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주 콘텐츠 구입해 제공 '남는 장사' 입소문에 난립

국가평생교육진흥원에 로비 ‘발각’, 검찰 압수수색
미달자 학점부여, 콘텐츠 돌려쓰기 등 질관리 안돼 

[한국대학신문 이현진 기자] 검찰이 지난 10일 9개 온라인 학점은행기관을 대상으로 압수수색에 착수했다. 온라인 학점은행기관 9곳이 관리감독 기관인 국가평생교육진흥원에 금품을 제공하는 등 로비를 한 정황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앞서 검찰은 서울종합예술직업학교가 국가평생교육진흥원을 상대로 로비한 정황도 포착해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

전국 학점은행기관은 현재 567곳. 지난 1998년 학점은행기관이 설립된 이래 학사 및 전문학사 학위 과정 수강생은 81만 명에 달한다. 이 중 37만4000여 명이 학위를 취득했다.

그러나 최근 이들 중 몇몇 기관이 자격 미달자에게 학점을 부여해 학위를 수여하고, 외주 업체에서 사들인 똑같은 온라인 교육 콘텐츠를 각기 다른 학점은행기관에서 제공하면서 ‘학점·학위위장사'라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2·4년제 학위를 수여하는 기관인만큼 자체 제작물 비율을 높이고 교육 차별성을 갖춰야한다는 지적이다. 같은 콘텐츠를 사들여 제공할 바에는 당초부터 학점은행기관 설립의 벽을 높이거나 학점은행기관을 설치할 것이 아니라 정부기관이 직접 공급해 질관리를 했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 학점은행기관이란.

학점은행제는 지난 1995년 5월 대통령 직속 교육개혁위원회가 5.31 교육개혁을 통해 ‘열린 평생학습사회의 로의 발전’을 위해 처음 제안됐다. 이후 ‘학점인정 등에 관한 법률’ 등 관련 법령을 제정하고 1998년 3월부터 시행 중이다.

대개 '평생교육원' '직업전문학교' 등의 이름을 걸고 운영되고 있다.  일반적으로 취업이나 국가고시, 자격시험 등의 자격 기준을 맞추고자 하는 수강생이 몰린다. 특히 온라인만으로 학사 학위를 취득할 수 있어 직장인들이 주로 찾는다.

사설로 운영되는 학점은행기관의 관리·감독을 위해 교육부 산하 공공기관인 국가평생교육진흥원이 교육부의 위임을 받아 학점은행 운영과 독학학위검정 등의 업무를 맡고 있다.

진흥원은 교육훈련기관에서 개설하는 학습과목에 대하여 대학(교)에 상응하는 학점을 부여할 수 있는지를 평가해 인정하는 '평가인정'을 실시한다. ‘학점인정 등에 관한 법률’ 제3조에 따라 △기본요건 △운영여건 △학습과목 등의 기준을 갖췄는지 평가한 뒤 적합한 기관에게는 설립인가를 내준다.

이 때 기본요건에는 △시설·설비 △교․강사 △교육과정, 운영여건에는 △ 기관운영 △행정, 재정 △시설활용 △교육훈련기관의 특성, 학습과목에는 △수업목표와 교육과정 △학습자·학습과목의 질 관리 방안 등이 각각 평가 지표로 쓰인다.

■우후죽순 생겨난 학점은행기관…‘A등급’은 5%미만 = 당초 학점은행기관은 출석을 기반으로 하는 형태로 생겼다. 설립 초기인 1998년 당시 61개 기관이 총 274개 과목을 평가인증을 받으면서 부터다. 이후 2004년 6개 기관이 42개 과목에서 원격기반 학습의 평가인정을 받은 후 온·오프라인을 기반으로 한 학점은행기관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 2009년에는 323기관, 2012년에는 360개 기관이 평가인정을 받고 올해 전국적으로 567개 기관이 학점은행기관으로 운영되고 있다. 이들 기관은 현재 총 2만 4716개 과목을 설치하고 있으며 학사 108개, 전문학사 109개 전공이 개설돼 있다.

진흥원은 ‘패스’ ‘패일’로 진행했던 평가인증을 지난해부터 A·B·C·D등급으로 매기고 있다. 온라인 학점은행기관의 경우 인증의 유효기간이 4년제는 △A등급(5년) △B등급(4년) △C등급(3년) △D등급(탈락)으로, 2년제는 △A등급(3년) △B등급(2년) △C등급(1년) △D등급(탈락)으로 나뉜다.

올해 진흥원이 실시한 평가인증에 따르면, A등급을 받은 기관은 5% 미만이다. A등급을 받은 18개 기관 중 원격기반 기관은 단 3곳으로 나머지 15개 기관은 모두 오프라인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진흥원 관계자는 “기존에는 평가인증에 통과한 기관의 경우 유효기간을 4년으로 두고 4년 뒤에는 다시 재인증 받는 식으로 운영됐다”며 “지난해부터는 A등급부터 D등급까지 나눠 평가를 하고 있는데 A등급을 받은 기관은 5% 미만”이라고 밝혔다.

