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동현(본지 논설위원/ 한국교양기초교육원장)

대학들이 차츰 ‘경쟁 체제’로 들어서기 시작한 뒤부터는 ‘대학마다 고유한 특성을 살려’ 학교발전의 계획을 세워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기 시작했다. 특히 올해 들어서서 교육부가 ‘교육역량강화 사업’을 ‘특성화 사업’으로 ‘버전업’하여 ‘대대적으로 지속해서’ 펴나감으로써 이를 대학교육 선진화의 지렛대로 삼겠다는 장기계획을 발표하고 실행에 들어가자, 요즈음 대학가에는 ‘특성화’를 위한 계획 수립에 여념이 없다.

물론 바람직하다. 200개 가까운 일반 대학들이 모두 비슷비슷한 모양으로 백화점식 ‘종합선물세트’를 교육 시스템으로 제공해서야 한국의 대학교육이 더 발전하기 어려울 것이니 말이다. 그런데 이번 ‘특성화 사업’ 시행에는 매우 중요한 또 하나의 중대한 사안이 얽혀 있는데, 이른바 ‘구조조정’이라는 것이 그것이다. 전통과 여건과 구성원 등 대학마다 서로 다른 내외의 상황에 잘 어울리는 특성 있는 교육을 시행하기 위해서는 이에 걸맞은 교육구조를 갖춰야 한다는 것이 곧 ‘특성화를 통한 교육구조 조정’이라는 발상이라고 본다.  교육구조 조정을 학령인구 감소에 따른 입학정원 축소의 문제로만 보는 것은 잘못이다. 이 양자는 실은 별개의 문제다.

그런데 교육부가 유도하고 있고 대학들이 시도하고 있는 ‘특성화’의 내용을 보면, 그건 대체로 교육 내용이나 교육영역의 특성화다. 쉽게 말해 어떤 전공분야에 특별히 역점을 두어 교육할 것인지 하는 것이 그것이다. 그것이 기존의 전공들이 통합된 분야거나 새로이 등장한 분야라면 더욱 좋은, 그런 전공분야의 특성화다.

그러나 필자가 보기에 교육내용의 ‘특성화’에 앞서 선행되어야 할 것은 ‘교육 목표’에 따른 대학의 ‘유형화’다. ‘무엇을 가르칠 것인지’ 하는 교육내용의 문제는 ‘어떤 인재를 키울 것인지’ 하는 교육목표의 문제에 뒤따라오는 것이지, 이에 앞서 오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한국의 대학들에서 교육목표는 그렇게 천차만별의 다양한 것도 아니다. ‘진리를 탐구하고 인격을 함양한다’는 형식적 이상에서 내려와, 교육수요자의 자기 기대와 대학교육에 대한 사회의 요구를 고려해 본다면, 그 교육목표는 몇 가지로 구별될 것이다. 고교 졸업생의 80% 가까이가 대학에 진학하는 마당에, 사회적 계층의 분화와 직업적 위계의 분화를 무시한 채, 대학 졸업자들에게 같은 사회적 역할과 같은 사회적 지위를 요구하거나 기대한다면, 이는 위선이다. 엄연한 현실인 대학의 ‘서열’은 그토록 피하면서도 200개 가까운 대학들을 ‘유형’별로 나누지 않고 하나의 틀 안에 넣어 취급하려는 것은 실은 자가당착적인 태도다. 경쟁도 지원도 평가도 ‘유형’별로 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한편으로는 사회적 계층 및 직업 분야의 분화를 염두에 두고 다른 한편으로는 자기 대학의 위상을 고려하여, 각 대학은 학문 후속세대, 고급 전문직, 일반 간부직, 일반직, 특별 기능직, 비 직능적 교양인 양성 등 차별적인 교육목표를 세우는 일을 먼저 해야 한다. 생존전략이든 발전전략이든 모두 여기서 출발해야 할 것이다. 그러면 그것이 곧 그 대학의 ‘유형’을 결정할 것이고, 교육구조, 교육과정, 교육내용 등은 자연히 그 유형에 따라 달리 수립될 것이다. 그리고 여기서 결정적으로 중요한 것은 기초학문분야와 응용학문분야의 교육을 어떤 비율로 배분하여 당해 대학의 교육목표를 달성하느냐 하는 점이다. 그것은 요즘 점차 문제로 의식되고 있는 교양교육과 전공교육의 조화와 균형의 문제이기도 하다.

<한국대학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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