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8월부터 적용 “법인 교비에서 지출 불가피”

사학연금·법정부담금도 이미 ‘대학몫’… 사립대 ‘인건비 눈덩이’
교비 대납 한계 다다른 대학들 ‘교직원 구조조정’ 자구책 내놔

[한국대학신문 최성욱·정윤희·이재 기자] 오는 8월 대학 교직원 퇴직자부터 적용되는 ‘퇴직수당 40% 지급’ 규정 탓에 사립대 예산팀의 시름이 깊다. 그간 정부와 사립학교교직원연금공단(사학연금공단)이 전액 보조해오던 교직원 ‘퇴직수당’의 40%를 올해부터는 대학, 정확히는 법인이 지급해야 하기 때문이다. 1993년 이후 퇴직수당을 사립대가 부담하긴 21년만이다. 사학연금공단은 퇴직수당 전액을 퇴직자에게 지급한 뒤 법인에 구상권을 청구하는 방식으로 40%를 회수할 계획이다.

교육부의 ‘2012년 사립대 교직원 퇴직금 현황’에 따르면 전체 사립대의 퇴직수당 총액은 3337억원에 달한다. 2012년으로 치자면 이 중 40%인 1335억원을 법인이 부담해야 한다. 사립대 법인들은 ‘여력이 없다’는 이유로 교비(회계)에서 대납할 가능성이 크다는 게 대학 관계자들의 관측이다. 이렇게 되면 퇴직수당만큼 학생교육에 투입할 재정이 줄어드는 악순환에 빠져들게 된다.

부산의 사립 A대는 오는 8월 교수 11명과 직원 7명이 퇴임한다. 이 대학 교수 1인당 퇴직수당은 약 3800만원이다. 대학법인 부담률 40%를 계산해 보면 교수 11명의 퇴직수당에만 총 1억6000만원이 소요될 전망이다. A대 예산팀장은 “여지껏 내지 않았던 비용을 지출해야 하니 부담이 크다”며 한숨을 쉬었다.

A대 팀장이 말하는 ‘내지 않던 비용’은 지난해 생겼다. 교육부는 사립학교교직원연금법(사학연금법) 시행령을 개정해 그간 학교의 사정이 열악해 정부가 부담해온 퇴직수당 중 40%를 학교경영기관(법인)이 내도록 했다. 이 시행령은 지난 2월 국회를 통과했고 오는 8월 퇴직자가 첫 대상자다.

■‘사학연금·법정부담금도 못냈는데…’ 헉헉대는 사립대 법인= 문제는 법인이 교직원들의 퇴직수당을 감당할 여력이 없어 등록금으로 조성된 교비회계에서 지출할 가능성이 있다는 점이다. 학생들 교육지원에 쓰여야 할 교비가 교직원에 대한 법인대납금으로 쓰이는 셈이다.

일부 사립대가 사학연금법을 어기고 교직원의 ‘사학연금 개인부담금’을 교비로 대납해 오다가 지난해 7월 적발돼 말썽을 빚기도 했다. 당시 교육부는 “교육지원에 쓰여야 할 교비를 부적절하게 썼다”고 지적했다.

법인이 내야할 ‘법정부담금’을 교비로 전가해온 관행도 고질적인 문제다. 수천만원에서 100억원대의 법정부담금을 납부할 여력이 없는 대학들은 그간 교비로 대납해왔다. 법정부담금의 ‘교비대납’ 관행이 심화되자 교육부는 지난 2012년부터 교육부 승인을 거쳐 법정부담금을 교비로 낼 수 있도록 허용해주기도 했다.

본지 취재결과 대다수 사립대는 퇴직수당을 교비로 지급하지 않으면 마땅한 방법이 없다는 입장이다. 사립대 예산팀 담당자들은 그러나 “퇴직수당을 교비에서 지급한다고 해도 어찌됐든 쉽지는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부산의 B대 담당자는 “학내 조경관리나 천장보수작업 등 리모델링 비용을 우선 줄일 계획”이라고 밝혔다. 1년 단위로 짜여있던 건물 개·보수 기준을 2년 이상으로 늘려 비용을 충당하겠다는 것이다. 일부에서는 홍보비나 업무추진비와 같은 소모성 지출을 더 줄여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장학기금을 전용하려는 움직임도 있다. 그러나 장학기금은 법인 이사회 승인과 교육부 보고 등 절차가 복잡할뿐더러 절차를 모두 이행해도 장학 규모가 줄어들면 각종 정부 재정지원사업에서 불이익을 보기 때문에 이 같은 방법으로 예산을 확보하기는 어려울 전망이다.

■교비대납 한계오면 교직원 구조조정 가속화될 전망= 이처럼 사립대 예산팀은 기존에 없던 교직원 퇴직수당을 마련하려고 ‘교비 쪼개기’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그러나 정작 교비회계의 상당부분을 부담하는 학생과 학부모는 이 같은 상황을 알지 못하고 있다. 퇴임하는 교직원들 역시 사학연금공단으로부터 퇴직수당을 직접 수령하기 때문에 교비가 쓰여졌는지 여부는 관심 밖이었다.