■“사다가 쓰다 보니” 다른 기관서 같은 강의 제공 = 일부 온라인 학점은행기관들이 동일한 콘텐츠를 제공하고 있다는 점도 문제로 제기된다. 같은 업체로부터 강의 콘텐츠를 구입해 수강생들에게 제공한 것이다. 기관 측은 양질의 콘텐츠를 제공하기 위해 외주업체에 맡겨 콘텐츠를 들여온다는 입장이지만 일각에서는 기관의 역할이 ‘학점팔기’에 그쳤다는 지적도 나온다.

국내 567개 학점은행기관 중 온라인을 기반으로 운영되고 있는 곳은 106곳이다. 이 중 일부 기관이 제공하고 있는 콘텐츠가 중복된다. 진흥원에 따르면 지난해 전국 온라인 학점은행기관 온라인 강의 중 70% 가량이 자체 제작물이다. 나머지는 사실상 교육을 유통하는 단계에 그치는 셈이다.

국가평생교육진흥원 평가인증실 관계자는 “일부 기관들은 자체 제작에 드는 인력·장비 등의 비용 부담을 고려해 여전히 외주 콘텐츠를 구입하고 있다”며 “상황이 이렇다보니 수십개 기관에서 하나의 콘텐츠를 사들여 같은 강의를 제공하고 있는 문제가 생긴 건 사실”이라고 말했다.

평가인증 평가위원을 맡고 있는 한 대학 교수는 “특히 설립 초기에는 대부분이 외주제작 콘텐츠를 구입해 사용했기때문에 ‘남는 장사’라는 이야기가 퍼졌고 이를 알게 된 교육 관계자들이 퇴직 후 학점은행기관 사업을 시작한 사람도 적지 않다”며 “학위를 주는 수십개의 기관에서 똑같은 강의를 제공한다는 것은 교육의 차별성도 없을뿐더러 굳이 500여개의 기관을 학점은행기관으로 인가할 이유도 없지 않느냐”고 지적했다.

사이버대처럼 콘텐츠를 공유할 수 없는 장치가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왔다. 이 교수는 “사이버대의 경우 온라인 강의를 외주로 제작하더라도 다른 사이버대와 공유할 수 없도록 돼 있다. 다른 대학은 해당 콘텐츠를 구매할 수 없게 된다. 학점은행기관도 대학 학위를 수여하는 만큼 이같은 제도를 확립해야한다”고 말했다.

■ ‘짜고치는 고스톱’ 부실 운영·학점 장사 팽배…檢,  진흥원 등 압수수색  = 학점은행기관에서 교육과정이 부실하게 이뤄지는 곳도 적지 않다. 국가평생교육진흥원이 실시한 정기·수시 사후관리 결과에 따르면, 지난 3년 간 시정조치를 받은 곳은 58곳에 달했다. 온·오프라인 학점은행기관 등 교육시설이 43건, 대학부설 평생교육시설도 8곳이 적발됐다.

특히 시험 문제 유출과 답안 제공 등의 문제가 가장 많이 지적됐다. 서울 금천구의 A기관과 서울 용산구의 B기관은 이메일을 통해 시험문제와 답안을 사전에 제공했다가 적발됐다. 시험답안지를 대리 작성하거나 내용이 동일한 시험답안지에 상이한 점수 부여하는 등의 부실 운영이 지적된 기관도 있었다. 또 수업 미출석자에게 성적을 부여했다가 결국 허위 이수한 해당 학습자 5명이 성적(학점) 취소를 당하기도 했다.

학습자 모집에 꼼수를 부렸다가 적발된 경우도 있었다. 서울 은평구에 위치한 C교육원은 진흥원으로부터 평가 인정을 받은 사이트가 아닌 다른 사이트를 개설해 학습자를 모집했다가 적발됐다. 그 과정에서 '수강 시 과제물 자료 및 시험 예상문제 제공함'으로 학습자 모집 안내하기도 했다.

진흥원의 적발을 피해 제 3의 사이트를 이용한 사례는 더 있었다. 대행업체를 통해 학습자를 모집하기도 했다. 서울 동작구의 D교육원은 개인대행업자를 고용해 학습자모집 서브사이트 운영하고 과대광고를 일삼다가 적발됐다. 서울 강남의 E교육원도 대행업체를 통한 홍보 및 학습자 모집 대행을 하다가 걸렸다.

이들 기관들은 적발 뒤 대부분 평가인정 불허조치를 받고 신설 과목 신청 대상에서 제외됐다.

최근 평생교육진흥원 전 원장과 일부 학점은행기관을 대상으로 한 검찰의 압수수색은 진흥원과 일부 기관의 유착관계에 대한 의혹 때문이다. 검찰은 지난 2010년 11월부터 지난 4월까지 원장으로 재직한 전 원장이 학점은행 지정·운영과 관련해 특혜를 주면서, 서울예술종합직업학교 이사장 등으로부터 금품을 받은 것으로 의심하고 있다. 또 일부 기관은 평가인정을 받는 과정에서 A등급을 받으려고 진흥원에 로비를 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평생교육진행원은 교육부의 위임을 받아 학점을 인정하는 등의 업무를 하는 교육부 산하 기관인 만큼 향후 수사 대상이 교육부까지 확대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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