현경 기자] 온 사회가 비탄에 빠졌다. 지난 16일 아침 수학여행을 떠난 고등학생 등 470여명의 승객을 태운 세월호가 진도 앞바다에서 침몰하고 170여명만이 가까스로 목숨을 건졌다. 구조작업은 더디기만 하고 생존자가 있을 것이라는 희망도 희박해지고 있다.

이번 사고는 성수대교와 삼풍백화점 붕괴사고, 대구 지하철 화재 참사, 경주 마우나리조트 붕괴사고 등 과거 대형참사의 악몽이 다시 거듭됐다는 점에서 사회 전반에 경종을 울리고 있다. 특히 우리 사회의 총체적인 문제점이 한꺼번에 드러났다는 지적이 강하게 제기되고 있다. 정부의 위기대처능력과 사고대응시스템이 도마에 올랐고, 허술한 지휘 관리체계, 안전불감증, 언론의 과도한 경쟁, 공직자들의 추태, SNS와 루머의 난무 등 사회의 추하고 악한 일면들이 낱낱이 드러나고 있다.

본지는 우리 사회의 근본적인 문제를 이번 기회에 분명히 짚고 넘어가야 국가와 사회에 대한 국민들의 신뢰 회복과 정신적 치유가 가능하며 이같은 참사가 다시는 반복되지 않을 수 있다고 보고 학계 전문가들의 특별지상간담회를 마련했다. 패널로는 김신섭 삼육대 상담심리학과 교수(비전드림센터 원장),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TV조선 '신율의 시사열차' 진행자), 전규찬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교수(언론개혁시민연대 대표), 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참여연대 위원장)가 참여했다.<편집자 주>

-사고 원인을 찾는 과정에서 우리 사회 시스템이 총체적으로 부실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신율 교수(이하 ‘신’) : 그야말로 우리나라의 문제점이 집약적으로 드러났다. 우선 정부에 대한 신뢰가 상당히 망가졌다. ‘허둥지둥’ ‘우왕좌왕’으로 설명되지 않나. 아무도 책임지는 사람 없이 서로의 눈치만 보고 있다. 기업 윤리와 직업윤리 문제도 심각하다. 선주 세모 기업의 자산이 그렇게 어마어마한데 선장 월급은 270만 원에 불과하고, 20년 넘은 배를 더구나 개조해 사용했다니 말이 안 된다.

전규찬 교수(이하 ‘전’) : 무능함과 무책임한 모습을 드러낸 언론에 주목했다. 지난 이명박정부 때부터 구조적으로 불능 상태가 된 공영방송은 이번 사건을 보도하면서 오보 투성이에 정부 눈치 보기식 뉴스, 선정적 뉴스를 그대로 내보냈다. 오히려 일반 대중들의 정서와 여론을 감안해 상식적 저널리즘에 집중한 JTBC의 경우 방송통신심의원회 중징계를 받게 됐다. 정부 발표만 일방적으로 쫓는 선전 도구가 아니라, 언론 스스로 사건 원인을 추적하고 정부 대책의 실패나 대응의 부족한 점을 비판하고 감시하는 역할을 할 때  ‘건전한 저널리즘’이란 말을 붙일 수 있다.

한상희 교수(이하 ‘한’) : 사회 시스템이 완전히 와해됐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러나 시스템 각 단계마다 비정상이 정상처럼 여겨지고, 해이해진 기강이 누적되면서 전체적으로 커다란 오류를 야기했다고 본다. 개인의 욕심이나 이기적인 행위에서 파생되는 문제점들을 감시하고 견제할 수 있는 시스템 자체가 제대로 형성돼있지 못하다보니 더 증폭되는 것이다.

김신섭 교수(이하 ‘김’) : 우리 사회가 산업화와 민주화를 이뤘지만 그에 걸맞는 성숙한 시민의식이 엄청나게 결여됐다는 점이 문제다. 단순히 선장 및 선원들의 책임회피나 공무원들의 실언보다도, 우리 사회에 만연한 ‘변칙주의’가 이같은 사고를 불러왔다고 본다.

-정부의 위기대처능력이 시험대에 올랐다는 비판이 이어지고 있는데.