박진환 경기대 법인사무처장은 “지난 5년간 교직원 임금이 동결됐다. 발전기금 모금도 쉽지 않은 터라 추가 재정을 확보할 뾰족한 수가 없다”고 말했다. 이 대학은 올해 교수 6명과 직원 3명이 퇴직한다. 이들의 퇴직수당 40%를 법인이 부담할지 대학이 부담할지 결정짓지 못한 채 발만 동동구르고 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선제적으로 교직원 구조조정에 나서는 대학들도 있다. 경기지역의 C대는 지난 4월부터 학내 전 직원에게 명예퇴직을 권고하고 있다. 이 대학은 산학협력선도대학육성사업(LINC) 등 대규모 정부 재정지원사업의 지원을 받다가 탈락했다. 이런 대학의 경우에는 특히 ‘교직원 구조조정’ 카드를 눈여겨 본다. 실제로 최근 2단계 LINC사업에서 탈락한 대학은 오는 2학기 이전에 산학협력단 직원과 산학협력중점교수를 해임하거나 전보할 계획을 속속 내놓고 있다. 

교육부가 퇴직수당 등 사립대에 지원해오던 인건비를 중단키로 하면서 교직원 구조조정을 유도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한남대 조성기 기획예산팀장은 “퇴직수당 40%를 교비로 충당하기로 해 예산편성 시 어려움은 있었다. 그러나 퇴직수당 부담금은 정원감축 등 대학이 당면한 구조조정 요구에 비하면 미비한 수준”이라고 말했다. 이 대학은 올해 교수 6명과 직원 4명이 퇴임한다. 그러나 이들의 퇴직수당보다 입학정원 감축으로 인해 대학수입이 줄어든 것이 교직원 구조조정의 직접적인 원인일 것이란 주장이다.

이견도 있다. 오는 8월 교수 4명이 퇴임하는 대전의 사립 D대 홍보팀장은 “대학에서 지출하지 않던 퇴직수당을 내야 하니 재정 부담이 가중됐다. 그런데 이런 항목들이 계속 추가되면 현재 근무 중인 교직원들의 월급을 삭감하거나 교직원 구조조정이 불가피할 것”이라고 말했다.

경기지역 E대 예산팀장도 “명예퇴직 등 교직원 감원을 곧바로 실시하진 않더라도 2명이 퇴직하면 1명을 신규채용하는 식으로 채용을 줄이면 결국 교직원 구조조정이 시작되는 셈”이라며 “퇴직수당은 대학이 감당하기엔 액수가 만만찮아서 교직원 구조조정을 촉진시킬 것”이라고 예상했다.

[‘퇴직수당’ 정부가 대신 내온 이유는?]
1992년 사학연금법 개정…정부 21년간 총 3조1682억원 내줘

국가가 사립대 퇴직자들의 ‘퇴직수당’ 전액을 떠맡기 시작한 것은 1994년부터다. 재정이 열악한 사립대가 교직원의 퇴직수당을 주지 못해 허덕이자 교육부가 나선 것이다.

1992년 개정된 사립학교교직원연금법 시행령에는 ‘퇴직수당 지급에 소요되는 비용 중 제1항에 따라 공단이 부담하는 금액을 제외한 나머지 금액은 학교경영기관 및 국가가 이를 부담하되, 학교경영기관(학교법인)의 재정상태가 개선될 때까지는 국가가 이를 부담한다’고 명시돼 있다.

개정과정에서 교육부는 논의과정에서 정부가 퇴직수당 전액을 부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당시 전국의 대학은 247곳으로 현재 대학수의 3분의 2 수준이고, 입학정원도 38만명으로 지금의 56만명에 비해 18만명이나 적었다. 무엇보다 등록금이 100만~200만원 수준으로 올해 평균 등록금인 666만원의 6분의 1에서 3분의 1수준이다.

교육부의 최초 개정안은 경제기획원(현 기획재정부)의 반대로 한 차례 무산됐다. 경제기획원은 교육부 개정안이 퇴직수당의 ‘사용자 부담원칙’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반대했다. 대신 학교법인의 재정여건이 호전될 때까지 잠정적으로 지원하자고 주장했다. 대학의 퇴직수당을 법제화 하는 과정에서 등록금 전용 등 부작용은 거론조차 되지 않았다.

20여 년이 지나고 사립대의 퇴직수당은 정부 세출에 큰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시행령 통과 이듬해인 1993년 당시 전체 퇴직수당 400억원 중 120억원을 부담했던 학교법인은 이듬해부터 최근까지 퇴직수당을 단 한 푼도 내지 않았다. 그간 퇴직수당은 2012년 3337억원까지 불어났고 정부의 누적부담액은 총 3조1683억원에 달한다.

감사원이 2011년 퇴직수당 국고지원이 부적정하다고 지적하자, 교육부는 대학이 40%를 부담하도록 하는 시행령 개정을 서둘렀다. 지난 2월 국회를 통과한 이 개정안은 3월 1일부터 시행돼 오는 8월 사립대 퇴직자를 대상으로 처음 적용된다.

서남수 교육부 장관은 지난해 10월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결산 질의에서 “사립대의 퇴직수당이니까 학교가 부담하는 것이 원칙이다. 다만 대학의 재정여건이 좋지 않으니 정부와 대학이 함께 부담하는 것을 전제로 분담률을 결정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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