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는 정치가가 기쁨과 풍요로움을 가져다 줄 것이라 기대하면서도 실상 그 기대를 실현시켜주는 이를 찾기는 어려웠다. 우리 시대에 그런 정치가를 만날 수 있을까. 역사정치학자 진덕규 교수와 함께 이 시대의 진정한 정치가의 역할과 모습을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져보자. 

1. 아테네의 시인 정치가 

몇 천 년 전의 위대한 인물치고 신화로 치장되지 않은 사람은 찾아보기 힘들다. 솔론도 후대 사람에 의해 채색될 수밖에 없었던 인물이었다. 정확한 역사적 기록이 없으니 생몰연대도 기록에 따라 다르며, 필요에 의해 달리 해석되기도 하는 인물이 솔론(Solon, BC 638년~BC 558년)이다. 그러나 그가 고대 아테네의 시인 정치가로 그리스의 7현인이었던 것은 분명하다. 그의 이름이 위대한 정치가의 반열에 오르게 된 것은 “솔론의 개혁” 때문인데 이것이야말로 혁명적인 개혁, 즉 개혁이라는 이름에 가장 걸맞은 혁명이었다.  

그가 살던 시절 아테네는 정치 사회적 혼돈기로 가난한 사람들과 부자들 간에 계급 대립이 극심했었다. 부자는 가난한 사람은 “천성이 게으른 사람”이라고 내몰았고 가난한 사람은 부자는 “승냥이보다 더 간악한 인물”이라며 경원했다. 이렇게 서로가 서로를 배격했기 때문에 이들은 같은 하늘 아래 산다는 것만으로도 굉장히 힘이 들었다. 이를 바로 잡기 위해서는 혁명적인 대변혁, 즉 본질적인 변화를 이루면서도 피를 흘리지 않는 “혁명적 개혁"이 절실했는데 이러한 요구에 맞는 새로운 법으로 세상을 완전히 뒤집었던 것이 바로 “솔론의 개혁”이었다.

2. 부채의 완전 탕감

솔론은 상층 명문가 출신으로 어릴 때는 시인이 되기 위해 책을 읽었고 스승을 찾아 가르침을 받기도 했다. 그는 시를 창작하기 위해 시상에 잠겨 지냈고 서책을 뒤적이는 것만으로도 “지극히 행복한 일상”을 즐길 수 있었다. 그러나 점점 집안이 쇠락하자 그는 무역업에 종사하면서 재산을 모으기도 했다. 또 외국과 교역하면서 이름난 현인이나 지식인의 지도를 받으면서 그들의 저서를 읽기도 했다. 기원전 594년에는 아르콘, 즉 집정관으로 선출되었는데 이는 그의 지식과 지도자다운 결단력 덕분이었다. 

그는 아테네의 계급 갈등을 극복하기 위해 “가난한 사람들의 부채를 전액 탕감”해 주는 놀라운 조치를 단행했다. 이것은 “솔론의 개혁” 중 하나인데 아리스토텔레스도 “가난한 사람들이 진 모든 빚을 탕감해 준다는 것은 위대한 용단이었다.”고 말했다. 빚 때문에 외국에 노예로 팔려간 사람들도 풀러났고 노예매매 행위도 금지되었다. 그러나 부자들은 솔론의 이런 조치에 거세게 항의하면서 그것은 사유재산을 침해하는 “산적과도 같은 야만적인 행동”이라고 맹렬히 비난했다.

3. 개혁의 새 세상

솔론은 아테네를 위해 또 다른 법을 제정하기도 했다. 가령 “국가를 전복하기 위해 저지른 행동” 이외에 정치적인 이유만으로 구속된 사람들을 석방하고 그들의 권리도 복권시켜주었다. 그는 “정치적인 주장은 구속의 대상이 아니라 토의의 주제”라고 강조했다. 또 아테네의 자유민을 재산 정도에 따라서 (1)귀족계급 (2)기사계급 (3)농민계급 (4)노동계급의 4계급으로 구분한 후 각 계급에 따라 과세 비율이나 참정권도 다르게 규정했다. 예를 들면 집정관은 첫 번째 계급에서만 선출될 수 있게 했는데 사람들은 이는 부유층을 위한 금권정치라고 비판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아무래도 부유층은 정치활동에서 뇌물을 받지 않을 가능성이 더 큰 게 사실!”이라면서 항변했었다.

이어 중산층이 참여하는 400인회를 창설하고 민회인 에클레시아(Ecclesia)에는 하층을 참여시켰다. 솔론은 부유층의 횡포나 권력 남용을 차단하기 위해서 시민들로 하여금 제비뽑기로 6000명을 선출해서는 최고 법원인 헬리아이아(Heliaea)를 설치했는데 이 법원에서는 살인과 반역죄를 제외한 모든 범죄자를 재판하게 했다.

4. 시민문화의 기반

솔론이 특별히 유념했던 것은 시민문화였다. 그는 민주주의는 높은 시민문화에서만 가능하다고 확신했기 때문에 시민들이 게으름을 피우거나 마구 술을 먹고 방탕하게 생활하는 것을 엄하게 다스렸다. 특히 결혼한 사람들이 불륜을 저지르고 간통현장에서 붙잡힐 경우 남자는 즉각 죽여도 무방하다고 공포했다. 또한 체육경기 중 상대방을 심하게 모욕하는 사람도 처벌했으며, 국가 방위에 참전해서 전사한 집안의 아이들은 국가가 맡아 교육시키게 했다. 공공성이 결여된 사회에서 민주주의가 뿌리 내릴 수 없다는 솔론의 믿음은 확고했으며 그것은 지금도 여전히 유효한 논리다.

그는 22년간 집정관으로 활동했으며 68세이던 기원전 572년에 일체의 공직에서 은퇴한 후 “새 문명의 통치방식을 연구”하기 위해 이집트와 근동으로 여행을 다니다 80세에 키프러스에서 사망했다. “솔론의 개혁”이 바탕이 되어 그 뒤 클레이스테네스(Cleisthnes)에 의해 아테네 민주주의도 도약적인 발전을 이룩할 수 있었고 마라톤 해전과 살라미스 해전에서 페르시아 군대의 침략도 막아낼 수 있었다.(끝)


*** 진덕규 교수는 ...
이화여대 명예교수. 역사정치학자. 현재는 (재)한국연구원 이사장으로 있다. 주요 저서로는 <한국정치의 역사적 기원>, <한국현대정치사서설>, <한국정치와 환상의 늪>, <권력과 지식인>, <민주주의의 황혼> 등이 있다. 

<한국대학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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