: 제도적으로는 위기관리 매뉴얼이 있겠지만 실제로 제대로 작동한 것이 하나도 없다. 담당자는 우왕좌왕하며 눈치보고 있다. 과거에는 청와대 직속으로 국가안전보장회의(NSC)가 위기관리매뉴얼을 작동했던 때도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어떤가.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가 안행부 산하에서 눈치를 보지 않을 수가 없다. 실제로 소집은 빨랐지만 수습은 고사하고 상황 파악조차 제대로 하지 못했다. 눈치보고 책임 미루기나 하다보니 지휘를 제대로 하지 못한 것이다. 재난이나 사고가 일어났을 때 청와대 직속으로 NSC를 꾸려 전권을 주고 모든 부서를 총괄하는 것이 옳다.

: 국가는 개인과 부분적 잘못을 제거해나가고 총체적으로 정의롭고 효율적인 사회를 만들어가야 한다. 책임을 회피하는 듯한 이번 대처는 사회적 효율을 저해시키고 불안정하게 만들 가능성이 높다. 앞으로도 상당히 긴 시간 동안 그런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이런 사건들을 더 경험해야 한다는 불안 말이다. 국가를 신뢰하고 각자 생활을 꾸려가야 하는데 되려 국민들이 국가를 걱정하고, 자기 생활이 국가에 의해 침해될까 걱정해야 하는 상황이 될 우려가 있다.

- SNS를 통해 허위사실 유포를 넘어 이념적 공격까지 횡행하고 있는데.

: 허위사실 유포, 댓글공방 등은 결국 하나의 증상일 뿐이다. 근본적으로는 원칙과 도덕적 기준이 제대로 적용돼있지 않아 여기저기서 터져나오는 것이다. 누구 한 명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 전반적으로 진지하게 고민하면서 원인을 수술해 도려내지 않으면 참극은 또 일어날 수 있다.

: 과장되거나 흥분된 언사를 하는 이들이 있다. 본인의 언행에 대한 책임도 져야 한다. 그러나 이는 애초 정부와 언론이 사고 원인 등에 대해 적절하고 합리적인 해설을 제공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들을 정부기관과 정치인들이 ‘이념’이라는 잣대를 들이대 ‘불순세력’을 만들어내고 낙인찍는 행위는 옳지 않다. 근거 없는 낭설 루머에 대해서는 일반인도 판단할 능력을 갖추고 있다.

: 더 심각한 문제는 제도권에서 허위 정보를 걸러내지 못한다는 점이다. 잠수부를 사칭하며 거짓 인터뷰를 한 홍모 씨 인터뷰를 내보낸 것은 방송사 데스크였다. 이는 언론사 내부에서도 제 역할을 하지 못한다는 걸 방증한다. 또한 이념의 문제가 아님에도 유족 등 일부를 거론하며 ‘종북’이니 ‘빨갱이’니 논란이 일고 있는 것은 우리 사회가 어느 정도 분열돼있는지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본래 위기상황일수록 사회적 분열구조가 합쳐지고 힘을 모으는 것이 당연한데, 한국 사회는 이처럼 비정상적인 상황에 놓여 있는 것이다.

-정부와 경찰, 선박 업체 관계자 등 책임 공방이 뜨겁다.

한 : 박근혜 대통령이 세월호 선장을 ‘살인자’로 지칭했는데, 정책 최고결정자이자 집행자인 대통령이라면 이런 사건일수록 국민들에게 사과하고 총괄 책임을 지고 잘못된 부분을 고쳐나가겠다고 선언하는 것이 사회 통합에 효과적이다. 공무원들의 관행에도 문제가 있다. 역시 모든 지도력을 지나치게 대통령에 집중시키는 모습을 보인다. 일선 공무원부터 장관에 이르기까지 겹겹이 상부 관료의 눈치를 보는 식이다. 그러다보니 순간적 위기상황에서 결단력 있는 대처 방안이 나오지 못하는 것이다. 책임 소지를 피하기 위해 주춤거리는 가운데 사고는 더 커지고, 결국 말단을 ‘꼬리 자르기’ 하며 기득권 관료들의 안위는 보호된다. 사후에라도 책임 추궁에 있어 바로잡는 절차가 있어야 하는데 존재하지 않는다.

