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부, 잦은 이사회 파행·총장선임 유보 등 분쟁에도 제재 안 해

[한국대학신문 이연희·이재익 기자]사학비리 당사자인 김문기씨의 상지대 총장 임명 및 정이사 선임 논란이 커지는 가운데, 그의 차남인 김길남 이사를 포함한 구재단측 이사들이 무소불위의 힘을 휘둘러 이사간 분쟁을 조장하고, 법인 이사회를 장악해 대학운영에 피해를 끼친 정황이 파악됐다. 교육부는 22일 정이사 승인은 거부했고 총장 임명에 대해서는 사퇴를 권고했다. 그러나 김문기씨는 본지와의 통화에서 "물러날 생각이 없다"고 밝혔다.

22일 상지대 학교법인 상지학원 등에 따르면, 상지대는 지난달 28일 이사회에서는 김문기씨를 정이사로, 지난 14일 이사회에서는 차기 총장으로 선임하는 안건을 통과시켰다. 김씨는 교육부가 2010년 정상화 행정조치를 내린지 4년만에 복귀를 시도했다.

▲ 4년 전‘사학 비리’로 퇴출된 김문기 전 상지학원 이사장(오른쪽)이 지난 18일 강원도 원주시 상지영서대학에서 학교법인 이사회로부터 상지대 총장 임명장을 건네 받고 있다.

■2010년 정상화 이후 4년 만에 비리 당사자 복귀=상지학원 이사회는 2010년 정상화 단계부터 구재단측 이사와 학교측 이사들의 극심한 대립으로 파행을 거듭해왔다. 당시 사분위는 구재단측 4명, 대학측 2명, 교과부 2명, 임시이사 1명으로 이사회를 꾸리도록 했다. 그러나 정상화 단계에 1년 임기의 임시이사를 파견한 것이 불씨가 됐다.

1년 뒤 사분위가 임시이사를 연임하려 하자 김길남씨 등 구재단측 이사 4명은 교육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해 승소했다. 임시이사의 자격이 정지되면서 이사회는 4:4 구도로 바뀌었고 파행의 조짐을 보이기 시작했다.

지난 3월 사퇴한 정부·학교측 이사 중 한 명은 구재단측 이사들이 구성원 화합과 대학운영보다는 ‘운영권 장악’에 혈안이 돼 있었다고 증언했다. 그는 “4:4 구도에서 대학측 추천인사가 구재단측으로 돌아서면서 수적 우위를 차지했다”며 “전임교원 확보율 지표 충족을 위한 교원 임용, 예산안 의결 등 대학 운영에 직결된 사안을 붙들고 그것을 빌미로 기존 이사들을 압박했고, 결국 채영복 이사장의 사퇴를 수차례 촉구하며 수시로 이사회에 불참하기까지 했다”고 밝혔다.

교수협의회는 구재단측 이사들이 그 외에도 △신임 총장 선임 △정부 기숙사 건립 등 주요 안건까지 줄곧 보류해, 지난해 상지대가 재정지원제한대학에 지정되는 데 결정적인 원인을 제공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교수협의회 대외협력특별위원장을 맡은 정대화 교수는 “유재천 전 총장이 지난해 2월 말 임기가 끝났음에도 불구하고 1년 6개월째 신임 총장도 선임하지 않았다”고 구재단측 이사들을 비판했다. 교육부에도 수차례 이사회 파행에 대한 감사 및 구재단측 이사들의 임원승인을 취소해달라고 요청했으나 줄곧 외면 당했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이는 사분위가 이사들의 거듭된 분쟁으로 대구대와 제주국제대 이사 전원에 대해 임원승인 취소 결정을 내린 것과 대조되는 부분이다. 현행 사립학교법 제20조에서는 이사회 임원들의 분쟁으로 학교 운영에 중대한 장애를 야기했을 경우, 관할청인 교육부는 승인 취소 처분을 내릴 수 있게 돼 있다.

▲ 상지대 학생들에 이어 교수들까지 김문기 전 이사장의 총장 선임에 반발하고 나섰다. 상지대 교수협의회가 지난 19일 본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김문기 전 이사장의 총장 선임은 인물·선임 사유·절차가 모두 정상적이지 못했다”며 사퇴를 촉구하고 있다.

■사분위 이사회 파행에도 구재단에 힘 실어…이사회 장악=오히려 사분위는 박근혜정부가 취임을 앞두고 있던 지난해 3월, 구재단 추천이사로 1명을 추가 선임하며 힘을 실어줬다. 정이사 9명 중 6명이 구재단측 이사진으로 구성할 길이 열리자, 채영복 전 이사장을 비롯한 대학측 추천이사 3명은 지난 3월 30일 사퇴했고, 차남 김길남씨는 31일 이사장직에 올랐다.

