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희대 교수들, 스승의 날 반납 성명서 발표

[한국대학신문 손현경 기자] 세월호 참사 한 달여 째, 대학 교수들이 자성과 성찰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15일 대학가에 따르면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184명은 스승의 날 하루 전인 14일 '스승의 날 반납'을 선언하고 교육 혁신을 주장하는 성명서를 냈다. 같은 날 연세대 교수 131명도 세월호 침몰 사고 원인 규명과 책임자 처벌 등을 촉구하는 성명서를 발표해 세월호 참사에 대해 대학 교수들의 성찰과 자성에 대한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경희대 교수들은 '스승의 날을 반납합니다'라는 제목의 성명서에서 "어버이날, 카네이션을 달지 않으신 어버이들과 같은 비통한 심정으로 오늘 하루, 스승의 자리를 돌아보고자 한다"고 밝혔다.

이들은 "세월호 참사의 보다 근본적인 원인은 교육에 있다고 생각한다. 건국 이래 우리의 교육이 제대로 이뤄져 왔다면, 그리하여 사회가 온전한 개인, 건강한 시민들로 구성되었다면, 청해진과 같은 선박회사는 간판조차 내걸 수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정부의 초기 대응 또한 이처럼 불가사의하지 않았을 것"이라며 "'기레기 언론'이란 용어도 상상할 수 없었을 것이고, 희생자와 유족에 대한 일부 인사들의 패륜적 언사도 감히 이어지지 않았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교육을 한마디로 '어른의 말'이라고 규정한 교수들은 "세월호에서 '어른의 말'을 들은 학생들 대부분이 목숨을 잃었다. 어른의 말을 들으면 생명을 부지할 수 없는 사회는 명백히 실패한 사회"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이들은 "세월호 참사로 고통을 겪고 있는 모든 이들을 위한 최선의 애도는 교육을 바로 세우는 것"이라며 "교육을 혁신하는 것이야말로 미증유의 사회적 트라우마를 치유하고, 더 나은 미래를 위한 가장 근본적인 대책"이라고 강조했다.

앞서 14일 연세대 교수 131명은 '슬픔을 안고 공동체 회복의 실천으로'라는 성명서를 발표, 세월호 침몰 사고 원인 규명과 책임자 처벌 등을 촉구했다. 이들은 성명서에서 "국가라는 제도의 침몰과 책임의식이라는 윤리와 양심의 침몰을 함께 목격했다. 참사와 관련한 모든 책임은 준엄한 법의 심판을 받도록 해야한다"며 "스승의 날을 맞아 우리의 스승답지 못한 모습을 뒤돌아보며 가슴 속 깊이 뉘우치고자 한다"고 밝혔다.

15일 오후에는 민주화를위한전국교수협의회와 전국교수노동조합, 한국비정규교수노동조합이 주최한 ‘교수단체 긴급 공동토론회’가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에서 열렸다. 이 자리에서 교수들은 세월호 참사의 근본원인과 성찰적 대안을 논의했다.

아래는 경희대 교수들의 스승의 날 반납 성명서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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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승의 날을 반납합니다

세월호 참사를 교육 혁신의 계기로 삼고자 합니다.

저희는 오늘 스승의 날을 반납합니다. 어버이날, 카네이션을 달지 않으신 어버이들과 같은 비통한 심정으로 오늘 하루, 스승의 자리를 돌아보고자 합니다. 지난 4월 16일 세월호 침몰 이후 저희들은 강의실에 들어서기가 힘들었습니다. 학생들을 바라볼 면목이 없었습니다. 배가 가라앉는데도 어린 학생들에게 '가만히 있으라'라는 말만 반복한 선박 회사 직원이 바로 저희들이 아니었던가 하는 자괴감 때문이었습니다.

세월호 사태의 원인을 진단하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우리 사회의 온갖 부조리와 모순이 뒤엉킨 결과일 것입니다. 권력 누리기에만 골몰하는 뻔뻔한 정치권과 관료사회, 오로지 이윤만을 추구하는 야비한 기업과 시장, 타인을 존중할 줄 모르는 비정한 사회에서 이런 사건 사고가 나지 않는다면 오히려 이상할 것입니다. 세월호를 침몰시키고, 또 침몰한 배에서 단 한 생명도 구해내지 못한 주범은 '돈이 전부다' '권력이 최고다'라는, 그 누구도 예외이기가 쉽지 않은 사회적 합의일 것입니다.