: 동의한다. 국가가 무능하게 대처한 책임을 진지하게 지려하지 않은 채 개인에게 책임을 떠넘기려는 인상을 준다. 전반적으로 우리 사회는 견제․감시 기능이 떨어져있다. 언론에서조차 부실한 기업들의 수상쩍은 행보를 눈감고 홍보하며 편승해오는 관행은 없었는지 되돌아봐야 한다.

-이같은 사고가 반복되지 않도록 하려면 우리 사회가 나갈 방향은.

: 정치권은 실질적으로 대응할 수 없으니 가만히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예정대로 지방선거를 제대로 치를 수 없는 상황과 분위기 아닌가. 개인적으로는 지방선거가 연기돼야 한다고 본다. 슬픔에 빠진 여론을 자기 홍보에 이용한 지방선거 예비후보들은 명단을 공개해 국민들이 표로 심판하게 하든지 정당에서 공천을 주지 말아야 한다.

: 내 생각은 다르다. 국회 역시 정부 견제 세력으로서 책임 추궁과 진상조사 등을 주도해야 하는데, 지방선거를 의식해서인지 너무 조용하다. 모든 국민들이 경악한 문제까지도 정치적 이해타산을 따져야 하는 것인지 의문스럽다. 또한 이 같은 사고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안전사고 위험이 잠재된 문제도 적극 검토해야 한다. 수명을 다한 고리원전이 최근 재가동된 문제 등도 다시 짚어봐야 한다. 위험 요소를 미리 예방하고 제대로 다스려나갈 기회로 만드는 계기가 돼야 한다고 본다.

: 근본적으로는 이 사태를 구조적·역사적인 문제로 인식하고 모두가 책임있게 대응해야 한다고 보는데, 현재 이 같은 논의는 거의 안 되고 있다. 1960-70년대에 졸속으로 이뤄진 근대화 과정이 진행된 20년 후 1990년대에 성수대교와 삼풍백화점이 붕괴했다. 마찬가지로 1990년대에 정부가 주도한 난개발과 탈규제가 축적돼 20년 후인 2010년도에 ‘세월호 침몰’이라는 부실사고가 발생했다. 물론 모든 고리를 단기간에 끊는 것은 어렵겠지만, 해운업은 물론 전 분야에 걸쳐 문제점을 짚어낼 거시적 안목을 갖추고 심도있게 논의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 정치, 언론계는 물론 교육계 역시 철저한 반성과 변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상대평가 중심으로 경쟁사회를 조장하다보니 살아남기 위한 온갖 변칙이 나온다. 우리 모두가 내 잘못으로 인식하고 바꿔나가지 않으면 우리 사회 역시 변할 수 없다는 인식을 가져야 한다. 드러난 잘못에 대한 책임을 묻는 것도 중요하지지만 더 큰 책임은 철저한 반성과 개선 없이 눈에 보이는 문제에만 집중하는 우리 스스로에게 있다.

■패널소개- 가나다순

-김신섭(삼육대 상담심리학과 교수)  : 미네소타 신학대학원에서 기독교상담학을 전공,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삼육대 비전드림센터 원장, 한국가정사랑운동본부 전문위원, 노원구 건강가정지원센터 자문위원을 겸하고 있다.

-신율(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 프라이부르크대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한국국제정치학회 이사와 통일부 정책자문위원을 역임했다. 현재 TV조선에서 '신율의 시사열차'를 진행하고 있다.

-전규찬(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교수) : 위스콘신대에서 신문방송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언론개혁신민연대와 공공미디어연구소 대표, 문화연대 미디어문화센터 소장직을 겸하고 있다.

-한상희(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참여연대 위원장) : 서울대 법과대학에서 법학박사를 취득했으며, 경성대를 거쳐 건국대 교수로 부임했다. 현재 서울시 교육청 학생인권위원장, 참여연대 운영위원장, 법과사회이론학회회장직 등을 겸임하고 있다.

저작권자 © 한국대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