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영석 한국사립대학교수회연합회 이사

대학의 입학정원은 법에 근거하여 관리되고 있다. ‘고등교육법’의 학생정원 감축 등 행정처분의 세부기준, ‘대학설립운영규정’, ‘교수자격기준 등에 관한 규정’, ‘대학입학 전형에 관한 법령’, ‘대학 등의 정원 외 위탁학생에 관한 규칙’ 등이 이에 속한다. 정부가 대학 정원을 법에 규정하고 인ㆍ허가 사항으로 다루는 것은 정원관리가 고등교육의 질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적정한 규모의 교실이 확보되었는가, 자질 미달인 교수가 학생을 지도하는 것은 아닌지 등을 고려하여 개별 대학의 정원을 관리한다는 것이다. 매우 중요하고 엄중한 사안이다.

그런데 정부의 이러한 원칙이 훼손되고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정부가 지난달 29일 재정지원제한대학을 발표했다. 인ㆍ허가 기준에 부합하지 않은 평가지표를 넣어 무리하게 대학을 서열화하고 획일적 정원감축을 유도한다는 지적이 발표전 부터 쏟아졌다. 정부는 ‘정부재정지원제한대학 평가 기본계획’에 입각하여 대학을 평가하고 하위 15% 대학에 학자금대출제한 등의 제제를 가하고 있다. 정부의 의도는 부실대학을 가려 종국엔 퇴출을 유도하여 학령인구의 감소에 대비하겠다는 것이다.

정부의 발표과정에 대한 우려사항을 정리하면 첫째, 15% 하위대학의 지정이 상대평가에 의해 이뤄진다는 점이다. 우리대학이 아무리 사회수요에 부합하고 지역특성에 맞는 양질의 교육을 실시하고 있더라도 나머지 대학에서 소위 지표관리를 통하여 높은 점수를 받으면 우리대학은 재정지원제한대학으로 지정될 수밖에 없는 구조이다. 이때의 피해는 학생을 비롯한 대학 및 사회 전체에게 갈 것이다.

둘째, 정원 감축계획을 제출한 대학에 가산점을 부여하고 이 가산점까지 합산하여 대학 간 상대평가를 실시한다는 것이다. 이럴 경우 매우 불합리한 결과가 발생한다. 원점수에서는 하위 15%에 해당되지 않았지만 다른 대학이 정원감축으로 가산점을 받아 대학 간 순위가 역전되는 현상이 일어난다는 것이다.

정원만 감축하면 아무리 부실대학이라도 우수대학으로 둔갑할 수 있고, 아무리 우수대학이라도 부실대학으로 낙인찍힐 수 있는 구조이다. ‘정부재정지원제한대학 평가 기본계획’에 의하면 가산점으로 인하여 순위가 바뀌어 하위 15%로 밀린 대학에는 1년간의 유예기간을 둘 수 있도록 되어 있다. 그런데 정부가 원점수에 의한 순위를 밝히지 않아 해당 대학들이 원래 부실하여 하위 15% 속하게 되었는지, 정원감축 계획을 제출하지 않아 하위 15%에 속하게 되었는지 알 수 없게 하고 있다는 것이다.

정부의 의도는 뻔하다. 재정지원을 통하여 획일적으로 정원을 감축하겠다는 것이다. 가산점에 의해 하위 15%로 떨어진 대학이 늦게라도 감축계획을 제출한다면 하위 15% 지정을 고려하겠다는 정부의 입장이 이를 잘 대변하고 있다. 초법적 발상이다.

정부의 대학 구조개혁은 백년 앞을 바라보고 고등교육의 질적 향상에 무게를 두어야 한다. 아무리 부실한 대학이라도 정원감축 계획만 제시하면 우수대학으로 둔갑하는 방식으로는 대학민국 고등교육의 질을 담보할 수 없다. 상대방의 가산점수 때문에 하위 15%로 밀린 대학의 명예와 자존심은 대학의 황폐화로 이어질 것이 명약관화(明若觀火)하다. 법과 원칙에 입각한 대학구조개혁이 절실히 요구된다.

<한국대학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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