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 분야 BK21 포럼 개최, "정성평가"도입 강조

[한국대학신문 신나리 기자] “인문학은 등수를 매기는 학문이 아니다. 인문학의 정신이란 다양성을 인정하는 것 아닌가. 국제학술지에 게재했다고 해서 가산점을 주는 것은 우매하고 조잡한 조치다. 다작(多作)이 아니라 논문의 질을 평가하는 개선안을 마련해야 한다.”

29일 오후 한양대 HIT 대회의실에서 열린 ‘BK21 포럼’에서 인문학자들은 ‘다양성을 인정하는 평가지표’를 강조했다.

▲ 손동현 한국교양기초교육원 교수가 'BK21+ 사업 인문학 분야 평가 개선안'을 주제로 발표하고 있다.한명섭 기자
이날 열린 포럼은 BK21의 중간평가에 대비한 평가 개선안을 마련하기 위해 교육부가 주최하고 한국연구재단이 주관했다. 인문학 분야의 평가 개선안을 전체 진행한 손동현 한국교양기초교육원장은 논문 평가 때 정성평가를 도입할 것과 국내·외 학술지 게재의 차별을 없애는 개선안을 제시했다.

■ 논문의 수만 따지다 인문정신 사라진다 = 인문학자들은 논문 수로 평가하는 방법은 다양성을 인정하는 인문학 정신에 반한다고 지적했다.

이종관 성균관대(철학) 교수는 논문의 수를 따지는 ‘정량평가’ 방식이 결국 인문학의 사회적 소통을 가로막고 인문적 상상력을 사라지게 한다고 강조했다. 이 교수는 “논문 중심의 양적 평가 장치를 도입해 논문의 수는 증가했지만 이것이 인문학 성찰과 인문학의 사회적 실천을 가져오지는 못했다”며 “연구자들은 논문을 써야 한다는 압박감에 인문정신을 담은 논문과 연구에 대한 고민을 전혀 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매년 일정 편수 이내의 논문만을 연구 성과로 인정하는 현재의 평가 방식은 연구업적의 종류가 다양하고 저술과 고전번역이 중요한 ‘인문학’의 학문적 특징을 담아내지 못한다는 지적이다.

이에 전문학술서로 인정받은 업적물과 엄정하고 치밀한 주석을 가한 고전은 가산점을 줘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위행복 한양대(중국학) 교수는 인문학은 중장기적 기획과 단행본 저술 쪽으로 연구력을 모아야 한다며 다양한 형태의 저술을 연구업적으로 인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위 교수는 “인문학의 연구 성과는 연구업적의 종류가 다양하며, 저술의 비중 역시 높다. 학술지 게재를 위주로 평가하는 지금의 방식은 인문학 연구를 왜곡시킨다”며 “전문학술서로 인정받을 경우에는 학술지게재 논문보다 최대 3배의 가중치를 부여하고 고전과 전문연구서의 번역도 역시 가중치를 반영해야 한다”고 말했다.

■ ‘국제화’보다 ‘한국인문학’ 복원해야 = ‘국제화’라는 이름으로 외국 학술지에 게재됐을 때 가산점을 주는 기존의 평가에 대한 개선안도 나왔다.

손동현 한국교양기초교육원장은 인문학과 고유문화와의 연관성을 고려해 평가해야 한다고 말했다. 손 원장은 “모국어가 가진 인문적 가치를 인정해야 한다. 국제어로 쓴 논문은 한국인문학보다는 해당 국제어권의 인문학에 이바지한 것이다”며 “국제 학술지에 게재했다는 이유만으로 양적 평가에서 가산점을 부여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밝혔다.

▲ 지정토론을 하고 있는 토론자들. 한명섭 기자
지난해 5월 BK21 인문사회분야의 연구업적별 평가기준을 보면, A&HCI, SSCI, SCI 등 국제 저명 학술지에 논문이 게재될 경우 논문 1건당 3편으로 인정해 가산점을 주고 있다.

임경석 성균관대(사학) 교수는 이 때문에 인문학자들이 국내의 학문적 이슈를 외면하고 영미권 학계의 이슈만을 쫓게 하는 부작용을 낳았다고 지적했다. 인문학의 정체성을 확립하기 위해서라도 국내와 국제 학술지에 게재된 논문의 인정편수를 동등하게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박찬길 이화여대(영문학) 교수 역시 국내 인문학적 생태계를 보전하고 발전시키는 방향으로 평가 지표를 개선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박 교수는 “인문학 분야는 세계적으로도 토착적 학문전통이 중시되고 있는 분야”라며 “한국적 인문학의 세계화는 어디까지나 한국어로 이루어지는 한국 고유의 연구 생태계를 활성화하는 방향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교육부는 인문학, 공학 등 학문분야별로 BK21 플러스 사업의 평가지표 개선을 논의하는 포럼을 거친 뒤 공식적인 개선안을 밝힌다는 입장이다. 이날 포럼에 참석한 김천홍 대학재정지원과장은 “BK21 중간평가 개선안에 대해 정해진 것은 아무것도 없다"라며 "학계의 특성과 개선방향을 모두 들어본 다음 이를 최대한 반영한 개선안을 발표할 것”이라고 말했다.

교육부는 인문학 포럼을 시작으로 30일에는 공학 분야를, 내달 4일에는 융·복합, 11일에는 농림수산해양 분야 등 총 7차례에 걸쳐 BK21 포럼을 개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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