줄곧 이사회에 불참했던 구재단측 이사 5명은 이 때부터 본격적으로 이사회의 힘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이들은 5월 이사회에서는 김문기씨의 복귀 가능성을 차단하기 위해 반려해왔던 그의 장학금과 기숙사 부지를 기증받기로 결정하면서 김씨의 복귀 기반을 다졌다.

지난 6월 이사회에서는 특히 구재단이 이사회와 대학을 완벽하게 장악할 수 있도록 하는 안건들이 속속 통과됐다. 본래 이사들은 4년 임기로, 1회에 한해 연임할 수 있지만, 이들은 계속해서 연임이 가능하도록 정관까지 대폭 개정했다. 나아가 김길남씨를 비롯한 구재단측 이사 4명의 연임을 결정했고, 김문기씨의 추천 개방이사 후보 3명을 선임했다. 또한 김문기씨가 설립자로 인정받을 수 있도록 구재단측 이사 3명을 포함한 ‘상지학원 역사복원 위원회’를 꾸리는 안건도 통과시켰다. 이날 총장 후보자로 추천된 이에 대한 논의도 짧게 진행됐으나 회의록에는 비공개로 처리했다. 사립학교법 시행령에서는 사생활 침해의 우려가 전혀 없는 공적인 내용은 공개 명시하도록 돼있다.

급기야 지난 7월 이사회에서는 김문기씨를 정이사로 선임했고 지난 8월 14일 이사회에서는 총장으로 선임했다. 상지대는 지난 20년간 대학 구성원과 외부 전문가 등으로 총장추대위원회를 꾸려 후보를 결정해 이사회 승인을 받아왔다. 그러나 이번에는 대학 구성원들과의 의견 수렴 절차 없이 이사회에서 일방적으로 선임해 반발을 사고 있다. 법인측은 총장추대위원회가 정관이나 학칙에서 인정하는 기구가 아니기 때문에 절차에 문제가 없다는 입장만 내세우고 있다.

상지학원은 21일 오전 김씨에 대한 정이사 승인 요청서도 교육부에 제출했으나 거부됐다. 정영준 교육부 사립대학제도과장은 “부정행위 당사자를 이사로 선임·의결해 학내 갈등 상황을 야기하는 등 당초 사분위의 정상화 결정 취지에 부합하지 않다”고 거부 이유를 밝혔다. 상지학원은 지난 1월에도 한 차례 정이사 승인 요청서를 제출했으나 사분위에서 반려된 바 있다.

■교육부, 비리 당사자 복귀 '승인 거부'로 일단락…사학법 개정될까=논란이 대학 안팎으로 커지자 교육부와 사분위는 비리 당사자는 이사회에 복귀할 수 없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그러나 김씨가 아직 총장직에서 물러나지 않았고, 다시 대학으로의 복귀를 시도한  데 대해 교육부도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사학분쟁조장위원회'라는 사분위의 오명과 더불어 사립학교법·시행령에 비리 당사자의 이사·총장 임명을 막을 만한 조항이 없다는 점도 다시 도마 위에 올랐다.

교육부 사분위지원팀 관계자는 “정상화 이후, 특히 대학총장 선임에 대해서는 사분위에서 제재할 법적 권한이 없다”고 말했다. 차남 김길남 이사가 총장 선임 직전에 이사장에서 물러난 탓에 ‘이사장의 배우자, 직계존속 및 직계비속과 그 배우자는 총장에 임명될 수 없다’는 사립학교법에 저촉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영준 과장은 “학내 상황을 봤을 때 총장 선임은 부적절했다고 본다”며 “사퇴를 권하고 있고, 조치하지 않을 경우 실태조사와 감사 등 가능한 행정 제재를 동원해 압박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사회가 대학운영에 피해를 끼친 정황이 드러날 경우 임원 전원 승인 취소 조치까지도 가능성을 열어두겠다는 입장이다.

사립학교법 개정 등 사학비리 당사자가 총장으로도 복귀할 수 없도록 방안을 강구하겠다는 뜻도 내비쳤다. 정 과장은 “과거 학교에 막대한 피해를 끼쳐 실형을 받았더라도 사립학교법에는 5년 이후에는 임원을 맡을 수 있게 돼 있다”며 추후 필요한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강조했다.

정대화 교수는 “김문기씨가 이사장으로서 사학비리를 저지르던 방식과 올해 이사회가 학교를 장악해온 방식이 놀랄 만큼 비슷했다”며 “서남수 전 교육부 장관이 구재단에 힘을 더해주는 바람에 상지대는 결정적으로 다시 갈등상황에 놓였다. 교육부에서 근본적으로 김씨의 복귀를 막지 않을 경우 상지대 교직원·학생들을 버리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호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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