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지관 (본지 논설위원/덕성여대 교수, 한국대학학회장)

한국 교육을 멍들게 하는 가장 큰 요인 중의 하나가 대학의 서열이 구조화되어 있는 현실임을 부정할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전국 대학들이 서울의 세칭 일류대학에서부터 서울 및 수도권 대학, 지방소재 국립대, 지방 사립대 식으로 순위가 매겨지고, 그것은 획일적으로 시행되는 입시제도 탓에 더 굳어진다. 어떤 일에서든 자질이나 실력에 따른 순위가 생기는 것은 자연스러울 수 있고, 대학도 그 점에서는 예외가 아닐 것이다. 그러나 현재 한국 대학의 서열구조는 그런 불가피한 경쟁에 따른 순위가 아니라 인위적으로 형성되고 고착돼 거의 재생산구조까지 갖춘 하나의 체제가 됐다.

과거부터 존재하던 대학서열이 지금처럼 서울 중심 체제로 굳어진 시점은 1980년대로 볼 수 있다. 이 당시 고등교육 인구가 급격히 팽창하는 가운데 서울지역은 정부의 수도권 인구유입 제한정책으로 대학정원이 통제돼, 학생들의 3분의 2 이상이 수도권을 비롯한 지방으로 내려갈 수밖에 없었다. 이와 동시에 지방학생들의 서울진입 희망도 더 커져서 서울소재 대학에 진학하기가 과거보다 몇 배 더 어려워졌다. 결국 서울에서의 거리에 따라 대학의 서열이 매겨지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체제화된 서열구조가 미치는 해악은 엄청나다. 학벌사회의 폐해를 더 심화시키고 교육현장을 높은 순위 대학에 진학하기 위한 입시경쟁의 도가니로 만들고 있다. 이에 기생해 공교육 규모에 버금가는 사교육 시장이 형성돼 교실붕괴가 일상이 된다. 대학이라고 이 지옥에서 벗어나 있지 않다. 대학들은 조금이라도 서열의 상위에 위치해서 살아남으려고 허상에 불과한 평가지표 높이기에 편법까지 동원한 안간힘을 쏟느라 교육은 뒷전이다. 상위권 대학은 상위권대로 고교점수 상위 학생들을 힘들이지 않고 확보한 것으로 진짜 일류대인 줄로 착각하는 우물 안 개구리가 된다. 학부모라는 이름의 국민들은 어떤가. 사교육비용으로 허리를 휘면서 자식들을 대학에 보내면 그 대부분은 세계최고 수준의 고액등록금을 부담하면서도 사학비리 등으로 교육여건이 형편없는 대학에 다닌다.

그렇다면 이 악순환을 벗어날 방법은 전혀 없는 것인가. 그렇지 않다. 정부가 대학교육의 고질적인 병폐들을 해결하려는 의지만 있으면 길은 열려 있다. 우선 고등교육에 대한 지원을 출범당시 공약대로 OECD 평균수준으로 높이는 것이다. 확보된 예산으로 사립대학들의 상당수를 공영형으로 전환하는 것도 방법이다. 마침 입학자원의 부족으로 대학 구조조정이 시행되고 있어 부실사학들을 정리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이 정리된 사학들을 10년에 걸쳐 유럽 및 미국의 대다수 대학처럼 정부에서 살려내서 공립화하면 한국대학의 여건은 현격히 좋아지고, 지방대가 강화되면서 서열화도 완화될 것이다. 그러나 우리 정부는 지금 상황을 그냥 두고 전국 대학을 경쟁시켜서 5등급으로 나누고 처지는 대학들을 퇴출하겠다고 한다. 대학개혁을 한다면서 고질적 병폐는 내버려둔 채 줄 세우기로 대학 서열체제를 더 굳어지게 하는 최악의 정책을 강행하고 있는 것이다. 어디서 이 국면을 돌파할 힘을 찾을 것인가.

얼마전 경희대·동국대·서울대·성공회대·한양대 등 서울 소재 대학 총학생회가 연합해 가진 '좋은 학생회 여름캠프'에 강연 차 다녀왔다. 마침 캠프 주제 중 하나가 대학교육과 서열화 문제였다. 학생들로서는 거론하기가 적지않게 불편할 ‘서열화’를 주제로 고민하고 토론하는 것을 보면서, 그래도 희망은 학생들에게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학생들 스스로 빠져 있는 이 서열화의 틀을 깨고 나오는 이같은 움직임이 확산되면서 우리 교육을 살리는 원동력이 되기를 바라마지 않는다.

 <한국대학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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