스승의 날 아침, 저희들은 교육자로서 조금 다른 관점을 제시하고자 합니다. 세월호 참사의 보다 근본적인 원인은 교육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건국 이래 우리의 교육이 제대로 이뤄져 왔다면, 그리하여 사회가 온전한 개인, 건강한 시민들로 구성되었다면, 청해진과 같은 선박회사는 간판조차 내걸 수 없었을 것입니다. 정부의 초기 대응 또한 이처럼 불가사의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기레기 언론'이란 용어도 상상할 수 없었을 것이고, 희생자와 유족에 대한 일부 인사들의 패륜적 언사도 감히 이어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세월호에서 '어른의 말'을 들은 학생들 대부분이 목숨을 잃고 말았습니다. 어른의 말을 들으면 생명을 부지할 수 없는 사회, 이런 사회는 명백하게 실패한 사회입니다. 어른의 말을 듣지 않아야 살아갈 수 있는 사회, 이런 사회는 교육 자체가 불가능한 사회입니다. 교육은 한마디로 어른의 말입니다. 어른의 말에 논리와 의미를 부여하고, 그것을 통해 새로운 어른을 길러내는 것입니다. 그런데 세월호와 함께 어른이 설 자리를 잃었습니다. 교육의 토대가 붕괴됐습니다. 어른과 아이, 부모와 자녀, 선생과 학생 사이의 연결고리가 끊어졌습니다. 이처럼 광범위하고 심층적인 단절은 없었습니다.

세월호가 우울, 분노, 허탈, 절망의 대명사가 되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여기서 주저앉을 수는 없습니다. 애도하고 추모하고 서로 위로하며 기어코 다시 일어서야 합니다. 어른이 살아나야 합니다. 어른이 어른의 자리에서 우리의 아이들을 미래의 당당한 어른으로 키워내야 합니다. 세월호 참사로 고통을 겪고 있는 모든 이들을 위한 최선의 애도는 교육을 바로 세우는 것입니다. 교육을 혁신하는 것이야말로 미증유의 사회적 트라우마를 치유하고, 더 나은 미래를 위한 가장 근본적인 대책일 것입니다.

세월호 참사를 교육 혁신의 계기로 삼아야 합니다. 공감하고 대화하는 능력을 재점검하고, 협동하고 배려하는 마음을 극대화하면서 변화를 일으켜야 합니다. 교육의 정상화는 실로 '거대한 전환'이 아닐 수 없습니다. 거대한 전환은 사회 전체의 공감과 참여가 있어야 합니다. 모든 어른이 스승이 되어야 합니다. 모든 마을과 도시가 교실로 거듭나야 합니다. 사회 전체가 좋은 학교로 바뀌어야 합니다. 스승의 날 아침, 저희들은 우리 사회의 모든 어른들과 함께 학생들 앞에서 떳떳하고 싶습니다.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교육이 사회의 뿌리입니다. 정치를 정치답게, 경제를 경제답게 하는 토양이 교육입니다. 스승으로서 고개를 들기 힘든 스승의 날 아침, 교육의 미래를 위해 다음과 같이 제안합니다.

- 교육은 사회적 불의에 적극 개입하고 해결책을 모색해야 합니다.
- 교육은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고 연대하며 책임감 있는 민주 시민을 키워내야 합니다.

- 교육에서 경제 논리, 기업 논리, 힘의 논리를 최대한 배제해야 합니다.
- 경쟁 위주의 교육 정책을 근본적으로 바로잡아 교육을 정상화해야 합니다.
- 교육 정상화를 통해 배려하고 존중하는 사회를 만들어나가야 합니다.
- 교육 정상화를 통해 '국민을 섬기는 국가'를 건설해야 합니다.

2014년 5월 15일

세월호 참사를 교육 혁신의 계기로 삼고자 하는 경희대학교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자 모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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